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운동했다.
가벼운 걷기, 그덕에 독보적 활동의 오늘치를 달성했다.
운동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고, 리디 ‘수진‘이나 ‘민준‘의 목소리로 들으며 운동하기에도 괜찮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운동 과정이나 헬스장에서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 생각지 못했던 점을 꼬집은 것도 좋았다. 인권운동가로서의 관점이 드러나는 부분도 마음에 든다.
장르의 한계가 있어서 작가가 쓴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아틀라스처럼 일로 힘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처럼 쓰는 힘도 필요하다. 일이 아닌 데다 에너지를 들이는 것,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가리켜 흔히 사치라 한다. 그러나 어디 삶이 필수품만으로 이루어지는가. 살아가려면 간혹이라도 사치품이 필요하다. 여유와 틈을 ‘사치’라고 낙인찍은 건 아닐까. 그렇게 사치라는 말은 ‘분수를 지켜라’ 하는 말로도 바뀌어 우리 삶을 단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힘을 쓰는 일이 사치라면, 난 내 힘을 하늘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사치를 마음껏 부릴 것이다.

아무튼, 피트니스 | 류은숙 저

임금이나 노동시간 같은, 처우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웃어야 한다. 상냥함이 의무다. 그런 감정노동의 시대다. 특히 체육관 샘들은 언제든 웃어야 한다. 체육관을 다니면서 내게 가장 거슬렸던 건 회원들의 반말이다. 체육관 샘들은 거의 다 젊은 분들이다. 그래선지 트레이너들에게 존대를 하는 회원을 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젊은 회원들만 샘들에게 존대를 한다. 나이 많은 쪽이 적은 쪽을 향해선 반말을 하는 건 전통이고 흠이 아니라고 여기는 걸까? 아니다. 나이 많다고 반말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전통이 아니라 신분사회의 의식인 거다. 21세기 만민평등에 기반한 공화국의 시민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체육관이건 어디서건 우린 동등한 시민으로 만나는 거다. 나이뿐만 아니라 하는 일, 일에서의 직위 같은 거를 따져 함부로 반말을 하는 건 타인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요새 하는 말로 적폐 중 하나다.

나는 평소에도 깎아달라는 말, 그냥 좀 해달라는 말이 싫다. 원자재나 재료는 조목조목 값을 따지면서 사람의 수고에 제값을 치르는 경우는 드물다. 경제가 어렵다 하면 사람에게 치러야 할 몫부터 깎으려 하지 않던가. 체육관 기본 이용료는 이 돈으로 내가 사용하는 전기요금, 수도요금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싸다. 경쟁이 심하니 체육관마다 일종의 박리다매 전략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PT로 수익을 벌충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원래 그 정도는 받아야 제값일 것 같다.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 체육만이겠는가. 물론 저마다 사비로 해결하지 않고, 보편복지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체육이 활성화되면 훨씬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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