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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평점 :
저자는 만성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다. 책은 크론병 발병시기부터 발병 전후의 달라진 삶, 현재의 삶과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미디어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크론병이 어떤식으로 몸의 생태계를 망치는 병인지를 알게 되었고, 사회에서 보통 이하의 체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선과 페널티가 어느정도인지 인식하게 되었다. 책 초반에는 그가 말하는 낯선 울림을 크게 느꼈다면, 후반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나의 컨디션에 의문이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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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근원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점점 그가 말하는 언어들이 푸념처럼 느껴졌다. 푸념이 백가지 정도로 나열되면, 절로 우울해진다. 이건 아픈 가족을 두었을때의 우울과 비슷하다. 나는 점차 독서중에 기력이 저하되었다. 저자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듯이 이렇게 짚어주는 부분이 있다. "왜 나는 이렇게 '힘 빠지는' 소리만 줄기차게 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나에게 그런 '힘'이 살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긍정하는 열정적인 소수자들 사이에서 나는 금방 지친다. 그 사람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뜻에 동의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금방 지치는 몸 때문이다.(p.254)" 이래서 아프다, 저래서 아프다는 얘기가 사람을 죽죽 처지게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역시 (우리가 흔히 기운을 얻는) 열정파, 건강파 사이에서 외로움과 힘듦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이럴까'하는 의문에 휩싸였는데, 어떻게보면, 내가 글을 읽으며 지쳤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저자가 말하는 '환자로 살아가는 삶'이 세상에서 지워져 있다는것의 증거였다. 나는 난치의 삶을 몰랐고, 또 그걸 알아가는게 버거웠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다른 세계로 접속케하는 하나의 관문처럼 여겨진다. 누군가에겐 현실이고 나는 그걸 바라볼 뿐이겠지만, 그래도 몇가지 사실을 알게되어 더이상 내 세상에서만 갇혀있지 않을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계속 부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