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평전 - 문명에 파업한 비폭력 투쟁가 PEACE by PEACE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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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간디가 말한 싸움의 원칙을 들어보자.

1.적의 분노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고통을 당하라. 적의 공격을 공격으로 대하지 마라.

2.분노로 취해진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지 마라.명령 불복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3.적을 모욕하거나 욕하지 마라.

4.생명을 걸고 적을 모욕이나 공격에서 보호하라.

5.체포를 거부하지 말고 보관인으로 맡은 남의 재산이 아닌 한 재산압류를 거부하지 마라.

6.보관인으로서 맡은 남의 재산은 생명을 걸고 포기하지 마라.

7.구금되어도 모범적으로 행동하라.

8.사티아그라하 단체의 일원으로 그 지도자에게 복종하라. 단체와 불화하며 단체에서 나오라.

9. 독립의 유지를 위한 보증을 기대하지 마라. (-23-)

간디는 1869년 10월 2일에 태어났다. 다섯번째이자 마지막 아이였다. 간디 집안과 같은 비슈나파 교도들은 자녀의 출생에 관한 모든 것을 대단히 더럽다고 여겨서 최하층 산파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고,출산 뒤에는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 아들을 셋이나 낳은 뒤 다시 아들을 낳은 것이었기 때문에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73-)

남아프리카에서 내 살의 방식이 변하면서 ,인생관도 달라졌다. 그 시련의 시기에 내가 내딛은 모든 발자국은 신의 이름 아래 그를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남아프리카에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인도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가족을 내 곁에 두고 그들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생명보험에 가입한 것이 후회되고 ,그 보험 판매원에게 넘어간 것이 부끄러워졌다. (-199-)

간디는 그것이 종교적 운동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했다. 그 결과 종교와 정치를 일체화하고자 하는 간디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가 예수의 신상수훈에서 말하는 '오른쪽 빰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내주는'가르침과 같고, 톨스토이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에서 말한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간디의 경우 진실, 사랑, 비폭력, 신은 언제나 같은 것이다. 즉 사랑은 폭력을 배제하므로 비폭력이고 ,비폭력은 신의 본성과 관련된다.이야마로 간디가 당대의 민족주의자들과 가장 분명하게 구별되느 지점이었다. (-242-)

그 글에서 간디는 톨스토이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인간은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된다.

2.아무리 많은 악을 행한 자에게도 선을 베풀어야 한다. 그것이 신의 율법이고 계명이다.

3.어떤 싸움에도 가담해서는 안 된다.

4.정치는 악을 낳기에 행사해서는 안 된다.

5.인간은 창조주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태어났으니 권리보다 의무에 주의해야 한다.

6.거대도시, 공장기계를 세워 노동자의 무기력과 가난을 착취해 소수가 부를 향유해서는 안 되고, 농업이야말로 진정한 일이다. (-252-)

아힘사(비폭력)는포괄적인 원칙이다. 우리는 힘사(폭력)의 불길에 갇혀 무력한 인간이다. 생물이 새물을 먹고 산다는 말의 함의는 깊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폭력을 범하지 않고는 한순간도 살지 못한다.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일,산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반드시 어떤 폭력, 생명파괴를 수반한다. (-282-)

그 집에 처마 밑에는 영엉와 힌두어를 쓴 생활수칙이 적혀 있다.

1.진실

2.폭력

3.금욕

4.무소유

5.도둑질하지 않기

6.빵과 노동

7.음식 절제

8.두려움 없애기

9.종교의 평등

10.형제애의 법

11.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금지 (-310-)

사티아그라하는 회심의 과정이다. 나는 개혁자들이 그들의 입장을 공동체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그들은 공동체의 심금을 울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금전적인 도움 외의 사랑의 과정(만일 내가 사티아그라하의 방법을 이렇게 서술할 수 있다면)으로 관여해야 한다. (-362-)

간디는 『바가바드 기타』 의 다음 구절을 평생의 모토로 삼았다.

사람이 감각의 대상을 숙고하면 집착이 생긴다.

집착에서 욕망이 싹트고

욕망은 격렬한 정욕으로 불타오르고

정욕은 무모함을 낳는다.

그러면 기억이 모두 틀리고

고상한 목적은 사라지며

마음은 말라

목적과 마음과 사람 모두 망한다. (-376-)

1.완전 금주

2. 루피 인상

3.토지세를 반감하고 토지세 결정권을 의회에 부여

4.소금세 폐지

5.군사비 지출의 반감

6.여러 가지 조세 수입의 중단과 정부 고관 급여의 반감

7. 외국계 섬유제품에 대한 보호관세 설정

8. 연안 교통규제법 제정

9. 정치범 석방, 정치적 소추 철회,기타 규제 법규 철폐

10.형사국(CID) 폐지 또는 그것에 대한 민중적 통제

11.자위를 위한 총기 사용 허가증 발행을 민중적 규제에 위양 (-397-)

간디가 남긴 것은 안경과 회중시계,가죽 샌들, 피 묻은 비 조각뿐이었다. 흔한 학위나 무슨 단체의 장 자리 한 없었다.박사나 석사는 커녕 학사학위도 업섰다. 젊은 시절 영국 유학을 마친 뒤 살길이 없어 영어 교사에 지원했으나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인도의 국부라고 불린 그가 받고자 했으면 무수히 수여되었을 그 흔한 명예 박사 학위 하나 없었다. (-504-)

간디의 생애를 다룬 『간디 평전』은 간디가 1869년에 태어나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한 다음 해 194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살어온 전 생에를 다루고 비평하고 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그가 일찌기 결혼하였다는 점이며, 영국으로 유학길을 떠난 뒤 다시 인도에 돌아와 변호사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162cm 의 작은키,그는 톨스토이의 인생관을 습득하였고, 인도의 민족독립운동, 아나키즘적인 범민중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결국에는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 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괸다. 특히 그의 인생관은 남아프리카에 갔다 온 후 달라지게 된다. 우리가 흔히 접했던 책 『베다』, 『우파니샤드』,『바가바드기타』를 간디의 삶에 반영하였고,그것을 실천하였다.

수동적 저항에서, 능동적 저항에 해당되는 사티아그라하를 간디는 실행에 옮겼으며, 힘사(폭력) 과 아힘사 (비폭력)를 구별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하였다. 변변한 학사 학위를 자기지 못했던 간디는 Mr.간디였다. 이후 타고르에 의해 간다는 마하트마 간디가 될 수 있었으며,우리가 인도의 성자,인도의 국부로 불리게 된 이유다. 하지만 저자는 간디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성년을 성추행하였고,그가 색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한국인에게 찬양일색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간디의 생애를 왜곡하는 것이며, 간디가 살아온 삶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의 생을 똑바로 보며, 진리와 진실을 알고 가야지만, 그가 추구해온 철학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인도는 1947년 8월 15일 독립하였고, 간디는 1948년 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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