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 따뜻하게 놓아주는 법을 배웠다
전우주 지음 / 프로방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속에 꺼내야 봄이다

봄이 오면 비울 것도 채울 곳도 생각하지 말자
꽃피는 동산에 놀러갈 생각만 하자
힘겨워 하는 꽃엔 바람을 조절해 주고
너무 이른 꽃 몽우리는 괜찮다 토닥토닥 어루어 만져 주자
우리도 그랬듯이 봄도 긴장을 한다
어두운 밤에 별빛이 튀어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하겨울 불을 지핀 불꽃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아직 눈치 보는 아카시아 따로 간다고 얘기해 주고
남은 꽃잎은 너른 양지에 놓아두고 햇살에 적셔
꽃 튀김을 해보자
달콤한 게 천지라도 그 맛은 천국에서도 탐을 낸다
그러다 먼저 잡은 손에 한 잎씩 그 맛을 알도록 
쌉싸래한 맛은 익혀두자
이게 첫 맛이다
처음은 보기보다 싱숭생숭 어리둥절하다
사람 맛은 그렇듯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팝콘이 톡톡 튀기는 조팝공원에 가면 
일찍이 단맛을 알아 본 자들이
줄을 서서 한움큼 구매를 한다
꽃도 급하면 체한다
한 잎씩 똑똑 다서 목젖 깊이 넣어두고 은근하게 삼켜보자
그러다 사리라도 걸리면 그리워서 그랬다
미친 듯이 까르르 웃으며 넘어가자
또 봄이 왔구나 꽃을 파는 할인 마트에서 구입된 봄 말고
재래시장 쭈글한 할매 소쿠리에 담긴 봄을 맞이해 보자. (-19-)


내 봄은 친히 너를 간호해준다.

풀려보린 하늘 노곤해진 구름
게을러진 바람 틈 사이로.
작은 몽우리 입술을 벌리기 시작한다
네가 바로 찔레꽃이구나
아직은ㅁ 마숙한 소녀 그러나 제법 여색이 있다
일부러 꺾어 꽃병에 넣으려고
하지만 아직은 미숙하구나
죽을 수도 있겠다
사람 욕심이 이렇게도 잔인합니다.
사람 욕심이 이렇게 짧습니다.
들에 많은 새싹들 죄다 죄인처럼 조심스럽고
누구의 대상으로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예비후보자

나 하나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모두가 민둥사이 될 게 뻔하다
다행인 건 인간 욕심은 생각보다 짧다는 것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하다
가시 떼고 꽃잎 떼고 야리한 자태지만
언젠가는 울컥 참을 수 없는 본능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꽃들이 걱정된다.

생각하면 다정하개 쓰다듬어 주는 것도 미안한 일
상냥하게 향기 맡는 나비와 벌보다 못하는 일
틈이 나면 문지기로 지키는 것도 못하는 일
사람 하는 일
사무실로 돌아가 잠깐 본 어린 찔레꽃 생각을 하다
봄이면 찔레꽃 그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며
메모장에 찔레꽃 꽃말을 적어본다
고독, 역시 내가 생각한대로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를 지킬 수 없지만
내 봄은 친히 너를 간호해준다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게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

순리가 허용 되는 일
그렇게 야무지게 핑계를 대는 일
차라리 한 번 더 찾아가면 되는 일
그리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일
미안해서 순종만 생각하는 일
한참을 책상 위에 적어놓은 말들
올 봄엔 미안해서 그리움 이것으로
나도 너와 함께 운명을 다하기를 (-66-)


우린 서로 따뜻하게 놓아주는 법을 배웠다

언제부터인가
11시가 넘어가면 문자 한통 없이
슬그머니 넘어간 적이 있었다
물어보면 내가 자고 있을까봐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고만 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지난 2년은 
밤이 없던 걸로 기억한다
새벽이면 외롭지 말라고 마지막까지
누가 질세라 안부 문자를 밀어놓곤 했다

그랬다 우린 서로 기다렸고
그 기다림에 사랑보다는 배려라는
감정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배려의 화살표는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이 아니라 내게로 돌려져 있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창한 배려에서
언제까지 나만 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들었던 것이다.
그 해 2년의 겨울 우린 서로 
춥지 않을 정도로 놓아주는 배려를 배운 것이다. (-181-)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기적이고,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우리의 삶에서 적정한 관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암묵적인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칙이 필요하다. 불안과 걱정 ,근심 속에서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 찾아온다면, 내것을 비우고, 그 비어있는 공간에 새로운 것으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안의 불안과 걱정은 나의 관점,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소소한 행동 하나 바뀜으로서, 소소한 행보글 나눌 수 있다.배려라는 것은 내가 가진 1퍼센트를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다. 즉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이별과 만남 속에서, 이별할 것 같아서 두려운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만남의 시점이 우연히 찾아온 것처럼, 이별의 순간도 우연히 찾아야 그 마지막 순간이 따스해지고,아름다워질 수 있다.그런 면에서 배려의 끝에 서 있는 것은 집착과 오만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장편 시로 이루어져 있다. 자칫 질릴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온기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살아가면서, 좋은 것, 이쁜 것, 눈에 보기에 괜찮은 것만 찾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야생 그대로의 것이다. 즉 마트에 파는 신선한 꽃을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길을 가다가 우연히 시선에 잡힌 할머니가 내놓은 야생 꽃을 팔아주는 배려와 관용이 필요하다. 배려라는 건 거창하지 않은 것,내 가까운 곳에 있는 것, 언제나 손을 뻣으면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그것이 배려의 본질이며, 만남과 이별의 따스함과 아름다움, 더 나아가 삶의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내 앞에 어떤 힘듦이나 불안, 걱정이 있다면,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집착을 내려놓지 않으면 나도 힘들어지고, 상대방도 힘겨워진다. 그래서 배려느 적당한 시점에 내려놓는 것이다. 삶도, 사람도 관계도, 적절한 시점에 내려놓을 줄 알아야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고 좋은 기억만 남기게 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배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