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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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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든 저렇게든 내 마음속에 어떤 감정, 동요 혹은 반발을 촉발하던 그 모든 것을. / p.8
이 책은 아니에르노의 장편소설이다. 처음에 시간적인 줄거리를 아예 모른 상태에서 후에 쓰여진 '밖의 삶'을 먼저 읽었다.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비교적 객관적이고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어서 되게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 작품 이전에 쓰여졌다는 점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해 읽게 되었다.
85년부터 92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화자가 보이는 풍경들, 그리고 말하고 들었던 내용들, 거기에 조금씩 첨가된 화자의 생각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밖의 삶'은 대중교통에서 일어난 일들이 주로 기록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마트가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지하철이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임팩트가 느껴졌던 공간은 마트였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내용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첫 번째는 초반에 실린 내용으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하철 안에서 사선으로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손톱을 깎는 남자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 무례한 행동을 보고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남자는 자신의 청결해진 손톱을 보면서 꽤 만족한 듯하다. 그 남자의 앉아 있는 자세가 흔히 말하는 쩍 벌리는 다리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다. 공중 도덕이 개인의 만족감보다 더 중요할까. 그 남자의 태도와 여러 사람들의 눈치를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두 번째 역시도 초반에 실린 내용으로 한 어머니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하철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아이는 글자조차도 떼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읽을 차례라고 떼를 쓴다. 여기에서 내용은 어머니가 읽어 주는 책의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지금 몇 시예요?", 또는 "지금 ~할 시간이에요."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아이에게 너무 강박을 심어주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사실 사람은 생각하는 것만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너무 어렸을 때부터 시간의 부정적인 면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 내용에서는 반복적으로 아이에게 문장을 읽어 줄 때의 폐해를 말하고 있다.
역시 심심한 문체가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뭔가 소금을 치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게 아니에르노 문체의 매력이라는 점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고 재미없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면 너무나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과 보이는 인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매력이 배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전에 읽었던 작품처럼 답답함이 감정을 지배하기는 했지만 그와 다른 의미의 생각 또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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