코레아 우라 - 박삼중 스님이 쓰는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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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기차에서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우리는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까..우리가 알고 있는 건 왼쪽 무명지 잘린 손가락,그리고 혐무소에서의 사진 한장 그 정도가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인 박삼중 스님은 교도소에서 제소자들과 사형수들에게 교화활동을 하면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일을 하고 있다..그러면서 1984년 일본 센다이 작은 시골 다이린지 사찰에 서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를 발견하면서 이 사찰에서 모시고 있는 안중근 의사와 지바 도이치와의 관계가 사형수와 일본 헌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안중근 의사에 관심을 가지고 흔적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도마 안중근...천주교 신자이면서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앗던 안중근 의사는 배와 가슴에 점이 일곱개 있다는 의미로 응칠이라는 어릴적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도마는 세례명 토마스의 한글 이름이다..일본의 한일 합방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1909년 12명이 모여서 왼쪽 무명지 관절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하게 되고 나라를 찾는데 힘을 쓰게 된다...

단지 동맹을 맺은 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려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토를 암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면서 우덕수,조도선,유동하와 함께 한다...10월 26일 러시아 헌병의 감시망을 뚫고 이토히로부미 저격 후 둘러싸고 있었던 네명을 같이 총을 겨누고는 바로 일본 헌병에게 잡혀서 뤼순형무소에서 고문과 재판을 받게 된다....

전세계의 초미의 관심이 되어버린 이토 히로부미 저격..안중근은 1910년 2월 7일에서 2월 14일까지 여섯번의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고는 3월 26일 사형집행을 하게 되고 우덕순과 조도선 또한 동조한 되로 1넌 이상의 형기를 살게 된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사형 집행 후 아직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주인 없는 묘지....저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게 되고..

책을 잃으면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우리는 안중근의사의 애국심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안중근 의사의 흔적과 그를 기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였는가..말로만 애국을 외치는 건 아닌지....우리가 알고 있는 이토히로부미의 저격 그리고 그의 숨겨진 이야기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은 책을 읽으면 안중근의사에 대해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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