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갈등 -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은 이제 건전한 갈등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 p.294

개인적으로는 갈등 상황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피하는 편이라고 해야 될 듯하다. 일부러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어도 몸과 정신이 허락한 이상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해 결국은 오히려 파국으로 치닫게 될 때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스스로를 옥죄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고 지금은 그래도 다른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타인과의 갈등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편이지만 스스로 마음속의 갈등은 아직도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렇다고 갈등을 피할 수도 없을 텐데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키우고자 독서를 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던 버릇을 고치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 책은 아만다 리플리의 사회학 서적이다. 개인적으로 갈등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다. 갈등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약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반응들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다.

저자는 고도 갈등이라는 용어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고도 갈등이란 악의 구도가 뚜렷이 형성되어 우리와 그들 간의 반목으로 치닫게 된 갈등이다. 이러한 고도 갈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계의 법칙들이 작용하지 않으며, 극한으로 치닫는 대결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갈등이라는 게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갈등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파국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극한의 대립을 말하는 듯했다.

미국의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약간 한국 정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했으나 상황을 넓혀서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역시도 정치부터 시작해 극한의 갈등을 겪고 있어 많은 공감이 되었다. 특히, 세대 갈등과 정치적인 대립 등 너무나 많은 갈등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혼 중재자로서 활동했던 변호사 게리와 시카고 갱단에서 활동했던 커티스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큰 공감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극한 갈등의 상황에서 오해와 대립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이를 해결하게 되었고 개인의 인생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우선 게리의 상황을 보면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아버지와 달리 우연히 주변 사람의 첫 이혼 중재를 맡은 이후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부부들의 중재자의 역할로서 많은 신뢰를 얻었던 인물이다. 살고 있는 마을의 발전을 위해 마을 정치에 나서고자 했다. 마을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부인과 딸은 이에 동의했지만 아들은 반대했다. 그러나 게리의 의견은 확고했던 듯하다. 결국은 위원장이라는 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초반에는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의 중재자로서 활동했던 것들을 펼치고 위원회 개최 당시 규칙들과 소회의 등을 만들면서 마을 정치는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게리 측근의 정치인들과 게리 스스로부터 갈등으로 치닫는 모습들을 보이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중재를 하는 본인 자체가 신진 세력과 수구 세력으로 나누어 편을 가르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시카고 갱단에서 활동했던 커티스는 한 유명 선수의 살인 사건을 본 이후 자신의 반대 세력이 저질렀다고 크게 오해를 하게 된다. 유명 선수가 반대 세력의 공간을 침범했다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살인자를 어떻게든 죽이고자 노력했으며, 갱단에서 마약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주로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은 반대 세력에 있는 갱단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 아들이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이러한 일에 손을 떼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갱단 일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 대회를 맡게 되고, 유명 선수를 살인한 범인을 만난다. 그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커티스는 자신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악의 구덩텅이에서 빠진 이들을 구하기 위해 범인과 힘을 모아 노력하는 개과천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물들이 극한 갈등에 빠져서 나오는 과정들을 상세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갈등에 빠지게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보다는 무조건적으로 극한의 이야기만 자기 방식대로 해석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막상 까보면 그렇게까지 대립을 할 이유가 없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간을 벌고, 공간을 확보하고, 단순화하는 과정들을 하나씩 택하면서 화합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갈등을 치하는 방법을 알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깊은 역사와 사회학적인 내용이 담겨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가면서 갈등이라는 것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500 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의 책이면서 미국 사회 위주의 이야기들에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재독을 하면서 더욱 더 방법을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극한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요약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빛놀이 웅진 우리그림책 90
나명남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도 같이 가자.

며칠 뒤면 조카들과 함께 추석을 보낼 생각에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무래도 조카들을 보면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모습에 현실을 잊게 되지만 막상 에너지 넘치는 친구들을 상대하려면 체력적으로 많은 부담이 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조카들이 보고 싶으면서도 두렵다.

올해 추석은 그나마 정적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림책 읽기를 나름 목표로 정해서 하나하나 읽고 있다. <해파리 버스>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이다. 그림자 놀이는 알지만 햇빛 놀이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아마 의미는 비슷하지 않을까. 조카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했다.

주인공인 한 여자 아이가 등장한다. 엄마께서 잠깐 나간다고 아이를 안는 모습으로부터 시작해 쇼파에서 혼자 뒹굴뒹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나비 문양을 보고 무언가를 하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같이하자고 한다. 그렇게 여자 아이와 고양이는 햇빛을 가지고 재미있는 놀이를 즐긴다.

여자 아이의 모습이 참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 역시도 재미있게 즐기는 듯했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내 기분마저도 밝아졌다. 읽는 내내 기분 좋게 읽었다. 뭔가 창문에 햇빛이 비친다면 조카들과 그림책의 모습처럼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적인 놀이를 하기 위해 그림책을 읽는 것인데 동적인 놀이로 가면 물론 금방 지칠 것 같다는 게 약간 걱정이기는 하다.

그림책만 보면 한 아이와 고양이의 놀이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많은 생각을 주었다. 특히,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설에서 보던 작가의 말을 그림책에서 보니 새롭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내용이 더욱 집중하면서 읽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생각보다 주위에 있는 사소한 것들을 잊고 살아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하늘을 올려다 보거나 꽃을 숙여서 본 적이 희미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 했던 독서 모임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 성인들을 위한 해석도 준다는 점에서 작가의 배려도 느껴졌다.

아이들에게는 동심을 지킬 수 있는, 성인들에게는 일상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울림까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림책으로 말랑말랑한 감성을 건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파리 버스 웅진 우리그림책 93
이수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느림보는 슬펐어.

가끔은 어린이 문학에서 주는 울림이 있다.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춘 이야기들이지만 그게 신기하게 성인들의 감성을 터드릴 때가 있다. 십 년 전 손원평 작가님의 <아몬드>를 보고, 올해는 김선영 작가님의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동화책이나 그램책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요즈음 들어서 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처음 선택한 책이다. 또한, 추석을 맞아 곧 만나게 될 조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찾던 중 고르게 되었다.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해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해파리 버스는 유독 다른 버스에 비해 늦은 속도를 자랑한다. 덕분에 출근하거나 급한 일이 있는 해양 생물 고객님들로부터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일부 고객님들은 멀미가 생기지 않아서 좋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지만 말이다. 결국 해파리 버스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자유 신분이 된 해파리는 바다의 이곳저곳을 누비다 심해로 깊이 들어간다. 거기에서 초롱아귀라는 물고기를 만난다. 빛을 밝히는 초롱아귀에게 하나의 부탁을 받게 되고, 심해를 여행하면서 해파리는 그의 소원과 더불어 새로운 행복을 느낀다.

아무래도 아동 수준의 그림책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읽으면서도 그림에 집중하게 됐다. 일부는 사진으로 찍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 추석에 만날 조카들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새로우면서도 예전에 읽었던 동화책들도 조금씩 떠올랐다. 물론, 내용까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퇴사가 곧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 금전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막막하게 다시 직장을 구해야 되는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퇴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이 힘들어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거나 인격적인 모독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과거의 그런 경험들과 주변에서 들은 말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의지와 다르게 직장을 나오게 되었지만 또 다른 행복을 찾았던 해파리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다. 

해파리의 이야기가, 바닷속의 상황이 곧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았다. 생각만큼 일이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아마 공감과 위로를 받지 않을까. 마치 해파리를 또 다른 모습이었다고 느꼈던 나의 경우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와닿았던 그림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왜 요리하는가. / p.254

채널을 돌리다 나오는 생활의 달인 또는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그램을 나도 모르게 보고 있을 때가 있다.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 무엇이든 일을 하려면 저렇게 미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누가 보면 기술이 없는 일이거나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방송을 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 하나를 묻는다면 하나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랑할 수 있는 일 하나 만들기도 힘든데 방송에 나와 자랑하고 다른 이들의 감탄을 내보일 정도면 그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을까. 무엇을 하든 폄하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이 책은 김자령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어느 정도 스토리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가볍게 읽고 싶어서 선택하게 된 책이다. 특히, 맛집 주방장인 주인공이 훅훅 바뀌는 현대 사회를 어떻게 적응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가는지 그것도 궁금했다.

주인공인 두위광은 중국집 '건담'의 주인장이자 40년 경력의 요리사이다. 화교 출신으로 바닥부터 시작해 유명한 식당에서 거친 능력자이기도 하다. 비록, 현재는 비가 오면 빗물이 새는 낡은 중국집이지만 말이다. 요즈음 감성에 맞게 사진을 찍는 고객들을 향해서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고, 식재료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두위광의 직업 정신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건담 주위에는 라이벌이자 가짜 화교 행세를 하는 곡씨 반점의 곡비소가 있다. 두위광이 가지고 온 식재료와 개발한 음식을 마치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밟아서 뭉갤 법도 한데 두위광은 그저 속으로 화만 낼 뿐 그를 방해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건담의 직원들이 있다. 특유의 넉살과 맥가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 직원 도본경과 말수 없이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강나희, 관악대 출신의 엘리트이지만 뭔가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고창모, 만년 실장 주원신까지. 건담의 위기와 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들까지 너무 실감나게 펼쳐져 있다.

처음에는 건담의 위기로 시작해 상승세로 끝나는 이야기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굴곡이 있는 그래프를 활자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건담의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수시로 왔다갔다 했다. 두위광이 건담을 접고자 했던 것도 생각보다 자주 등장해서 나중에는 건담의 큰 번영을 바라기도 했었다. 두위광의 개인적인 위기부터 시작해 건담을 향한 사람들의 오해와 사건으로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내 감정도 그랬다.

두 가지 이유로 놀랐는데 첫 번째는 두위광의 철학이었다. 두위광은 사람에 따라 아집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집이 센 인물이다. 나 역시도 초반에는 불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뜻할 때 먹지 않는 사람은 먹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하거나 이를 강요하다가 오해가 벌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싶었다. 직원들에게 강요할 때는 흔히 말하는 꼰대의 향기까지 솔솔 풍겼다. 계기를 통해 과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집이 아닌 이유 있는 고집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장인 정신으로 놀라게 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주변 인물들의 집중력이었다. 도본경은 가정의 환경으로 음식과 가까이 하기는 했지만 양식, 일식을 거쳐 현재는 두위광에게 중식을 배우는 인물이다. 강나희는 알 수 없는 인물이었는데 두 사람을 보면서 한 분야에 깊이 파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희의 이야기가 그렇게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중식의 기술을 알려 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주원신을 깨닫게 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도본경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차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강나희는 그저 좋아하는 것을 몰라 방황했던 것일 뿐이었다. 개개인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살린 이야기가 눈을 즐겁게 했다.

인물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저자의 맛깔 나는 음식 묘사로 입이 즐거웠다. 비록, 직접 중국 음식을 먹지는 않았지만 마치 그 음식을 먹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는 내용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뿐만 아니라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한 질감과 특징도 너무 자세하게 기재가 되어 있어서 요리를 하게 된다면 뭔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백종원 님의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이연복 셰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김새와 나이가 두위광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중식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 역시도 이연복 셰프님의 식당이 위치한 동네로 알고 있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읽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예전에는 뚝심 있는 한 가지 메뉴에 대한 장인 정신이 있었다면 요즈음은 사진의 중요성이 인식되는 만큼 최신 감성을 장착한 음식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인데 건담이라는 중국집이 있다면 믿고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뚝심 있는 두위광과 열정 넘치는 직원들의 이야기로 읽고 먹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에너지도 이미 내게는 없다. / p.57

이 소설은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장편 소설이다. 읽을수록 미궁에 빠져든다는 문구가 강렬하게 와닿았다. 사실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추리 소설에서는 미궁으로 빠지면 빠질수록 뭔가 강렬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거기에 추리꾼의 역작이라고 하니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신견은 사법고시를 앞두고 가토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중 동창이었던 사나에를 만났고 하룻밤을 보낸다. 이후 탐정으로부터 신견이 사나에의 집에서 입고 온 옷이 실종자의 옷이며, 실종자가 사나에와 연관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과 함께 매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종이학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견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종이학 밀실 살인 사건에 집착해 조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

종이학 살인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이 더욱 강렬하게 남았다. 신견과 사나에에 대한 감정선에 몰두해서 읽게 되었다. 특히, 부인에게 집착하는 아버지와 성적인 집착으로 그에 대한 환상을 여동생에게 푸는 오빠, 밀실에 갇힌 것처럼 정신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살아가는 사나에의 감정은 그야말로 미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소설에서는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정신은 그대로 묘사가 되어 있다.

거기에 광적으로 종이학 밀실 살인을 조사하고, 사나에에 대해 광적으로 원하는 신견의 모습도 그랬다. 원래 신견은 성적인 면에 집착하고, 불안정한 인물이었다. 그랬던 신견이 더욱 미쳐 가는 모습은 또 새로운 충격이었다. 그렇게 집착하는 자신을 보면서 이유를 찾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미궁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범죄 사건에 대한 미궁보다는 감정에 대한 미궁처럼 느껴졌다. 불안정한 인간의 심리가 무엇보다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고통의 소용돌이에서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한 사나에와 어떻게 보면 뾰족한 부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숨기고 살아가는 신견은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파괴하거나 죽일 수 있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정신적인 문제와 행동들이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하거나 기괴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읽는 내내 정신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거기에 살인 사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긴장감까지 더해지니 손에 놓을 수 없었다. 2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이어서 후루룩 읽기에도 좋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성적인 묘사들이 직접적이면서도 적나라하게 등장해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소설의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그만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우울하고도 불안정한 분위기 자체가 거북하거나 나쁘지 않았다. 가끔 자극적이면서 강렬한 소설이 떠오른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라탕처럼 얼얼하고도 즐거움을 선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