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위하여 1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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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키시는 것이 하늘이라면, 망하게 하는 것 또한 하늘일 것입니다. 이제 이씨 왕가의 운이 다했다면 또한 새로이 일어나는 왕가가 있을 터이니 ,차라리 그를 찾아 장부의 기개를 펴봄이 어떻겠습니까? 선생의 용력과 지혜라면 가히 새 왕조의 초석을 이룰 만한 것입니다." (-65-)


"한 마리의 좋은 말을 얻으면 한 사람이 하루에 천리를 갈 수가 있고 , 몇 백마리를 얻으면 또한 몇백 사람이 갈 수 있다. 좋은 말 몇백마리면 될 일을 귀한 쇠를 허비하고 밝은 머리를 썩여가며 복잡한 기계를 만든다. 뿐인가, 살기에 바쁜 백성을 동원하여 천리에 둑길을 쌓아 철로를 깔고 다시 더 많은 장정이 어두운 굴 속에서 밤낮으로 석탄을 캐야만이 저 기차를 움직일 수 있으니 아무래도 서양인들의 교묘함은 지나친데가 있다. 비록 만리장성이 모랑캐를 막는데 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만세를 이으려던 진시황의 꿈은 바로 그 만리장성으로 인해 이세에 그쳤고, 대운하가 또한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화북으로 옮기는 데 편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순믄 끝내 그 대운하로 망하였다. 서양인들이 일찍 그와 같은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앞날에 반드시 그 일로 낭패를 당할 것이다.
거기다가 좋은 말은 동서남북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으나 기차는 오직 정한 철궤 위로만 가야 하니 이 또한 얼마나 불편한가, 차라리 제왕의 위엄은 한 덩이의 거친 쇠붙이보다 갈기를 휘날리며 벌판을 닫는 수천 수만 마리의 양마를 기르는 쪽에 있으리라."(-169-)


1990년대 우리는 두 명의 위대한 소설가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한사람은 이문열이고, 또다른 이는 조정래였다. 중국의 역사소설을 나름대로 써왓던 이문열과 , 한국의 근현대사를 3부작으로 완성한 조정래는 이념적 가치에 따라서 , 대한민국을 양분하게 된다. 소위 이름 값으로 책이 팔렸던 그 시절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린 입지적인 두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의 문학 작품 중 하나,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는 과거 고려원에서, 민음사로, 그리고 RHK로 판형을 바꿔서 재출간되고 있었으며, 40여년 전 이문열의 소설 <황제를 위하여>는 두 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소설은 중국 중심적 사대관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말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씨 조선의 마지막 격동기, 그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정감록이 만들어졌고, 널리 읽혀지게 된다. 소설 <황제를 위하여>는 그 정감록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었다. 책 속 주인공 정처사는 한 나라를 바꿔 놓을 황제가 될 수 있는 입지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비스러운 땅 계룡산을 거점으로 하여, 조선이 새로운 나라의 기틀이 될 수 있었던 그 시점, 그들의 동양적 사고방식과 서양문물이 밀물듯 드어오던 그 시점이 서로 교차되면서, 새로운 생각과 기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은 대한제국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시대에 조선은 망국의 지름길로 다다르고 있었다.그건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중국을 믿고 따른다면, 반드시 설 수 있으리라느 절대적인 믿음이 강하였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철마, 증기기관차를 왜 세워야 하는지 그들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증기기관차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 말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백배 더 많았던 그 때 당시, 증기기관차를 들여오고, 맨  위에 철로를 깐다는 것은 조선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저항에 가까운 하나의 구실이 된다. 바로 이 소설은 그 시대의 사고, 미신에 의존한 조선 사람들과, 합린적인 사고에 근간을 둔 서양식 사고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으며, 나라가 바뀌는 그 시점에 한반도에 머물러 잇었던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어쩌면 그들은 황제를 옹립함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열고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황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황제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왕권을 그대로 답습한 형태의 황제, 그게 바로 100년 전 우리가 바라보았던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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