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 p.429

작은 대한민국의 나라에서 참 인재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만 보더라도 항상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10 위 전후의 성적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해 윤여정 배우님의 오스카상 수상, 여러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 등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애국심이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 책은 김주혜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표지를 보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의 새로운 주역이라는 소개글이었다. 파친코를 읽지는 못했지만 관심이 생겼다. 박서련 작가님의 체공녀 강주룡 등의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의 1918년부터 시작해 1964년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주된 인물은 옥희와 정호, 한철이다. 옥희는 어머니와 함께 기생집의 하인으로서 갔다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기생이 된 인물이다. 마을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을 염려해 어머니는 옥희를 기생집에 버리다시피 했고, 그렇게 옥희는 기생집의 주인이었던 은실의 보살핌으로 성장한다.

정호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아버지 남경수의 아들이다. 어려운 시대에 고아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던 중 거지들에게 속아 싸움이 벌어진다. 거지들의 무리와 싸워 이기게 되었고 얼떨결에 왕초의 자리에 오른다. 아이들을 다니면서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거나 가게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인생의 스승인 이명보라는 인물을 만난다. 명보에게 학습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독립 투사의 길을 걷는다. 

한철은 정호와 옥희에 비해 조금 나중에 나오는 인물이다.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인력거를 모는데 옥희와 연희가 한철의 단골이 되면서 등장한다. 그렇게 옥희와 사랑에 빠져 연애하는데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열심히 일하는 한철에게 옥희는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고 결국 자전거 수리공으로 취업한다. 이후에도 성수라는 인물의 도움으로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옥희가 모시는 단이라는 인물과 거지 무리의 미꾸라지, 영구 등 다양한 대한민국 사람들과 이토와 야마다 등의 악랄한 일본군도 등장한다. 이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길, 다른 성향, 다른 이유로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세 사람의 이야기 구도 중심에 또 새로운 주인공으로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래도 중심이 되는 인물이 옥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옥희의 서사를 중심으로 읽게 되었다. 옥희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었다. 기생이라는 직업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지만 옥희가 살아왔던 삶은 너무나 지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한철을 향한 가슴 절절한 사랑이나 정호와의 우정, 그 우정과 다른 연화와의 우정, 단이를 향한 효심 등 옥희의 희노애락 자체가 너무나 감정적으로는 와닿았지만 이성적으로는 뭔가 배경 자체가 새로웠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 정호라는 인물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옥희라는 인물도 중요한 서사를 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에 실린 이야기부터 정호와 일본인 순사의 인연으로 시작되기에 이 책의 주인공을 정호로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인 남경수가 일본인 순사를 호랑이로부터 구하는 이야기인데 이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 정호의 목숨을 구하는 어느 하나의 일이 되어 돌아온다. 이러한 인생의 큰 사건으로 주인공을 잡았다면 마음이 갔던 이유는 정호의 삶에 크게 공감했었기 때문이다.

정호는 거지들의 왕초 자리부터 시작해 독립 운동에 이르기까지 크게 일을 해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사명감을 가진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어진 임무에 실패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명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동안 책이나 공부를 통해 익숙하게 보았던 인물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보다는 명보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고자 임무를 처리했으며, 사랑하는 옥희를 지키는 마음으로 일을 하나하나 완수했다. 누군가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순수하게 독립을 외쳤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강주룡이라는 인물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와 반대로 한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성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쁘지 않았고, 결과도 한철이 원하는 수순으로 이루어졌지만 그의 삶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착실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기는 하나 옥희와의 애틋한 사랑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한 기회주의차처럼 보였다. 차라리 작고 사소한 의도로 시작했던 정호가 마지막에도 신념을 지켰던 게 오히려 더 크게 와닿았다.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입체적이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있는 인물이어서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일본군 순사이면서도 의리와 이성을 지켰던 야마다라는 인물도 꽤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온갖 악덕한 일들을 저지르는 이토라는 인물과 대비가 되었다. 또한, 의도하지 않는 사건으로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삶을 살아왔을 법한 월향도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기에 이러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삶의 아이러니도 느꼈다. 나라를 위해 애썼던 명보라는 인물이 정치적인 견해로 생각과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 누가 봐도 이기주의자였던 성수라는 인물이 친구인 명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도왔던 하나의 일로 무죄가 되는 게 화가 났다. 의도와 결과가 어찌 되었든 해석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세상이 참 얄궂다 라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옥희와 한철, 정호의 마음 아픈 사랑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일제강점기 사람들의 하나의 희노애락이 담긴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보다는 후자로 읽혀졌다. 조선의 아픈 역사에 담긴 작은 땅의 야수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는 점에서 쉽게 읽은 것과 별개로 마음의 여운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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