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전태일! - 그가 떠난 50년을 기리며
안재성 외 지음 / 목선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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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돌아온 전태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돈 못 버는 화풀이까지 쏟아 매질을 했고 말리는 어머니까지 때렸다. 전상수는 한번 술에 취하면 몇 날 며칠 인사불성이 되어 버리는 알코올 중독자였다.전상수는 끝내 재봉틀마저 팔아 버리고 이태원 시절의 폐인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방세를 못내 변두리 흙집의 단칸방으로 이사도 가야 했다. (-40-)


1970년 10월 8일, 삼동회를 대표해 전태일,이승철,김영문이 평화시장을 면담했다. 평화시장 옥상에 있는 사무실에서였다.(-74-)


다음 날인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평화시장 구름다리 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경비원들과 형사들에 정복 경찰까지 깔려 시위에 대비하고 있었다.시장들은 "깡패 같은 놈들이 주동이 되어 나쁜 짓을 하니 점심시간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이 말이 오히려 널리 소문이 퍼지게 했다. 구름다리 아래 공터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200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시위하러 오지는 않았더라도 뭔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다들 알 수 있는 분위기였다. (-86-)


전태일 열사의 죽음 직후부터 일선 노동현장에는 학생운동 차원 또는 학생 차원의 다양한 지원활동이 이뤄졌다.우선,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평화시장의 노동자실태조사단 구성을 시작으로 광주대단지 폭동사건과 한영섬유노조 조합원 김진수의 피살사건 등에 대한 진상조사를 연이어 진행하였다. (-137-)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가 세월호 사건을 추뫄면서 엮은 '꽃으로 돌아오라'도 들 수 있다.이 시집은 전체가 노동시의 관점에서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국민의 안전조차 무시한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라고 진단하고 저항의 노래를 부은 것이기에 전태일의 정신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233-)


여기서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간이거니와, 복잡밥하고 비좁고 먼지 가득한 공장 내부와는 상반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태일이 어떻게 목숨을 걸겠다는 결심을 했을까...그리고 그걸 어떻게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 쓰기 전에 이미 그 이미지를 결정하고 들어갔어요.스스로 묫자리를 파고 거기 드러눕는 장면 말입니다. (-299-)


전태일,대한민국 민중운동의 표상이었다.그는 1948년 대한민국 대구에서 태어나,서울에 상경해 평화시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1970년 분신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아버지 전상수와 어머니 이소선 사이에 태어난 전태일은 산동네 판자집에 거쳐하면서, 봉제공장에 일을 하게 된다. 수출 주도형 경공업, 전태일이 살았던 1960년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시다의 평균 일하는 시간은 16시간이었다. 비좁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힘든 공간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봉제사,미싱사,시다,재단사가 같이 일하면서,사회적 처우는 열악하였다.그 과정에서 공장에 불이 나게 되었고,그 당시 공순이,공돌이라 부르는 이들은 자본가의 억압으로 인해 소리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전태일은 이러한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바보회를 결성하였고,삼동회를 조직하여, 점차 세를 확장시켜 나가게 된다.1970년 11월 13일 그는 자신의 몸에 휘발류를 뿌렸다.


그가 죽은 뒤 25주년 되는 해, 전태일은 다시 부활하였다.영화를 통해서 전태일은 다시 부활하였으며, 주인공 홍경인에 의해 재탄생되었으며,2020년 어느덧 50주년이 된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물결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그를 잊지 않음으로서 전태일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사회적인 불합리나 부조리가 있다면, 그들은 서로 연대하고, 약자로서의 자신의 인권이 침탈되는 것을 극복해 나가게 되었고, 결국 전태일이 원하였던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할 수 있는 삶을 구축해 나가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이유도 전태일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노동운동의 목적과 취지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그들의 정당한 요구와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자본가들의 횡포에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것, 임금 체불이나 강제해고가 빈번하였던 그 시대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맨몸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것이었으며,그로인해 많은 사람들리 희생되었다.하지만 전태일 정신이 우리 사회에 살아있기 때문에 국가의 잘잘못을 국민이 따질 수 있고,서로가 알지 못하더라도,같이 힘을 낼 수 있었던 이유,세월호 참사가 2014년 이후 지금까지 국가의 진실 요구가 이어질 수 있었던 그 근원에는 전태일 정신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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