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박람회 1851~2012
주강현 지음 / 블루&노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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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1892~1940)의 표현대로,박람회는 산업계몽에서 벗어나 차츰 상업적 물신의 순례지가 되어갔다. 만국박람회와 동시대에 탄생한 백화점에서 유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박람회는 백화점처럼 분류,비교의 시선을 가르치는 장소, 시대적 주류가 된 상품소비의 훈육자으로 번성해 나갔다. 초기 박람회에서 상업성은 기업자본주의에서 극대화되었으며, 이는 자동차와 전기 등을 전시한 자본의 꽃인 기업관에서 잘 드러났다. 특히 기업적 자본주의의 극대화는 뉴욕박람회에서 최고치를 보여주었다. (-10-)

발터벤야민은 만국박람회의 주기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만국박람회는 분명히 다양한 나라들에서 생산된 똑같은 제품의 가격과 품질을 가장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완전한 자유 교역을 제창하는 학파여 즐거워할지니! 만국박람회는 관세의 철폐까지는 몰라도 가격 인하는 지향하고 있다." (-62-)

프랑스의 만국박람회는 영국과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다. 첫째, 영국이 식민지를 고려하면서 세계적으로 분산개최, 혹은 순회개최를 하였다면, 프랑스는 집중적으로 파리에서만 박람회를 열었다. 파리가 박람회도시가 된 반면,영국은 박랍회도시라고는 호칭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1902~3년에 프랑스가 식민지 하노이에서 박람회를 개최한 사례가 확인된다. (-109-)

반면에 일본은 세인트루이스박람회에서도 놀라운 준비와 추진력을 바탕으로 미국인의 존경을 얻는데 성공했다. 단기간에 이룬 일본의 발전과 서구화에 개한 긍정적 인식, 서양의 기준과 가치가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증명했다는 믿음으로 미국은 '동양의 양키' , 혹은 '아시아의 서양 파트너' 로 일본을 인식하였다. 그럴수록 중국은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남루하고 조잡한 이미지로 간주되었다. (-147-)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만국박람회의 많은 건축은 보자르(Beaux-Arts)스타일로 지어졌다. 당시 유럽건축은 급격히 전환되고 있었으며 새로운 공식적 언어를 배우려던 시기였다. 압도적이고도 일상적인 엑조틱(Exotic) 스타일 중에서도 아르누보(ART Nouveau) 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작지만 강력한 존재였다. (-197-)

상하이세계박람회는 중국관이 상징하는 중화주의적 정체성과 더불어 서양의 모더니티가 은밀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준 박람회이기도 하다. 미래적 모더니티를 강렬하게 드러낸 전시관 중에서 영국관을 대표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시 이야기(A Tale of New City)'를 주제로 내건 영국관은 6만 개에 이르는 20m 길이의 투명 아크릴 촉수가 건물 외부를 덮었다. (-235-)

해양문명도시관

'바다를 통한 인류의 도전과 성취'를 주제로 내걸었다. 인류의 정신문화 유산과 해양에서 살아온 사람의 생활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해양문명존, 바다와 도시의 만남을 주제로 새로운 바다공간의 이용을 보여주는 해양도시존으로 나뉜다. 해양문명존에서는 카누를 비롯한 선박의 발전과정을 보면서 바다를 향한 인류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느낀다. 1천 년 전 침몰한 거대한 무역선 모형에 직접 들어가 당대 항해술과 교역품 등을 본다. 수중터널에 들어서면 에너지, 식량 등의 문제를 해결한 '미래 해양도시'모습을 모형으로 만날 수 있다. (-294-)

첫째, 핵에너지가 뉴욕박람회의 핵심을 이루었다. 미국핵에너지위원회(aaec) 는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기술의 친밀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에너지 연구, 농업과 의료, 인간에게 요구되는 핵에너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특히 어린이 교육에 비중을 두었다. 흡사 동물원의 동물처럼 미국 원자력촌(Atomville USA)에서 아이들은 동물을 바라보듯 친근하게 핵을 접하였다. 초등학생들에게 핵에너지에 대한 원초적 친근감을 부여했다. 아이들에게 과학기술의 묘미를 심어주고 교육의 진보를 제시하고가 하였다. (-354-)

대항해 시대에 출현한 '세계의 발견'은 단순히 지리상의 대륙이나 항로의 발견이 아니라 어떤 '시선의 발견' 이기도 했다.이 시선은 '발견'된 세계에 객체로서 '자연' 의 지위를 강요하고,이를 기록 분류 배치했다. 17세기 이후 발전하여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박물학은 대항해 시대가 '발견'한 세계를 대항해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목하고 분류하며 배치하였다. (-407-)

1889년의 박람회 책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모두 탑승하자, 라 투렌호가 르 아브르 항을 떠난다.배가 지나는 무대 배경장치는 증기선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배 앞으로 펼처진 바다, 모여드는 여러 종류의 군함들,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아한 모습의 고깃배들,그리고 수평선이 보였다. 좀 더 나아가 호텔이 보이는 멋진 해변에서부터 돌출한 에베 곶까지 프랑스 해안가 전체를르 선회한다. 라 투렌 호의 갑판에서 즐거운 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관람객은 이 경험을 운항 중에 출렁거림이나 앞뒤 흔들림, 배멀미 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느 안전하고 멋진 여름 유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445-)

1851년 최초의 세계박람회가 열린지 어느덧 160여 년이 된 세계박람회의 역사에서 중국이 세계박람회를 주최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1929년 저장성 항저우에서 개최된 서호엑스포 따위의 국내용 박람회는 다수 있었지만,세계적 규모의 BIE 본격 박람회는 처음이었다. 중국은 그 최초의 만남을 최대의 크기로 선보였다. (-519-)

사실 전후 일본인에게 세계박람회란 고도성장을 달성한 자신들의 사회적 자화상으로서, 전후 일본의 졍제적 부활과 고도성장의 성과를 1억 명이 자기 확신하는 장대한 기념비로서의 집합적인 이미지였다. 1970년대 이후 언론에서 오사카박람회 개막식과 이벤트 광장, 태양의 탑 이미지는 엄청난 수의 관객 동원은 이 행사가 단순한 세계박람히 이상으로 전후 일본 대중사회 내부에 자리한 그 무엇이자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563-)

세계박람회는 국가주의와 국제주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만들어진 국제적으로 상징적인 경제적인 도구였다. 주강현 작가는 세계박람횔르 박물관과 박물학,미술관의 교호라고 말한다.여기서 교호란'서로 어긋나게 맞춤;을 뜻하여, 이세가지를 서로 어긋나게 맞춰 나감으로서, 만국박람회를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1789~1794) 과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제1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장이 들어서고,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면서, BIE 세계박람회 사무국에 의해 ,만국박람회가 영국 런던에서, 처음 개최된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만국박람회개최에 열을 올렸으며, 에펠탑이 있는 프랑스 파리를 문화의 도시, 만구박람회의 도시로 긍정하게 된다.유럽에서 시작되었던 만국박람회는 미국 뉴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세계 평화와 기술진보를 추구하였던 촞창기 만국박람회의 취지가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자본주의적 색체가 짙어질 수 있었다. 만국박람회는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서, 자본과 결합하게 되었고, 핵무기, 핵에너지를 긍정하는 정치적 목적으로 쓰여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과 다른 이질적인 만국 박람회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상품 소기와 생산을 위한 만국 박람회가 아닌 ,인간과 인종을 전시하는 박람회가 있었으며,인간의 형상을 가진 막기가 존재하였고, 여성의 누드를 전시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는 자본의 이동을 부채질하게 된다. 유럽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아로 옮겨가게 되는데, 1970년 개최된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일본의 근대화를 서구 유럽 열강이 긍정하게 되었으며, 일본 경제가 급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손꼽는다. 일본에 대해 서구 열강 제국주의 국가들이 긍정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첫 시작이었다. 물론 2012년 여수 엑스포는 해양도시 여수 이미지르 긍정하게 되었고, 바다 생태계에 대한 보전과 보호를 강조하게 된다. 여수 엑스포가 내세운 슬로건은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이었다.

엑스포에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요소가 접목되고 있었다.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는 인간과 그 환경(캐나다 건국 100 주년 기념) 를, 1970년 오사카 박람회는 인류의 진보와 조화9종합박람회)를, 1974년 스포케인 박람회는 공해없는 전진을, 1982년 녹스빌 박람회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1985년 쓰쿠바 박람회는 인간,주거, 환경과 과학기술을, 1986년 벤쿠버박람회는 교통과 통신을, 1988년 브리즈번 박람회는 기술시대의 레저를(유럽인 호주정착 200주년 기념), 1992년 세비야박람회는 발견의 시대를, 1992년 제노바 박람회는 배와 바다를, 1993년 대전 박람회는 새로운 도약의 길을, 1998년 리스본 박람회는 해양-미래의 유산을, 2000년 하노버 박람회는 인간과 자연과 기술을, , 2005년 아이치 박람회는 자연과 지혜 재발견을, 2008년 사라고사박람회는 물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2010년 상하이 박람회는 더 좋은 도시, 행복한 삶을, 2012년 여수박람회는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강조하였고,엑스포 슬로건으로 채택하게 된다.

물론 엑스포 유치 성공 이후, 대전은 과학연구의 도시로, 여수는 친환경 해양도시로 긍정하게 되었으며, 이후 그 지역 인프라를 하나의 고정된 인프라로 확립될 수 있게 해주었다.2012년 여수 엑스포 개최이후,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 ,2017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중앙아시아 최초 개최·이슬람권 최초 개최), 2020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아랍권 최초 개최), 에서 시작되었으며, 2025년 일본 오사카 ,2027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030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작가 주경철은 만국박람회는 초자본이 모인 국가가 개최가 가능하며, 초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잇도록 도와주는 도구이자 국제적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을 모으는 목적에서 시작된 만국박람회는 이제, 환경과 자연을 우선하는 만국박람회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기술과 자본의 만국박람회가 이젠 , 가술과 자본, 친환경의 만국박람회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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