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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즐거움 - 지적 흥분을 부르는 천진한 어른의 공부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11월
평점 :
_ 독특한 관점의 저술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수많은 글들로 알려진 우치다 다쓰루의 새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글쓰고 수련하는 사상가이자 무도가”로 소개됐다. 현재 고베여학원대학 프랑스 문학 명예교수(레비나스 철학 전공)이자 개풍관(합기도장) 창립 사범이며, 블로그 ‘연구실’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집단적 지적 흥분”(차분하고 지적인 개념이다)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그를 “마치바街場의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적절한 듯하다. 마치바는 ‘지식인도 자연스레 포함된 사람들의 저잣거리’다.
_ 저자의 책은 한국에 여럿 소개되었는데, 이 책은 그 특유의 “전도자” 개념에 공감하며 직접 교류하는 박동섭 독립연구자가 번역했다. 사실 번역 이상의 작업이었던 듯하다. 이번 책의 경우, 질문과 응답의 형식의 기획을 번역자와 출판사 편집부가 제안하여 성립하였다고 한다. 그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관점 성립의 배경을 이루는 “배움”과 “지적 폐활량”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_ 그는 무엇보다도 해결되지 않는 것을 그 자체로 끌어안고 분투하며 나아가는 즐거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해하는 것”만큼 “이해하지 못한 것”의 목록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강박(지배권력이나 체제 또는 자기 자신만을 앞세우는 교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무방비) “억지로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무구). 과정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하나씩 깨달아가며 검증하고 다져가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무지의 즐거움”은 곧 ‘배움의 즐거움’이다(제목이 아주 멋진 이유다). 미지의 세계를 기지로 끌어당기는 동시에 미지의 영역을 확장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 폐활량”이 필요하다. 내가 느끼기에 이는 사실상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과 공존할 수 있는 ‘인내심’과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_ 마치 아포리즘처럼 재미있는 구절이 많다. 이런 방식의 대화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라 그런지, 질문을 ‘모티프’ 삼아 유려하게 흘러간다.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 외의 일들은 조건을 모두 똑같이 해 두는 게 좋다”. “(개성 있는 저의 관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제가 집단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늘 고민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성’이란 집단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지성인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 덕분에 주변 사람의 지성이 활성화되고, 그 덕에 새로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상태’가 생기는지로 평가해야 합니다.”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애정이나 신뢰보다 훨씬 전달력이 강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발신자의 의도를 올곧게 수신해 주는 것은 경의입니다.” 그 특유의 스승과 제자론, 조술자와 전도자, 고유의 ‘보이스’(차이의 아이덴티티가 아닌 게 핵심), 그릇을 키우는 수행으로서의 배움, 몸으로 소화하는 배움(과 무도의 연결), 종교성과 과학성의 일치, 교육에 관한 관점 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좋다.
_ 그의 이런 이야기들이 현학에 머무르거나, 자기계발로 흘러 소비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자유로움’이 전후 일본의 ‘꼬마 군국주의’와 선명하게 대립하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는 사쿠라 진다, 속국 민주주의론과 같이 매우 구체적으로 미국 중심 전후 세계체제와 그 속에서 ‘속국’이자 ‘군국주의’형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작동하는 일본에 대한 선명한 비판을 담지는 않았지만, 그와 상통하는 민주주의에 관한 꼭지도 하나 담겨 있다. “자기 개인과 나라의 운명 사이에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체제”로 “완성된 적 없는 하나의 이상향”이자 “과정”이며, 바로 그렇기에 정치, 외교, 경제, 사회의 모든 사안은 전문가와 관료의 것이 아닌 그 사회 모든 이들이 알고 느끼는 만큼 자유롭게 말하고 듣고 영향을 끼쳐야 하는 집합적 의제라는 것이다. 핵심은 지식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_ 결국 그가 말하는 “어른”은 공적 책임감을 윤리적으로 끊임없이 인식하는 기반 위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