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 다 괜찮다. 인간은 악(惡)에 패배할 수 있지만 영혼까지 내주진 않는다. 악이 인간을 현혹해 죽일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빼앗아가지 못한다. 악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악이 가질 수 있는 건 인간의 거죽뿐이다. 악마가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건 오직 죽은 자의 데스마스크뿐이다. 한없이 약한 인간도 악마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가족, 친구,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악에 무릎 꿇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한계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나를 성폭행한 소년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이 사실은 1000퍼센트 확신하는데 용서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헝거》, 337쪽.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낡아빠진 이데올로기 앞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의 결연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피해자에게 "합의하고 잊어버리라"고 종용하고, 가해자에게 "반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는 누구의 편인가.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피해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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