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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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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다. / p.7
최근에 책장을 쭉 훑어서 보았는데 아니에르노의 작품을 꽤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로 조금씩 구매했던 것 같다. 정작 읽은 작품은 딱 두 권밖에 없었는데 호불호가 너무 명확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별 다섯 개를 줄 정도로 좋았던 반면, 세월이라는 이름의 작품은 내용조차 크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이런 작가들이 오히려 책을 고를 때 난감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은 아니에르노의 장편소설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작품마다 호불호가 너무 명확한 작가 중 하나이기에 처음에는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전에 읽었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시대상을 표현한 이야기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딸로서 현실적으로 와닿았지만 세월은 주인공의 삶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일이 없다는 측면에서 너무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그래도 이 작품은 전자에 가깝지 않을까.
소설은 1993년부터 1999년까지의 일기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을 파편적으로 기록했는데 이는 잘 아는 지인일 수도 있고, 그냥 스쳐서 지나가는 이용객일 수도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했으며, 화자는 이를 관찰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야기 자체가 크게 사건 중심으로 전개된다거나 흘러가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아니에르노의 문체나 분위기를 너무 잘 와닿았다. 우선, 소설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모른 상태로 본다면 한 사람의 날것의 일기 또는 에세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자전적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허구의 다른 인물이 보고 듣는 풍경을 적었다고 인식할 수 있었다. 아마 화자 역시 아니에르노 자신이지 않을까. 그전에 경험했던 작품들이 있었기에 이 부분 역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스타일에 적응만 된다면 어렵지 않게 완독이 가능할 듯했다.
읽으면서 두 가지 내용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첫 번째는 초반에 등장하는 일기로 대중교통 안에서 만난 뚱뚱한 30대 남자와의 일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먹을 것을 달라는 남자의 말에 웃으면서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인다고 대답했다. 체중 감량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지만 건강보험 대상자가 아니어서 이조차도 참여하지 못하고,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는 남자의 외침이 무엇인가 모르게 강렬하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책을 읽고 있는 세 명의 대학생과 같은 줄에 한 어머니와 아이가 탑승한다. 아이에게는 휴대 전화 모양의 장난감이 있었는데 누르면 소리가 나는 제품이었던 것 같다. 천진난만하게 소리를 들으면서 놀고 있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세 명의 대학생. 두 명은 철학 도서를 읽고 있었는데 화자를 이를 보면서 우월한 명분을 제공하는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간단한 비판을 남긴다.
두 내용이 강렬하게 와닿았던 점은 약자들에게 보내는 기득권들의 시각이 너무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30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신체가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렇지 않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건넨다는 게 조금 답답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다 보면 오히려 가난할수록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해 비만으로 갈 수 있다는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비만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낙인, 편견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또한, 대학생의 일화에서는 최근에 읽었던 책 한 권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들에게 고소를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청소노동자들의 생존권보다 자신들의 수업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들게 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대학생들 역시 편안하게 책을 읽을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권리를 무시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철학은 그들의 우월함을 견고하게 만들어 관용을 배울 수 없다는 내용의 화자의 문장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안에 그려진 사람들이 너무 분명하게 나뉜다는 측면에서 빈부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답답한 것은 사실이다. 마치 한 장의 사진 안에 귀족들이 중심에 있고, 구석에 약자들이 드러나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함이 남기는 했지만 가지고 있는 약자에 대한 시각이나 철학에 대한 생각 등을 다시금 깊이 고민하고 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꽤나 좋은 의미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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