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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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몸, 얇고 나풀거리는 소재의 짧은 치마, 대부분이 단발이나 긴 머리이고 앞머리와 머리끝이 안쪽으로 살짝 말려 있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용량을 줄이려는 듯이, 자신을 꾹꾹 눌러 압축하려는 듯이 잔뜩 움츠린 자세였다. (-25-)


뇌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게이코는 감탄했다.
남자애는 게이코가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면 봐도 신경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게이코도 사양하지 않고 두 사람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했다. (-74-)


영혼은 닳는다.
게이코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쯤이었던가.
영혼은 지치고 ,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여원히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마가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살아 있으면 닳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오래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미와 최애를 만드는 것이다. (-129-)


원래 그 아이돌 시스템에 속해 있던 아이들은 환한 웃음을 장착하고 ,짧은 교복 치맟를 입고,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응원해주고 싶게 만드는 노래와 춤을 보여주고, 곡에 따라서는 수영복이나 속옷 같은 의상을 입었습니다. (-195-)


어째서 '아저씨;는 여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할까. 여자들은 서로 이야기를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성희롱이나 갑질을 하는 인간들에 대해 뒤에서 그저 푸념하고 욕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정보 교환이 된다. 정보는 여자를 지키고 , 돕는다. 아마 '아저씨'는 그런 유대를 경험한 적이 없을지도 모르고, 거짓말을 하고, 자신ㄴ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려고 한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데 말이다.
"게이코씨란 저는 친구예요."
아유무가 힘주어 말하자 남자는 입을 더 씰쭉거리며 비웃었다. (-225-)


여자는 절망과 분노,슬픔 속에 살아간다. 분노가 서로 공유되고, 서로에게 생존과 이익이 되는 것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으며, 권리와 평등을 찾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은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기준을 제시하고, 들으려고 애를 쓰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소설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은 페미니즘 소설의 전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저씨라는 존재, 상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캐치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일본 사회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실체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


여성 스스로 권리를 찾는 것이 먼저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아저씨는 혐오스럽고, 불편한 존재이다. 이런 모습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답습하게 되고, 뭔가 하기 위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것은 여성에게 예고되지 않는 어떤 행동은 그것이 스스로에게 어떠한 불감증과 엮이게 된다. 무언가 하려는 의도, 젠더 감수성이 사라진 행동 하나하나가 채워 나가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고, 남성이 추구하는 육체적인 욕망이,여성에게는 영혼을 갂아먹는 어떤 이유가 되고 있었다. 즉 이러한 상황은 반복되고, 일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며, 원칙에 근거한 이야기, 이 소설에서 느끼는 것은 단 하나, 여성의 생존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스스로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자구책이며, 피해자임에도 피해자로서의 보호받을 수 없는 사회적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순히 페미니즘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이 소설이 함축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남성의 책임은 결코 무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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