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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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에 휩쓸려 죽은 사람이요! 서너 해 전 가을에는 붉은 사과가 가마니로 쏟아붓듯 떠내려왔답니다. 물운대 아래 모래밭에 사과가 널렸다는 소문을 듣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몰려가서 사과를 줍느라 바빴답니다. 나도 사과를 두 가마니나 주웠답니다. 흠집 난 건 애들 먹이고 성한 건 부산장에 내다 팔았지요." (-60-)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백 씨의 성긴 머리카락이 뽑혀 날아갈 듯 날린다. 그는 바다를 등지고 앉아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 떨어질 때 화기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죽었어요. 천치 같은 여편네가 원자탄 떨어지는 걸 구경하고 서 있었나 봅디다."

"히로시마에서 살다왔어요?" (-124-)

"일본에서 조선이 해방된 건 어떻게 알았소?" 담배꽁초를 그새 다 피운 사내가 묻는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도조 히데키가 항복 문서를 낭독하는 방송이 나오더군요. 일인 감독이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러더군요.'도우아키타라 이이?' 그러고 얼마 있다 미군 비행기들이 날아와 낙하산 두 세개에 커다란 상자를 매달아 야하타 제철소로 내려보내데요. 총, 총알, 수류탄, 속옷, 양말, 식량, 군복, 철모가 상자에 들어 있었어요. 엊그제까지 포로 신세였던 미군들이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무장을 하고 부대를 편성하더군요." (-227-)

"칠식아,그만 따에 내려가자. 따에 내려가고 아버지하고 누나하고 고깃국에 흰쌀밥 먹자."

땅에는 썩은 땅콩 껍질, 담배꽁초, 개동, 생선 뼈, 장작이 타고 남은 잿더미, 찌그러진 깡통, 깨진 정종병 조각, 죽은 쥐가 널려 있다.

"개미들도 땅에 내려가네."

"참새들도 땅에 내려가네."

"앵두나무도 따에 내려가네." (-325-)

"과부로 악착같이 돈만 모으며 살다 새로 남편을 얻었는데 하필이면 조선 사내지 뭐야. 그런데 그 조선 사내가 어눌하니 칠푼이라는 거야.모자라니까 숫총각이 일본 과부에게 장가들었겠지. 일본 과부하고 산다고 자갈치에서 돌팔매질까지 당했다니까.남녀의 정분은 남이 알 수 없는 것인지 저 여편네가 늦은 나이에 아들까지 하나 앟았지. 남이야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둘이 금슬 좋으면 그만이지만, 남편이 재작년 겨울에 자전거 타고 영도다리 건너다 치여 다리병신이 됐지 뭐야." (-381-)

일본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일본 어디서 왔소?

"가고시마 제련소요! 처음 거기 가서는 가고시마 제련소가 쓰시마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ㄷ자고 .쓰시마에 가는 줄 알고 연럭선을 탔으니까요. 면장이 징용장을 내밀며 쓰시마에 가서 일인들 심부름 좀 해주고 오라고 해서요. 가고시마에 간지 닷새쯤 지나 내가 와 있는 데가 쓰시마의 어디쯤인지 궁금하대요. 내가 읽지는 못해도 일본말은 그냥 저냥 할 줄 안다오. 나이가 오십은 돼 보이는 일인한테 물었지요.

'여기가 어디요?'

'너,바보로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다니.가고시마다!'

'쓰시마가 아니었군?'

(-541-)

마키노시마 유곽 골목 어귀의 돌부처 앞에는 보라색 들꽃과 능금 한 알, 흰쌀 한 웅큼이 놓여 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 능금을 부리로 콕콕 쫀다. 참새 두 마리가 날아들어 쌀알을 부리에 물고 날아간다.

돌부처 앞의 남은 흰쌀밥과 들꽃은 밤이 깊어지면 바람이 거두어간 듯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651-)

소설가 김숨(1974년~)이 쓴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논픽션을 픽션화한 것처럼, 그시대를 자세히 묘사하였으며,우리의 과거를 복기하도록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컴퓨터를 모르던 시기, 드라마 한 편에 울고 웃었던 그 시절, 우리는 이제 막 가난에 허덕이면서, 해방 이후의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없는 상태에서,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이 발발했다.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잠깐 평화로웠던 그 때 당시의 시대적인 이야기를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었으며, 작가 김숨이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1947년 9월 16일,음력 8월 2일, 화요일이 소설 『잃어버린 사람』의 시간적 배경이다. 24시간동안 일어났던 이야기, 사람이 있었다. 해방 전후 도조히데키가 항복 선언 후 미군정 하에 대한민국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소설가 김숨은 그 때 당시 살았던 이들에게 구술 인터뷰로 자료를 모았으며, 냄새 나고,위생 개념이 전혀 없었던, 쥐가 굴러 다녔고,수마에 떠내려온 사과를 장에 나다 팔았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가난이 느껴진다. 동네 면장의 꼬임에 따라서, 일본 강제징용에 끌려 갔으며, 가고시마 항에서 강제 노동을 했던 그들, 전차로 인해 죽을 뻔했던 그 순간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페렴이나, 기아로 굶어 죽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언청이가 동네에 있었고, 칠삭둥이가 현존했고, 다리 병신, 벙어리와 함께 생활했다. 어느 누구도 배부르지 않았던 그 시절이기에,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아둥바둥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들에게 주변에 장애, 문맹으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에느 티가 나지만, 그때는 티가 나지 않았다. 문맹이 살아가는데 불편한 조건이 아니었다. 부지런하면 살 수 있었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도, 노력으로 풀칠을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었다. 벙어리 세신사라도,일할 권리가 충분하였고, 그들은 그것을 관대하게 허용했다. 각자가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1947년에 살았던 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배우지 않아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공교롭게도 1947녕에 태어났지만, 5살이 되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어린 핏덩이들,그들을 안고 서글프게 울어야 했던 그들의 삶, 그렇지만 끝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 1947년을 살아낼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지금은 그때 당시와 비교할 때, 더 나은 삶,더 풍요로운 삶,더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불평하고, 차별하는 사화에서, 불행을 깊이 느끼며 살아간다.이 소설은 바로 과거의 우리 삶을 통해서,앞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게 해주고 있었으며,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삶은 무엇인지 느끼게 도와주고 있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하게 해주는 역사적 픽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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