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인가 산업자본주의인가
마이클 허드슨 지음, 조행복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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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세계의 ‘다극화’ 경향 속에서 종종 소개되는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2022년 책으로, 지금의 ‘신냉전’ 상황을 금융자본주의 vs. 산업자본주의(또는 사회주의)의 대립으로 보고, 사실상의 과두제적 정치 경제 체제인 금융자본주의-다른 말로 지대(rent)와 독점을 위한 “민주주의적 제국주의”-가 이 대립에서 붕괴하는가가 사실상의 진정한 “문명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쓰였다. 10회의 강연록을 13챕터의 본문으로 해설했다.
- 무엇보다도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는 ‘노동’을 통해 발생하는 실질적 가치를 수탈하는 이른바 ‘지대’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다수 대중의 실질 생활과 ‘산업’의 내핍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현실적으로 아주 실감나는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가 촉발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같은 상품을 보라!).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수치화된 부(저자는 지금의 경제 수학은 사실상 ‘폰지 사기’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GDP의 경우 금융 소득을 넣어버림으로써 개념적으로는-이미 노동으로 인한 가치가 계산된 상황에서 이중, 삼중 계상이 발생한다- 사용할 수 없는 게 되어 버렸다는 설명이다)는 대중의 경제 현실 인식을 왜곡시킬뿐더러, 부의 쏠림을 야기하는 지배층(1%, “파이어 부문-금융, 보험, 부동산-”)의 행태를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 저자가 특이한 점은(위의 내용은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비판적인 논자들에게서 찾아볼 수는 있는 주장들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고전정치경제학을 활용해 “산업자본주의”를 금융자본주의에 대비시키는 것이다. 즉, 당시 자본의 형성을 분석하기 위해 ‘봉건적 지대’를 비판했던 좌-우의 고전정치경제학을 한 번에 소환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논리를 따르면, 20세기 초 산업자본주의는 끝내 금융자본주의에 무릎 꿇었으며, 그로 인해 현재 세계는 여전히 봉건적 지배 질서 속에 놓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차원의 봉건적 지배 질서를 끌고 나가는 것이 미국이고, 월스트리트이며,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라는 말이다.
- 저자의 특이한 생각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산업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와 대립하는 반면, 사회주의와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체제라는 것이다(번역판에서는 일부 생략되었는데, 이 책의 부제는 ‘금융자본주의인가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인가’다). 형식이 무엇이건, 과두지배 체제의 실질적인 상징은 ‘지대’와 ‘독점’이며, 이를 통한 세계적 차원의 다수에 대한 수탈이기 때문에, 이를 막아나서는 자주적인 정부(국방력을 포함하며 금융, 은행, 신용을 직접 통제 관리 운용한다)의 자립적인 경제(기본적인 국민 필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실질적인 생산 능력. 저자는 노동을 통한 각 나라들의 산업 발전과 생산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문명화’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각각의 경제적 발전과 이를 통한 자립은 필수 요소다)가 “문명”의 발전에 핵심 요소라는 것, 그래서 지금의 신냉전과 다극화 양상은 구체적으로는 세계적 차원에서 봉건적 지배 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각 대륙 여러 국가들의 자립 투쟁의 대립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금융자본주의 기득권층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고, 이들이 ‘지대’를 수취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만들고 꾸려나가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산업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통한다는 말이다(저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개혁은 여전히 부채 탕감과 토지 개혁이다. 정부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이를 연결하는 키워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국민 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강력한 정부’다(저자가 사실 대립했다고도 할 수 있는 좌-우 고전정치경제학을 묶을 수 있는 이유도 ‘정부’에 있는 듯하다). 저자는 그러한 맥락에서 중국의 최근 모습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 역시 개혁노선을 걷고 있다고 본다. 반면, 저자는 이른바 민주주의체제의 자정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는데, 그 이유는 1) 현 체제는 1%에게 정치, 경제적 권력이 집중된 과두정치로 완벽하게 안착했으며 2) 이러한 체제의 떡고물을 바라는, 이른바 중간계급’(많이 잡아서 20%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이 체제 편입의 열망으로 개혁을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당 정치는 사실상 선택지 자체를 극도로 한정시키는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 하나의 장점으로, 저자는 “실제 경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요소들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얼개를 그리고 있다. “쓸데없는 수식”들이 아니라 지대, 부채, 부동산, 식량, 석유, 천연자원, 독점 등의 개념과 미국의 ‘자주적인 정부’들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침략의 패권-제국주의 역사, 이른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사실상 미국의 신용에 기반을 둔 종이 증서인) 헤게모니와 같은 사례(탈달러 국제 신용 창출까지 포함해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달러 기축통화 체제는 사실상 전 세계 국가들의 통화 주권을 훼손하고 있다)들을 통해 현 체제의 성격을 설명한다. 누가 부를 가져가고, 누가 빼앗기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핵심 요소는 무엇인지 밝히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외교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경제를 ‘여러 가정적인 요소들을 통해’ 분리해버린 20~21세기의 주류 경제학자들의 방식(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부의 정책을 외부요소로 간주하여 아예 빼버리고 이론을 전개한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하면 무조건 강자에게 유리한 결론-현재의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이 나올 수밖에 없다)을 정반대로 되갚고 있다.
- 고전정치경제학의 방법과 관점을 21세기에 추구하고 있는 학자의 언술로, 지금의 지적 풍토(특히 경제 관련)에서 아주 신선한 자극이 있다. 저자의 관점, 비전, 생각에 상당히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강연록인만큼, 핵심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이 부분을 불평하면 안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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