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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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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쓰고, 읽고, 나누는 행위는 우리를 침묵시키려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한 중요한 일이다. / p.11

초등학교 다닐 시절에 뉴스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한 하리수 씨가 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께서는 세상이 말세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게 의견이 양측으로 갈린 것으로 알고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던 어린 아이였던 나는 남자가 어떻게 여자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띄우면서 그 이슈를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트랜스젠더라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인터넷 방송을 하다가 입소문을 탄 이들이 공중파 매체로 자연스럽게 넘어온다. 얼마 전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한 트랜스젠더 방송인의 일상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을 지나가다 본 기억이 있는데 하리수 씨가 떠올랐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조금씩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면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거나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엘리엇 페이지의 에세이이다. 사실 할리우드의 외국 배우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요즈음 인기 있는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의 이름만 인지할 뿐 외국 배우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 딱 그 정도 선에서 멈춰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엘리엇 페이지 역시도 아예 이름조차 모르는 배우였는데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을 했던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편견은 서구 사회는 적어도 동양권의 대한민국 사회보다는 개방적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 엘리엇 페이지는 캐나다 태생의 배우라는 점에서 더욱 강하게 가졌다. 캐나다가 이민 정책으로 보더라도 다른 나라들이 롤모델로 삼는다는 점에서 성 다양성 측면에서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이지 않을까 싶었다. 서구 사회에서 보통의 성 정체성이 아닌 조금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측면이 흥미로웠다.

저자의 부모님께서는 이혼하셨는데 아버지는 새로운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꾸몄다. 엘리엇 페이지는 어머니와 거주하다 자주 아버지의 집에 놀러가 의붓 남매들과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새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이를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랐다. 심지어 아버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엘리엇 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서적인 상처를 주었다는 점에서 이기적으로 보였다.

거기에 학창시절 역시도 외롭고 고독하게 보낸 듯하다. 다이크라는 여성 동성애자 혐오 표현과 패것이라는 동성애자 차별 표현을 마치 별명처럼 듣고 살았다는데 나의 입장으로 상상해 보자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정체성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오히려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너무 답답했다. 이 지점이 언급했던 편견을 깨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라는 키워드에 맞춰진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엘리엇 페이지라는 인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름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성 다양성에 차별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너무 마음 깊게 와닿았다. 아마 사전에 알고 있는 정보를 지우고 다른 소재로 맞춰 본다면 그 맥락으로도 읽혀질 수 있었다. 정체성이라는 게 꼭 성적인 측면에서만 혼란을 겪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과 일상 속에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많은 여운이 남았다.

성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읽었지만 결론적으로 책을 덮고 나니 스스로를 잃지 않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던 책이었다. 그만큼 주는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많았다. 아마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에 부정적고도 차별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적인 정보를 정보 걷어내고 열린 시각을 가지고 이 에세이를 골라 읽게 된다면 큰 울림을 줄 책임이 분명하기에 많은 이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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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의 살인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이수은 옮김 / 창심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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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야마 마사노리는 입술 끝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 p.12

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표가 될 정도로 많이 보이는 이름은 아니다. 한 반에 한 명씩은 존재할 것 같은 이름이라고 할까. 학창 시절에는 성을 붙여서 부른다거나 각자의 특징을 붙여서 부르는 호칭을 더욱 많이 들었던 편이었다. 흔한 이름이 스트레스라기보다는 튀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심지어 성 조차도 너무나 흔한 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 존재감이 없었다. 이름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없었던 듯하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작가님과 같은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한 성씨에 이름이니 없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많은 상상을 했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먼훗날에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일 중 하나가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예명을 하나 정해야 하나 싶었다.

이 책은 시모무라 아쓰시의 장편소설이다. 주제 자체가 흥미로웠다. 살아가면서 동명이인을 많이 보고 들은 터라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이야기가 현실로 된다면 조금 끔찍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고, 느끼지 않았던 동명이인의 삶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추리 장르의 소설임에도 끌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시작은 한 남자가 여자 아이를 유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유망주 축구 선수이지만 이름 하나로 미끄러진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오오야마 마사노리이다. 충분히 능력이 있어 감독님과 구두로 어느 정도 진전이 된 상태였지만 결국 감독님은 오오야마 마사노리가 아닌 다른 학교의 라이벌 학생을 선택한다. 당시 여자 아이를 유괴해 살인한 범인의 이름과 동명이인이라는 점에서 오오야마 마사노리는 이름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그밖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모여 그 남자를 복수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 느꼈던 감정 그대로 이어갔던 작품이었다. 마치 나의 이름이 극악무도한 살인자의 이름과 같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면서 읽었는데 등장인물들의 애로사항이 피부로 와닿았다. 차라리 연기자 이름이었다면 그냥 놀림감 정도에서 끝났을 텐데 범죄자와 동명이인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오해를 받는 일이 많이 생겼고, 놀림을 받는 것을 떠나 인격적으로 동일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어떤 친구는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져서 읽는 내내 스토리의 흥미로움과 반대로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고, 그게 결과와 관련성이 없음에도 범죄자의 이름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지고, 따돌림을 당하고, 더 나은 미래에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너무 이름에만 매몰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면서 소설의 주인공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느꼈다. 대중의 지탄을 받는 사람과 동명이인이라고 해서 모든 그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각자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현실적으로 하나 연결고리를 찾자면 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무조건 찬성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오히려 매체에서 나오는 애매한 정보로 다른 사람을 오해할 수 있고, 악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에 대한 정보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러한 신상정보 공개가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부나 경찰에서 신상정보를 신중하게 여기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큰 이유는 범죄자의 인권 보호이겠지만 이 점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여러 모로 참 재미있는 작품을 만나 읽어서 만족스러웠다. 사실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들이어서 특징을 붙여 설명해 주는 내용들이 초반에는 헷갈렸는데 몰입되어 읽다 보니 이것조차도 나름의 읽는 즐거움이었다. 보통 인물이 많아 헷갈리는 경우들은 많았는데 동명이인이었던 것은 처음이라 재미있기도 했었다. 어느새 범죄자 찾기가 뒷전으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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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의 마법 살롱
박승희 지음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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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지난 숱한 날 속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걸. / p.313

이 책은 박승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힐링의 장소로 도서관, 편의점, 서점 등 다양한 공간들이 등장했지만 이렇게 미용실은 처음이어서 호기심에 선택하게 된 책이다. 지금까지 힐링을 부르는 장르 중 가장 거리가 먼 미용실이라는 공간이어서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미용실을 일 년에 두 번 가면 많이 갈 정도로 관심이 없던 터라 이상하게 반대가 끌리는 듯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인이라는 이름의 미용실 사장이다. 한때는 대한민국의 노른자로 불릴 수 있는 강남의 한복판에 큰 미용실을 운영했다. 그것도 현금으로 크게 비싼 땅을 구입해 미용실을 지었고, 이 미용실은 예약제로 운영했는데 가득 찰 정도로 꽤 인기가 많았다. 미용 실력을 떠나 그곳에서 머리를 한 손님들이 마음 편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강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성황리에 운영되었던 미용실이 사라졌다. 일부의 사람들은 제인이 마녀라는 이야기를 수군수군 댔다. 그곳에 있는 미용사 일부가 사라진 미스터리의 상황이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제인의 미용실은 다율산 외진 곳에 다시 세워졌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제인을 말렸지만 그곳을 고집했고, 사라진 미용사들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석 달이 지나도 손님 하나 없는 자리에 한 여자 아이가 미용실 앞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힐링을 주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술술 읽혀졌다. 미용실과 힐링이라는 게 매칭이 안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읽는 내내 각자 인물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공감이 되었고,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제인의 이야기마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제본이기에 페이지 수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등장 인물에게 큰 공감이 되었다. 하민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처음에 등장했던 손님 장 여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방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이다. 자신의 이야기조차도 터놓지 않는 아들이 답답해 장 여사는 아들인 하민을 끌고 제인의 미녀 미용실로 향한다. 하지만 하민은 어머니를 피해 도망쳤고, 그곳에서 제인의 미용실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미미를 만난다. 그것도 난감한 상황에서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해피 엔딩의 내용이다.

예전에 비해 히키코모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듯하지만 학업과 취업을 포기한 청년층이 많이 늘었기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있기도 하다. 하민이 가지고 있는 아픔 또한 대한민국에서 조명할 문제라는 점에서 와닿았다. 어쩌면 하민이 방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닌 못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 여사의 첫째 아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스토리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혀졌다.

판타지 힐링 소설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마법은 크게 드러나지 않은 듯했다. 그렇기에 제인이 가지고 있는 마법 능력보다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맞추어 읽게 된 작품이었다. 가벼우면서도 공감을 가지고 읽게 된 이유이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으로서는 딱 맞는 스토리여서 읽는 내내 시간을 빼앗길 정도로 즐거웠던 작품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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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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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해 오늘도 산재를 피한 모든 이들이 그들의 노력에 빚지고 산다. / p.8

대학교 다니던 시절,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을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꽤 크게 남아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아는 동료가 이용인에게 칼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인을 만날 때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말을 전한 사람이 학교 선배인지 또는 교수님인지 정확히 그 부분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직종 자체가 현장이라고는 부르지만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기술직에서 언급하는 현장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적어도 업무 중 사망이라는 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 되어 몸의 이상이 오는 경우는 예외겠지만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생각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도 이 직종에서 자유롭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 책은 신다은 기자님의 사회학 도서이다. 사회 관련 도서들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분야를 뽑자면 아마도 복지와 노동이 아닐까 싶다. 복지는 아무래도 직업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에 당연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이며, 노동은 자의적으로 자주 찾아서 보는 편이다. 요즈음 들어 안타까운 사건들을 종종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책이었다.

책은 2021 년 평택항 사건으로 잘 알려진 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인 이재훈 씨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이선호 씨는 군 제대 이후 아버지의 직장인 평택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나뭇가지를 주우라는 지시를 처리하던 중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자 했던 이재훈 씨의 노력과 정부의 태도,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들을 언급하면서 산업 재해의 원인과 정부의 태도, 법원 판례, 유족 인터뷰 등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사건을 접하면서 원청, 하청, 재하청 등 전문적인 용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 인지만 했을 뿐 관심을 가지지 못했는데 무엇보다 기자님께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셔서 불합리한 기업의 구조에 대해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쓰는 직업인들이 사건을 이해하고 내용을 잘 풀어서 보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너무 공감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쉽게 읽을 수 있었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선호 씨의 평택항 사건뿐만 아니라 2018 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씨, 전국적으로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 SPC 사건 등 익숙하게 자주 보도로 접했던 재해를 보면서 달라지지 않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사망 사건들을 활자로 접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유족들이 재판장에서 읽는 호소문의 내용은 울게 했다. 그들이 내 가족이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정부와 원청의 임원진에 대한 생각이다. 원청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으로 돌리는 정도의 기이한 방식 자체만 생각했었던 터라 탁상에서 지시만 내리는 원청의 임원진들에 대한 내용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정부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현장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채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릴 때마다 탁상 행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었고, 그만큼 들었는데 산업 재해 현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보완보다는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두 번째는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 직원들의 태도이다. 고 김용균 씨의 사망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직원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 때문이라고 한다. 고 이선호 씨 역시도 아버지인 이재훈 씨께서 평택항에서 근무를 하셨기에 사람들 사이에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책에 등장하는 일부 직원들의 태도가 가장 크게 화가 났다. 2021 년 굴삭기 전복 사고로 사망한 고 노치목 씨의 경우에는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119 신고 당시 직원의 거짓말로 초동 대처가 잘못 되어 그 기회를 잃었다. 사건을 발판 삼아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축소시킨다거나 은폐시키기에 급급해 떠나간 젊은 생명들을 생각하니 더욱 괘씸하게만 보였다.

모두 나름의 꿈을 가지고 일터에서 지시에 따라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을 뿐인데 그 결말이 죽음이었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반성했다. 한 사람의 관심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걱정과 불안 없이 일터에서 온전히 근무할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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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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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스마트폰이 울렸다. / p.13

이 책은 고니시 마사테루의 장편소설이다.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 장르에서는 영미권 작품보다는 일본 작가님들의 작품이 취향에 맞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특히, 미스터리 상을 받았다고 하면 그냥 지나칠 작품도 다시 보게 될 정도로 신뢰감이 높은 편인데 그것도 올해 수상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감을 들게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가에데라는 인물이다. 그녀의 곁에는 할아버지 히몬야가 있다. 미스터리 클럽에서 활동한 교장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이십 대 중후반의 성인이 된다.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루이소체 치매가 발병했고, 가에데는 틈틈히 할아버지를 찾아가 보살핀다.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야기로 흘러가다 갑자기 가에데에게 스토커가 나타나면서부터 장르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음에도 추리를 통해 스토커의 존재와 손녀의 위험으로부터 구하고자 노력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에데와 히몬야,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생기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하나하나 퍼즐 맞추기를 하듯 하나하나 해결 고리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던 작품이었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에서 등장하는 콤비는 경찰 선후배, 검찰과 경찰 등 직업적으로 묶이거나 아주 친한 친구로 접했던 것 같은데 할아버지와 손녀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것도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취미와 특기로 갈고 닦은 추리로 해결하는 과정이어서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현실감이 있게 와닿았다. 거기에 하나의 사건이 아닌 여러 사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보니 짧은 호흡으로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할아버지와 손녀의 유대 관계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가에데와 히몬야에게는 가족 구성원이 둘밖에 없다는 점이 특수 케이스이기는 하겠지만 과거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십 대 중후반의 성인이 그렇게까지 할아버지와 가까운 관계였던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일상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를 이야기하고 해결하는 과정과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부러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신뢰성으로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피를 나눈 콤비이기 때문이다.


추리 장르의 작품을 드문드문 읽고 있지만 이 작품은 다른 장르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애틋한 감정을 그린 장르로 말이다. 손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추리하는 할아버지의 진심, 잘하는 명탐정으로서 평생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한다는 손녀의 진심이 활자를 읽는 내내 마음으로 와닿았다. 추리하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것보다 가족의 끈끈한 관계가 더욱 선명하게 남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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