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 조선 엘리트 파워
안승일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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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국사책에서 한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인물인데요..

김옥균은 조선후기의 개화파로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그는 매국노라는 오명을 쓰고 숨어 살아가다가 결국 조선인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의 시체는 능지처참을 당하게 되는데요..

잘못된 정치인을 박탈하고 새로운 신세계를 열고 했던 김옥균..

그는 구조선을 파괴하고 신조선을 건설하기 위해 늘 고민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어릴적부터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22살에 장원 급제를 하였으며, 승승장구 해나간 김옥균은

개화사상을 가진 청년들과 함께 더욱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했습니다.

강화도 조약이후에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하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요..

조선의 정부에 끊임없는 참견을 하는 청나라의 힘을 쇠퇴하기 위해 일본군의 힘을 빌리는데

앞장을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요..

일본군을 앞장세워 청군의 힘을 쇠퇴시켰지만, 그들은 농민과 상인들의 힘을 조작할 줄 몰랐기 때문에

조선 스스로가 국민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에는 일본의 정치적인 개입의 입지를 다져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김옥균은 조선에서 추방되었는데요.. 일본에서도 이용가치가 없어진 김옥균을 더이상

받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조선과 일본에서 모두 버림을 받고 살아가다가 결국

조선인에 의해 암살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원했던 세상은 어찌보면 태평성대의 세상이고, 더욱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에게 아픔을 남겨주었습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죽을때까지 마음 편하게 살아가지 못했던 김옥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헌신짝처럼 버려놓은 김옥균이 죽은 다음에 , 그를 애도했다고 하는 일본의

태도입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마치 조선인들의 행패인마냥 뒤집어 씌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의 습성인 것 같습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동해가 일본해라고 우기는 일본인의 행태..

예나 지금이나 일본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가 죽고난지 일년뒤에 그에게 주어졌던 반역죄라는 오명은 씻어졌지만

김옥균과 그의 후손에게는 두고두고 상처가 되지 않을런지..

또한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결과가 나쁘다면 겪게 될 일들을 생각하며

더욱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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