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지음, 김동수.박수철 옮김 / 역사비평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재일사학자 故 강덕상 교수의 역작. 지금도 일본의 국가 책임 및 그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그래서 굴욕적이고 기형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1965년의 ‘한일 협정’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은) 관동대지진 시기 조선인 학살에 대해 아주 촘촘하게 추적한 역사서이자 사회정치 도서이다. 자연 재해 시기 ‘우발적인 충돌로 수백 명의 조선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일본의 공식 입장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흉악한 것인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살의 시발점이 된 ‘조선인이 소요를 일으킨다’는 거짓 정보의 근원지이자 유포자가 정부 기관들이었으며, ‘언제나 소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조선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시작한 것도 군경이었고, 재해 시기 재향군인회와 청년단 등의 자경단을 적극 조직하고 통제한 것이 국가였으며, 1차 대학살 이후 살아남은 조선인들을 ‘전쟁 포로’ 취급하며 체포하여 수용소에 모아놓고 취조하며 또 다시 학살하였다.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233명이 사망했지만, 당시 <독립신문>의 비밀 조사 결과는 6000여 명이었고, 저자가 ‘보수적으로’ 추산한 희생자 수는 최소 6433명이다. 학살을 주도한 계엄 주도 군인들은 승승장구하였으며, 자경단의 극히 일부가 구속되었지만 그 기간은 최대 3개월(!)에 불과했다.
저자는 이러한 학살이 1919년 3.1 봉기 이래 계속 고조되던 조선의 독립-민족해방 투쟁 움직임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어린(또한 공포에 휩싸인) 대응이 그 근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짚는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이 사건은... 기껏해야 동정의 눈물을 사는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사건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문제를 절대 비껴갈 수 없다...1910년 이후 식민지 지배와 그것을 보조했던 일본 민중이 ‘만만치 않은 적’인 조선인민에게 느꼈던 공포심이 불러온 집단 살인이자 민족 범죄였으며, 불행한 한일관계의 연장선에 놓인 필연적 귀결이었다.”
즉, 여전히 철저히 은폐된 관동대학살의 진면모는, 결국 한일관계를 역사적으로 바로잡고 정의롭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밝혀질 수밖에 없다. 핵 오염수를 뻔뻔하게 방류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그에 맞장구치는 일본과 한국의 현 정부들에게 기대하기는 난망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스스로를 위해 반대편에서 진실을 갈망하는 변화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 고인이 된 노학자의 역작을 널리 권하고 싶은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