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문명기행 - 오아시스로 편
정수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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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배출한 또 하나의 국제 여행가, 세계인, 문명교류학 대가 정수일의 2000년대 초반 도서.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이전 도서와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실크로드 육로(북로)를 민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인 시야로, 역사적이면서도 현재적인 관점에서 여행했다. 서방 중심의 세계인식이 과도하게 퍼진 한국 사회의 상황에 젖어 있다가, 이러한 세계 곳곳의 이야기들(특히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을 접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역사, 광활한 자연, 그 속에서 열정적으로 생애를 던졌던 다양한 인간 군상들, 그리고 현재를 묵묵히 강인하게 살아가는 세계의 대중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유와 통찰을 깊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의 여행기가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사진 자료들의 가치 역시 매우 높다.
목차만 보면 방문한 국가들을 일별하기 어려운데, 중국(1~15)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16~19) 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20~32) 이란(33~41) 시리아(42~45) 튀르키예(46~52)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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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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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책의 원제는 Uncivilized: Ten Lies that Made the West로, 서구 현대 문명이 자신의 패권적 우월성을 위해 “문명”을 설정하고 “야만”(또는 비문명)을 규정한 역사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일종의 십계명’을 분야별로 제시하고, 그 속에 새겨진 제국주의적-자본주의적 편견을 비판한다. 비판은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뤄진다. 사실상 서구 현대 문명은 거대한 성취 속에 부수적 오류들을 품고 발전해왔던 것이 아니라 무수한 희생과 억압 위에서 현실의 가능성을 협소화하며 특정 국가와 계급 그리고 분야만을 비대화시켜왔다는 것. 서구 문명이 가장 잘해온 것은 심지어 ‘물질적 발전’도 아니라 ‘현실을 눌러낸 브랜딩’이기에(하나 더 이야기한다면 “칼을 먼저 들었다는 것”),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알기 위해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며(85쪽), “모두가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 석상에 모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이야말로 사실은 그 자체로 예술”(307쪽)이 된다.
_ 장별 글 구조는 ‘저자 경험 제시(도입)→여러 역사적 예시를 통한 개념의 허구성 폭로(본론)→주장 또는 개념의 재구성(마무리)’이다. 장별 글에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박력 있는 논지를 힘 있게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제시한다. 전반부의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는 쉽게 술술 읽히고(우생학, 흑인 토요학교, 잉카의 키푸, ‘고전’과 ‘대헌장’, 지정생존자 비판 등 좋은 이야기가 많다. 1~5장을 연결하여 읽어보면 저자의 논리 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시간’, ‘예술’, ‘죽음’은 조금 더 심오하게 논지를 확장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과거의 존재”로 타민족, 타계급, 타문명을 사유하는 것은 어쩌면 침략적 계몽주의의 ‘끝판왕’ 또는 ‘마지막 관문’일 텐데, 저자는 이를 ‘자본주의적 시간 관리 및 표준화’ 비판과 다른 문명의 시간 인식법(오세아니아인의 ‘드리밍’)이 시사하는 바를 제시하며 깨트리고자 한다. 역사를 누적하며 살아온 인간 집단에게는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시간표와 시간관념이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사유는 “각자의 사회 제도, 발전 경로, 이익, 차이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국제 관계의 민주화”, “자주화”를 지향한다고 일컬어지는 최근 “다극 세계” 논리의 사실상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일 수도 있을 것이다.
_ 저자 수바드라 다스는 인도계 영국인이다. 인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아랍에미리트의 영미권 학교에서 유년기에 공부하고 “서양 학교에 다니는 남아시아계 아이의 모범적인 소수자 스테레오타입”으로 자라 우수한 성적으로 UCL에 입학해 학위를 받고 이후 계속해서 UCL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스스로를 “내 삶과 교육 전부가 ‘서양과 나머지 세계’라는 이분법이 틀렸다는 증거”로 “나는 이 둘 모두”라고 확언하고 있다. 맥락상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자신의 ‘뿌리’에 대한 탐구와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난 듯하다. 여기에서도 여러 가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야기가 파생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주목했던 지점은, 저자가 그러한 사색의 결과로 ‘다문화적 영국인’보다는(또는 뿐만 아니라) ‘다극화 속 영국인’의 관점에서 ‘세계의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_ 지금까지 ‘권력 게임’의 승자가 ‘문명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그동안의 ‘패자’가 이를 재구성하는 주역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이 책의 핵심 주제가 누군가에겐 진부하다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할 지점은 변화 중인 현실이다. 책 속 이야기가 ‘글로벌 다수’의 실질적 진출과 “서구의 패배”와 맞물릴 때, 그것은 이미 찻잔을 훌쩍 벗어난 태풍에 관한 예보일 수 있다. 앞으로 수년, ‘일극에서 다극으로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를 여러 측면에서 조망하는 (또한 이를 외면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한국의 정계와 학계를 비판하는) 컨텐츠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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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5 - 개혁의 실패와 망국으로의 길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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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5년>, <고려사>까지의 박시백 화백의 작업을 보면 ‘당대의 기록’에 기본적으로 충실하면서 (긍정적인 의미로서) ‘교과서’적인 보편적 역사 인식의 틀을 정리, 제시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고려처럼 ‘사실관계’적 사료가 부족한 시기의 경우, 아무래도 평이하게 내용이 서술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해석이 늘어날수록 기본 취지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럼에도 민족사의 흐름을 건전하게 보편적으로 서술해내는 박시백식 ‘사관’의 강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망국 이후, 고려사 전체를 개괄하는 내용의 작가적 주관이 한 번 정도는 제대로 펼쳐졌으면 어떨까(현재는 단 2페이지로 서술되었다),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조선왕조실록>의 18권 후반부처럼). 앞으로 해방 후 역사 등 현대사 작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논쟁적인 지점들을 어떻게 ‘박시백식 사관’으로 해석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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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대 문재인 - 한미동맹, 그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
김호 지음 / 보민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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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 대 바그너」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 니체가 삶의 데카당, 즉 현실 순응과 타협의 ‘유창한 변명’으로서의 표상으로 ‘바그너’를 지목했듯, 저자는 현 한국사회에서 ‘개혁’과 ‘진보’의 좌표를 유실했으면서도(신 기득권 세력이 된 지 오래임에도) 여전히 ‘정의’와 ‘도덕’의 선두를 자처하는 세력을 ‘문재인’으로 표상하여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사회에서 모든 가치를 지배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1. 실제로 영향력이 크다 2.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소불위’의 법이 존재한다 3. 모든 실증과 이성이 멈춰서고-특히 지식인들-, 비판적인 날카로움이 유실된 채 통념과 권력에 대한 지성과 언어의 타협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안보” 의식, 즉 “한미동맹”에 대한 복종을 기본 과녁으로 하여 세간의 좌우, 보수-진보, 반북-친북이라는 구분을 지워버리고 종횡무진(때로는 과녁을 빗나가는 듯 보이는 글들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하는 글로 질주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사범이 된-이후 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 남북경협 사업가’라는 저자의 정체성 자체가, 이러한 이야기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분명한 토대다.
- 저자가 보기에 지금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퇴행은, 한미동맹을 추종하면서도 거기에 온갖 그에 반대되는 가치들을 붙여서 자신의 정체성을 은폐하고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는(친미자주, 좌파신자유주의 따위의 요설이 나오게 된 이유다.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사실상 이제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피해자인 척하는 세력과 사상에 있다. 요컨대 “미국의 손을 잡고”(즉 잡아야만) “변방에서 중심으로” 가서 “압도적 국방”과 함께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웅장한 꿈을 가진 척하지만 사실은 유아적이고 좋은 말들은 많지만 실천은 기만적인 세력과 명확하게 결별하지 않으면, 별 차이 없는 이들의 “한 번은 희극, 한 번은 비극”(사실상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의 지금 여야가 정권 교체를 주고받는 상황 같은 것들)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저자가 집요하게 ‘문재인’류를 집중 비판하는 이유다.
- 페이스북에 이미 공개한 글들이고, 그 특성상 시간에 따른 배열일 수밖에 없는 측면 때문에 책으로 묶어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듯한데(정치 시평 정도에만 머무를 수도 있는), ‘비겁’ ‘굴종’ ‘용기’ ‘정의’ 그리고 ‘인간말종’이라는 소제목 키워드를 통해 한미동맹 추종을 정치외교적 차원을 넘어선(물론 포함하는) 한국사회의 집단적 철학, 사회적 정의 차원의 문제로 더욱 강력하게 성공적으로 제기해냈다. 결국 한미동맹에 대한 입장은 한국사회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규정하며, (개인이든 집단이든) 강자와 대세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투쟁을 통해 세계를 바꿔나가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즉 새로운 정의와 도덕을 용기 있게 선택하고 비겁하고 굴종적인 인간말종적 삶과는 결별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한미동맹”이 “도덕적 선입견”과 연결되는 이유다. 안보, 한미동맹은 북한 관련 이슈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철학과 존재에 관한 문제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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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국은 몰락한다 : 미국의 붕괴
안드레이 마르티아노프 지음, 서경주 옮김 / 진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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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기 소련의 붕괴를 체험하며 미국으로 탈출했던 저자가(미국을 엄청나게 동경했던 건 전혀 아닌 듯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몰락과 제국의 해체를 총체적으로 전망한 내용의 책이다.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꽤 많다.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 탈제조업: 결국 경제의 핵심은 실물 생산이다. 실제로 부를 생산해야만, 집단의 삶을 가능케 하는 이른바 현실의 ‘먹고살기’가 가능하기 때문. 그러한 면에서 미국은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국가 차원에서는 완전히 상실하였다. 산업적 제조업 생산을 위해서는 숙련되고 교육받은 노동자, 엔지니어, 교사 등의 전문적 직군이 반드시 필요한데(여기에서의 노동자는 상당히 광범한 숫자와 분야를 아우른다), 미국은 이러한 계층-계급군 자체를 상실하였다. 이른바 ‘FIRE’ 경제를 통해 기축통화 달러와 부채를 바탕으로 기형적인 소비로 연명하고 있지만, 이는 금융적인 허상의 경제지표에 의한 사상누각이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적지 않은 인구의 식량 공급을 우려해야 할 정도의 양극화적 몰락을 이미 겪고 있다. (그리고 탈달러라는 흐름이 부각하고 있다. 부채 소비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우려가 ‘탈정신적 소비 문화’ 또는 ‘소비를 위한 소비’에 대한 철학적 차원의 것이었다면, 3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훨씬 심화되어 경제의 근본을 파괴하며 내적 생존과 외적 패권의 붕괴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 군사적 신화의 붕괴: 미국은 더이상 세계 최고의 전쟁 능력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다. 사실, 미국의 ‘군사력 신화’는 예전부터 과장된 측면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피해를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장 강력해진’ 미국이기에, 지난 70여 년간 미국의 국력은 그로 인한 상대적 강세를 보유한 것이었으며, 군사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즉, 약해진 나라들 또는 약했던 나라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능력으로써 ‘군사적 신화’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상대의 반격 능력이 상승하고 심지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군사력까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상대국들 일부가 보유하게 되면서 미국 군사력의 신화는 ‘손쉽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확장 억제에는 구멍이 뚫렸고, 항공모함의 진출은 그만큼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으며, 본토에 대한 방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 자폐증 엘리트: 경제적으로 제조업이 붕괴하고, 군사적인 절대 강세 역시 붕괴한 미국의 현실은 그 무엇보다도 엘리트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들은 2차 대전의 ‘결과물’로 도래한 강한 미국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스스로가 개척한 것으로 착각했으며, 냉전 시대 소비에트연합의 붕괴에서 ‘교훈’을 찾기보다 ‘자신의 위대성’을 확인하며 지적 자폐와 오만에 빠져들었다. ‘사회주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완벽하다’는 교리에 종교적으로 빠져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 사실상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철저히 계급적으로 자본주의 최상층에 위치한 ‘풋내기들’(이들이 국가 요직을 차지하기까지 어떤 사회적 경험을 다양하게 겪어보았겠는가?)이 자신의 관점에서(요즘의 인플루언서 지망형 정치인, 관료들은 딱히 전문적인 공부를 했다고도 볼 수 없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려는 통에 세계는 더욱 극심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타국의 정권, 국가권력, 그 나라의 사람들을 전혀 동등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패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현실이 이미 그렇지 않음에도, 그러하다. 다극화하는 세계를 인정할 인식 능력, 이에 대응하거나 타협할 전략적 능력은 없고 오로지 ‘자폐적’ 패권의 틀 속에서 세상을 보기에, 세계대전이 현실화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이게 요즘의 상황이다). 이들은 오만하고, 미숙하고, 비현실적이고, 무능한 집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저히 ‘계급적’이다. (그것은 금융자본주의 최상층의 숙주적 기생 지배계급이다.)
- 국가 기능의 붕괴: 무엇보다도 미국은 ‘국민’을 형성하지 못했다. 일천한 역사 속 ‘샐러드보울’처럼 모인 미국은, (남북 전쟁 또는 2차 대전 이후) ‘하나의 미국’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최근의 현대사를 보면, 엘리트 계급은 국가적 이익과 단합을 내팽개치고(부르주아 국가로서의 최소치조차 내버리고) 오로지 자기 계급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심지어 절차와 형식도 무시된다.) 그러한 이익은 미국 주도 초국가적 엘리트들의 연합에 의해 주도되는데, 기본적으로 ‘서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이들의 이익은 각 국가 및 국민의 이익과 충돌한다(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은 국민을 지배한다). 이들에게 국민은 그저 지역적으로 구성된 집합일 뿐이며 집단적 의미를 지녀서는 안 되는 ‘개별화된 소비자들’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러한 현상의 최정점에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집단의 정신적 근원 확인과 단결을 도모할 수 없을 정도로 분산되어 있다(저자는 ‘WOKE’ 운동이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장된 것이라고 보며 극도의 불만을 표출한다. 잘 독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집단적 가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역사를 무시하는 나라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다.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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