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각기 다른 장애를 가진 두 작가가 장애와 사회에 대해서 얘기하는 책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SF소설가 김초엽,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변호사 김원영이 뭉쳤다. 책은 장애는 '정상'에서 떨어진 결여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꾸리는 아이덴티디, 즉 '있음'으로 전환된다고 말한다. 장애 '있음'의 삶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사회에 장애가 던지는 의미를 찾아본다.

📖p.88
우리가 과학 기술에 거는 기대는 너무나 쉽게 현실과 어긋나고 또 미끄러진다. 어떤 기술도 완전무결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기술 낙관론자들이 약속하는 기술 유토피아는 결코 그런 방식으로 이곳에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완전한 기술과 불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지금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야 한다. 언젠가 나타날 기적의 과학기술에 미리 찬사를 보내는 대신, 이미 현실에서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이보그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
.
책은 종단, 횡단으로 여러 지점에서 호흡할 공간을 남겨두었다. 그다지 문학적이지는 않다. 때론 과학지의 칼럼같이 조금 어렵고 딱딱하다. 마지막에 두 작가의 대담을 기록한 파트가 특히 재밌었다. 그리고 소설작가 김초엽의 맺음 글은..한 톨의 낭만을 남겨두어 매우 좋았다.

📖p.358
사이보그의 삶이 실제로는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불화, 염증과 불쾌감,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 역시 끊임없는 불화의 연속이다. 어떤 투쟁은 이 장애를 구성하는 세계를 향하지만, 또 어떤 투쟁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고통을 향한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나는 그 불화 속에서 어떤 모순적인 좋은 것들도 발견하고 싶다. 삶은 불행하거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불행한 동시에 행복하다고, 슬프고 또 아름답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때로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조금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싶다고 철학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나는 세상은 이치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세상을 알고싶으면 문학을 읽고 학문적인 이치를 배우고 싶으면 도덕 교과서부터 시작하는게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는 나도 철학책을 연에 한 번은 뜻밖으로 읽게 되는데, 솔직히 쉽게 손에 잡히진 않는다. 그렇게 올 가을의 철학책은 강신주 박사의 2010년작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이 책은 무려 400쪽이 넘으며 내용은 무려 철학과 시의 콜라보레이션이다. 한나 아렌트와 김남주, 미셸 푸코와 황동규, 이런식으로 철학자와 시인을 묶어 철학과 시를 서로 이해하도록 풀어냈다. 여기에는 삶과 사회도 담겨있다. 철학이나 시를 좋아한다면 읽어볼만하다. 책이 두꺼워서 완독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서는 10명의 작가들이 채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여기는 완전한 비건도 있지만, 채식을 지향하는 정도의 '불성실한' 채식지향인도 있다. 하지만 정도는 중요한게 아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채식이 훈장질로 여겨진다던지 아니꼽지도 않다. 책의 부제인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라는 문구가 독자들을 독려한다. 이 이야기, 한 번 들어는 보시라!는 투.
.
이슬아 작가가 비건식을 한다고 했을 때 그리 놀랍지 않았었다. 최근 여러 예술인과 문인들이 비건 선언을 하는 모습을 봐왔고, 마침 나는 무척 개인적인 이유로-다양한 집밥을 구경하기 위해- sns에서 비거니즘일기를 구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건, 통칭 채식주의가 낯설지 않은데다, 이 작가라면.. 그는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여성과 연대하고,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러는 나는 어떤지? 나는 비건을 얘기하는 장에서 말하기 겸연쩍게도, 고기를 좋아한다. 채식에 대해 말해볼라치면 '건강을 위해 채소(샐러드)를 먹어야 해' 정도의 소박한 마음정도만 가진 사람이다. '입이 너무 기름지니 깔끔한거 먹어야지' 정도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의 채식 단계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즐거이 읽을 수 있었다. 비거니즘의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하고, 이 신조를 지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궁금하고 알아가고 싶다. 나는 감자국에 김치전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니까 언젠간 채식 지향정도는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평범한 일상에 스며든 가장 익숙한 권력에 대하여'. 이 책의 뒷 편에 새겨진 문구에 마음이 정통으로 꽂혔다. 나는 원체 권력형 위계질서를 불편해하지만 어떤 불편함은 고화질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선명한 구도를 보여주는 건 명절때였다. 여자어른들은 왜 임신출산의 휴유증으로 뼈가 쑤시면서도 차가운 아랫목에 모여 남은 밥을 먹었나. 엄마는 왜 아침부터 밤까지 설거지만 할까. 동생은 왜 부엌에 가면 고추가 떨어질까. 물론 어릴적 이야기며 흐른 시간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편한 순간은 존재한다. 책은 이 불편함의 근원을 정통으로 꼬집어본다. 식탁 위의 상황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그래서 '정치적인' 식탁이다. 꽤 재밌었지만 종종 현타주의..
.
밥상은 식재료와 요리, 만드는 자와 먹는 자 등 수많은 관계로 형성된다. 이제는 밥상이라는 말도 불투명해졌고, 여러 용도의 테이블이 밥상을 겸할 정도로 식사의 무게가 줄어들고 있다. 의식주의 센터인 식은 변화하고 있다. 과연 십년 뒤에는 이 책을 어떤 기분으로 읽을수 있을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 그냥 게임이나 하고 싶었던 한 유저의 분투기
딜루트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게임하는 즐겨하는 여성 유저가 '우리나라에서 게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다. 특히 여성으로서 받는 시선을 보다 세심하게 담고 있다. 내 어릴적 이야긴데, 좀 거친 게임에 입문하면 상당한 욕을 배우기 마련이다. 거기에 여성유저라는 걸 들키면 여성차별욕까지 추가된다. 저자도 이런 상황에 주구장창 직면한다. 고깝고 불편한 일도 많지만 그럼에도 게임을 즐기는 천생 게이머 이야기. 게임을 좀 해봤다하면 재밌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살면서 게임을 참 많이 했으니, 구구절절 생각나는 사건들이 있다.
.
컴퓨터가 집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모니터가 뒤로 뚱뚱한 상당히 오래된 고물이었는데, 물론 당시로서는 그다지 뒤떨어진 컴퓨터는 아니었다. 아빠는 업무용도로 샀다고 했지만 이 집의 자녀들은 게임기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전형적인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아빠가 일 하지 않는 시간에 컴퓨터를 쓰려고 늦게 자거나 일찍 일어나서 몰래 켰다. 삶은 한층 더 재밌어졌으며, 눈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도 그 시기. 그때부터 나의 게임연대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 취향은 주니어 네이버 스타일의 인형 옷 꾸미기 게임보다는 스타크래프트같은 전략게임이나 마비노기같은 RPG게임을 좋아했다. 머리와 손이 빨랐을 때는 참 잘했고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그러다 게임보다는 공부에 더 많은 숙련도를 쌓아야 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하찮게 여기던 동생에게 게임실력으로 밀릴 때, 아침저녁으로 부모님 안부인사를 101가지 욕으로 들었을 때, 게임에 대한 흥미가 반절로 떨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가끔 게임을 하긴 한다. 요즘은 짝꿍과 바람의나라 모바일을 한다. 이 곳은 상스러운 욕설도 없는 편이고, 나체를 괴상하게 내놓은 여성 캐릭터도 없는 평화로운 고구려 마을이다. 게임에서 인생을 배운다면 너무 과대포장일까요? 약간의 게임은 현생의 시름을 잊는데 도움을 준다. 약간의 게임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