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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이 책 겉표지엔 띠지가 둘러져 있다.
거기에는 큰 글씨로 "다시 김애란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느낌은 "역시 김애란이다." 이니 정말 <딱>맞는 광고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김애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참 특별하다.
<달려라 아비>를 읽고 김애란이라는 이름을 맘 한 구석에 기억해 두었더랬다.
1월 2일,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2007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을 보고 주저없이 샀더랬다.
거기에는 김애란의 "성탄특선" 이 수록되어 있었다.
2월 7일, <2007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샀다.
우수상 수상작에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가 있었다.
7월 14일, <200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을 샀다.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 이 있었다.
10월 6일, 김애란의 두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 를 샀다.
8편 중 3편이 이미 본 것이지만 "김애란"이기에 샀다.
왜 난 김애란의 소설을 마음속에 담아두는가...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소설속에는 나의 20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이들처럼 나도 의자를 올려야만 다리를 쭈욱 뻗고 잘 수 있는
고시원에서의 그 절망감과 일상들을 느껴봤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의 그녀들 처럼 내가 경험한 아르바이트의 종목(?)도 다양했었고,
또한 그녀들 처럼 학원을 전전하며 "학원"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높이 날지 못하고 학원에서 보내는 그 '젊고 혈기 넘치는 절망감' 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성탄특선>에 나오는 그 오누이처럼......
화장실도 없는 단칸 방에서 오빠랑 살아본 경험이 있고,
둘의 적금을 털어 천만원 더 비싼 방을 구하러 나갔다가 반나절 만에 풀이 죽어
서로 주고 받는 말...
"난 있쟎아. 천만원 이면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줄 알았어" "나도"
그 느낌을 알기 때문 일 것이다.
또.............
"오래전부터 '소독한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은 사내의 로망 중 하나였다."
그 당시 난 밤마다 2시간 연속으로 운동을 하고 완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내 소원은 샤워하고 난 뒤 시원한 오렌지 쥬스 한잔 마시는 것이었다.
그 소원은 한 두번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 내겐 그 오렌지 쥬스도 너무 비쌌다.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처럼....
"샤워기를 틀자 쏴아-하고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린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도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
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보통보다 약간 좋은 목욕 용품으로 샤워를 하며, 쾌적함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두려움 비슷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모든것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말이다."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행복하고 열정적이고 당당하고 희망적이었다.
그리고 나의 20대는 가난하고 때때론 절망적이고 암울하고 비참하고 지지리궁색했었다.
20대의 행복과 열정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끔씩 들춰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련하게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아직도 흐뭇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20대의 절망과 가난은 예고없이 불쑥 내 마음을 쑤셔댄다.
나 스스로 들춰보는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에는 그런 나의 20대가 오롯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아팠던 나의 20대가 그대로 되살아난다.
어떤 소설이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문학"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한문장 한문장이, 그리고 그 문장과 문장사이의 여백마저도 아껴가며, 음미해가며
읽어가는 독자가 있다면 그 소설은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문학'이다.
그래서 난 김애란의 두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별 다섯개를 아낌없이 주고 싶다.
올 해가 세달 밖에 남지 않았지만 올해 읽은 한국소설 중 내게 별 5개의 소설은 단 하나다.
완전한 소설속 세계로 나를 끌어 당긴 그 이야기꾼의 장편소설은 올 한 해 내게 참으로 큰
울림을 남겨줬다.
그런 그가 얼마전 단편집을 냈다.
난 주저없이 샀고 맘 설레며 읽었다.
완전 실망, 실망, 대 실망을 했다.
배신감 마저도 들었다.
한 권의 장편소설만으로 그를 너무 맹신(?)했나 보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는 그런 걱정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구입했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된 경로로 책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은 이미 검증(?)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달려라,아비>를 재미있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 책 역시 만족스러울거라 생각한다.
2007년 내 맘대로 별 5개 소설 5권 중 2권이 한국소설이 되었으니,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