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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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 p.127

지금까지 살면서 미스터리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과거에 겪은 일을 깊이 생각하는 탓이 아니어서 그냥 넘기다 보니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장 미스터리한 무언가를 뽑는다고 하면 내 존재 자체이지 않을까.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때가 있는데 살아가면서 겪는 일 자체가 신기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당연하면서도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 추리 소설이다. 올해 초에 나왔던 3부작 시리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추리 소설로는 유명하신 작가님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는데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올해 안에는 읽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러다 초기작이었던 소설이 한국에서 발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예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작가님의 소설이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와카타케 나나미는 건설 컨설턴트 회사 편집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내 신문을 매월 발간하게 되면서 소설을 한 꼭지 실어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작가인 한 선배에게 이를 부탁한다. 선배는 힘들 것 같다고 거절하면서도 잘 아는 지인이 하나 있으니 연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연결된 작가에게는 조건이 있었다. 익명으로 게시한다는 것. 고료는 와카타케 나나미가 보관할 것이며, 소설 또한 선배를 통해 전달이 된다는 것. 조금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를 수락했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해 매달 익명 작가의 소설 한 편씩 사내 신문에 들어가게 되고, 책에서는 총 열두 편의 소설이 나온다.

4월에 기재된 한 주인공의 벚꽃을 싫어하는 이유부터 3월에 기재된 제비꽃점으로 인한 이별 등 각 주인공들에게 소소하고도 평범한 일상이지만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10월의 래빗 댄스 인 오텀, 12월의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래빗 댄스 인 오텀>은 한 아이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속 화자는 건강상의 이유로 긴 휴식을 가지게 되었고 마루야마 선배의 추천으로 한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같은 회사 편집장의 책상을 청소하다 낡은 달력 하나를 버린다. 치운 이후 미루야마 선배가 찾아와 달력의 소재를 물었다. 버렸다고 대답하자 거래처의 홍보부장과의 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화자의 추리 능력이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었다. 한두 가지의 단서를 가지고 바로 유추한 화자와 달력으로 편법을 쓰려고 했던 마루야마 선배의 행동 자체에 큰 대비가 느껴졌다. 아마 나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아라이라는 한 소녀와 다케시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아라이가 어린 시절에 살고 있던 동네에는 주위에 이웃집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하나둘 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다케시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다케시는 생물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금은 특이한 행동을 많이 했었는데 요리에도 소절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라이의 언니를 통해 다케시는 만든 케이크를 아라이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아라이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고 이는 임산부였던 언니가 먹었다. 먹고 난 이후 언니는 몸이 아팠으며, 이상하게 다음부터 다케시와의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가장 잘 이해되었던 소설이면서 첫사랑 생각이 들게 했다. 무엇보다 다케시의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죄책감까지 섞인 오묘한 마음이 와닿았다.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첫 번째는 익명 작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열두 편의 주인공 중 어느 화자가 익명 작가인지 찾으면서 읽었다. 생각보다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작가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추측도 했었다. 일을 쉬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누나에 대한 언급 등이 그랬다. 읽는 내내 작은 소설들의 이야기를 추리하는 것도 좋았지만 어느 부분이 익명 작가의 이야기를 녹였을지 추리하는 게 큰 재미이기도 했다. 마지막을 보니 생각했던 모든 추리가 허탕이라는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두 번째는 일본 문화가 짙은 소설이라는 생각이었다. 내용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일본 문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이해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래빗 댄스 인 오텀>이라는 소설에서는 딸의 이름을 찾기 위한 힌트를 주는데 일본 지역에 대한 내용이, <봄의 제비점>에서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제비점이라는 주제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에 일본어의 동음이의어 등이 등장하다 보니 찾으면서 읽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이는 옮긴 이의 말에서도 나왔기에 가장 크게 공감되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익명 작가의 이야기에서 크게 뒷통수를 맞았다. 거기에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 능력에서 감탄했다. 나름 열두 편의 소설을 이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각각 개별의 이야기이다 보니 이를 연결해 추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퍼즐을 맞추고 나니 익명 작가의 존재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완벽하게 들어 맞았다. 물론, 와카타케 나나미 역시도 엉성한 구석이 있었지만 말이다. 

일본의 문화에 대한 장벽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추리도 만국 공통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제목 그대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새롭게 보였다. 코지 미스터리 여왕이라는 이름값을 느낄 수 있었던, 초기작의 매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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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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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인류세의 논리다. / p.56

요즈음 나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볼 때가 많다. 최근에 하늘을 보게 된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뭔가 별이나 달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에는 나갈 일이 많지 않다 보니 아침에 밖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어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고, 오늘은 구름이 약간 있는 하늘이었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환경에 대한 도서이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던 책이다. 거기에 인류는 더 이상 푸른 하늘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오늘까지 보았던 이 푸른 하늘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환경의 위기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너무 크게 와닿았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저자가 환경에 대한 위기를 느꼈고 이를 위해 취재를 다녔던 미국 미시시피강부터 세계의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이야기는 미시시피강의 아시안 잉어라고 불리는 물고기이다. 강의 흐름을 바꾼 시카고 운하를 건설한 이후 백련어로 불리는 아시안 잉어의 문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많아진 아시안 잉어를 전기 충격으로 기절을 시켜 활용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체 수가 줄어들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미시시피강의 제방이 터진 크레바스라는 현상으로 큰 홍수가 생겼던 적도 있었다. 다른 나라인 호주에서는 수수두꺼비라는 독성을 가진 새로운 종이 생태계를 위협했다.

그러면서 수수두꺼비의 독성을 유전자로 줄이거나 없애서 조금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거나 척박한 환경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산호초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수수두꺼비에게 독성을 빼게 된다면 많은 생물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나오는 내용 자체가 아무래도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나라들이기 때문에 개념부터 모든 것이 생소했다. 그래서 쉽게 읽힐 수 없었다. 미시시피 강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시카고 운하의 자세한 배경이라든지 그린란드의 야콥스하운 빙류라든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아서 초반에는 읽는 내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사진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이후에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읽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도 생태교란종이라고 불리는 동식물이 환경적인 이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특히, 배스라는 물고기가 토종을 위협하면서 이를 식품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던 것 같다. 아시안 잉어의 경우에는 수요 자체가 없다 보니 비료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와닿을 수 있도록 바꾸어서 생각하다 보니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환경에 대한 도서나 이야기들은 전부 가정에서 전기를 줄인다거나 대중교통을 적게 이용하는 등의 개인적인 측면이었다. 또한, 빙하의 해수면이 오르거나 지구의 온도가 오르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선했다. 아무리 이러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환경은 변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아예 안 쓰면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한다고 해도 환경 파괴가 늦어지는 정도일 뿐 아예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시각과 내용에 큰 공감이 되었다. 거기에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내용들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어려웠던 책이었지만 저자가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고 완벽했다. 덕분에 환경에 대해 더욱 더 깊이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도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환경을 조금 더 다른 차원으로 고민하고자 노력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도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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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멋진 집 - 제29회 눈높이아동문학상 그림책 우수상 수상작, 2023 볼로냐 국제 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
박준엽 지음, 신아미 그림 / 오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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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멋진 집을 짓는 건축가예요.

매체에 노후를 위해 살 집을 짓는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자신의 집이라는 생각에 신경을 쓰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디테일함을 가지고 짓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그것을 다 생각하고 지으신 걸까. 나이가 들어 돈이 모인다고 하면 나 역시도 그렇게 한번 지어서 살고 싶다.

이 책은 표지가 화려해서 눈에 띈 그림책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조카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뭔가 유럽 건축물에서 볼 법한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성당의 알록달록 화려한 벽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안에 있는 그림은 아이들에게 맞게 되게 세세하면서도 귀엽게 보여서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이안은 집을 짓는 건축가이다. 과학자인 마틴, 예술가인 라파엘, 정원사인 발렌티노의 부탁을 받아 각각 친구들이 원하는 집을 하나씩 지어 주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짓는 것도 있다.

마틴은 실험을 할 수 있는 집을, 라파엘은 예술 작품이 가득한 집을, 발렌티노는 식물원 같은 집을 원한다. 사실 어른의 입장으로서는 원한다고 해서 이렇게 열심히 연구해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 친구가 있다고 하면 절을 하고도 남을 것 같다. 약간 때가 묻어 속세에 물든 어른의 입장은 그렇다.

여기에서 갈등은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인데 각자 니즈가 워낙에 강하다 보니 하나씩 배제가 되어 집이 지어진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집을 지었더니 자연 친화적인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집을 지어졌고 친구들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이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더불어 살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모두의 니즈를 충족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예술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부분을 같이 보고 배우면서 지낸다는 것. 아마 그게 교훈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도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을 위한 즐거움이 그림책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집의 그림을 보고 우측에 있는 물건을 찾는 그림 찾기가 있었는데 마치 어렸을 적에 했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 재미있게 했었다. 어른들에게도 나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장치인데 아이들에게는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는 나중에 조카들을 만나게 된다면 꼭 같이해 보고 싶다.

눈과 손이 즐거웠던 그림책이었다. 이렇게 또 그림책의 묘미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듯해서 기회가 된다면 하나씩 그림책도 재미를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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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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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나라는 꼭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리지. / p.61

회를 참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생각하고 먹는 편은 아니다. 생선의 종류를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어나 참치처럼 색깔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는 쉽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회를 많이 먹었던 사람이면서도 광어와 우럭의 차이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색깔이나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아직 구분할 정도의 큰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 회는 그저 초장의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안윤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제 트리플 시리즈는 믿고 보는 편이다. 최근에 나오는 작품 순서대로 읽고 있기는 하지만 여유가 될 때마다 하나씩 구매해서 모으고 있다. 그러다 최신 작품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처음 듣는 방어라는 생선이 제목에 들어가 있어서 더욱 궁금증이 들었다.

총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달밤>은 화자가 언니라고 불리는 인물에게 소애와의 일화를 풀어내는 형식의 구어체 소설이다. 화자는 소애를 소개하고 일상을 말하면서도 언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주된 내용은 소애가 육개장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생일상에 육개장을 끓여서 올렸고, 같이 축하한 이후 이를 언니의 제삿상에 올린다는 이야기이다.

표제작이자 두 번째 작품인 <방어가 제철>은 화자, 오빠인 재영, 오빠의 친구인 정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 사람은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왔는데 화자는 오빠 친구인 정오를 잘 따르고 있었고, 정오도 화자를 잘 챙겨 주었다. 그러다 재영이 세상을 떠난 후 정오와의 관계는 끊어졌다. 그러다 화자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고 네 달이 지나 정오가 재영에게 연락을 해왔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정오는 화자를 데리고 횟집에 데려가 방어회를 먹는다. 이후 둘은 계절에 한 번씩은 만났으며, 겨울에는 늘 방어를 먹으러 갔다. 그러다 그렇게 지낸 지 삼 년 정도 지나 둘은 다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기게 되었다.

세 번째 작품인 <만화경>은 화자인 나경, 나경의 집주인 숙분, 숙분의 친한 지인 단심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경은 이혼 이후 새로 이사온 집에서 숙분을 만난다. 숙분은 나경을 창문에서 바라보는 등 감시하는 듯한 모습들을 보이고, 나경은 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것만 제외하면 다른 부분들은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단심이 그곳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단심은 건물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나경과도 가까워진다. 어느 날, 숙분이 연락이 되지 않자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중 단심으로부터 나경이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전 세입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세 작품 모두 좌절이나 사람의 부재를 관통하고 있다. 달밤에서는 언니의 죽음, 방어가 제철에서는 오빠의 죽음, 만화경은 나경의 이혼이 그렇다. 이를 어떻게 애도하거나 극복하는지 초점에 맞추고 있지만 읽는 내내 회복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사람으로 인한 회복을 말이다. 소애라는 인물로부터, 정오의 연락으로부터, 숙분의 행동으로부터 주인공들은 사라진 사람을 애도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인간애를 느낀다. 물론, 인간애가 가장 깊게 느껴졌던 작품은 만화경이었고, 나머지 두 작품은 희미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사라진 누군가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부재를 슬퍼하는 방법도, 이를 이겨내는 방법도 각기 다르지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애도하면서 추억했다. 분명 슬프면서도 상실감이 느껴질 일이지만 다른 무언가를 통해 추억한다. 그게 담담하게 그려졌다. 익숙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결코 우울한 일이 아님을, 누군가를 잊혀간다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님을 소설을 통해 보여 주는 듯했다. 소설 하나하나가 참 사실적으로 와닿았다. 일상속에서 애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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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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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를 덧붙여 놓고 보면 처음 읽을 때와는 사뭇 그 느낌이 달라진다. / p.50

매체에 등장하는 달변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사람이라는 게 자신이 부족하거나 없는 재능을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보니 같은 맥락으로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입담에 집중하게 될 때마다 감탄하면서도 동경의 눈빛으로 보게 된다. 성향 자체가 말수뿐만 아니라 말주변도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이 책은 곽재식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이다. 요즈음 다작이라는 타이틀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데 개인적으로 인문학과 과학 분야에서는 곽재식 작가님의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앤솔로지 단편 소설집으로 작가님의 소설에 입문해서 지난달에는 서양사 관련 인문학 도서를 읽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지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이번에 한국 고전의 과학과 융합된 인문학 도서의 신간을 알게 되어 고민할 것도 없이 읽게 되었다.

익숙한 작품들부터 다소 생소한 작품들까지 한국 고전의 열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삼국사기와 해객론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 이야기 모두 나라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선, 삼국사기의 이야기는 여우가 등장하고, 우물이 핏빛으로 물들며, 물고기 사체가 떠오르는 등 흉흉한 소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나라가 망한다는 징조라는 뜻인데 삼국시대 중 가장 먼저 멸망한 백제의 이야기이다. 거북이 주술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바른 말을 했음에도 왕의 심기를 건들여 처형당하는 무술인의 일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핏빛 바다라는 표현을 토대로 적조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가장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래도 나름 뉴스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을 법하다. 거기다 적조 현상으로 물고기가 떼죽음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삼국사기에서 묘사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을 때에는 하늘의 뜻으로 멸망 징조라고 느꼈을 텐데 과학적 시각을 더하니 자연재해로서 해석이 되는 게 재미있었다.

해객론은 인간의 한계를 넘고 영생을 찾고자 했던 바다의 손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 화자인 이광현이라는 인물은 배에 같이 탄 노인으로부터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비법을 묻는다. 노인은 첫 번째로 깨달음을, 두 번째로는 금단대약이라는 불로장생의 약을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금단대약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당시 이광현은 금단대약이라는 약의 존재를 찾아 나선다. 금단대약 제조법도 명쾌하게 나와 있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내용에서 등장하는 연홍이라는 것은 수은과 납을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갑자기 발해가 멸망했던 이유를 금단대약에서 찾는다. 수은과 납은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따라 발해인들이 수은과 납에 중독이 되었다는 상상인데 어느 정도 새롭게 느껴졌던 가설이었다. 어디까지나 해객론의 이야기로 꼬리를 물어 하게 된 하나의 추측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의 묘약을 준비했었던 첫 번째 왕비, 흔히 사용하고 있는 '직성이 풀린다'라는 문장에서의 직성의 기원, 무술인을 천문학자로 주장했던 박지원의 이야기 등 그동안 역사적 시각이나 문학적인 의미로만 봐왔던 고전이 다른 측면에서 보일 수 있다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거기에 고등학교 수준에 맞게 풀어 있는 내용이다 보니 그렇게 술술 읽혔다. 거기에 분량도 두껍지 않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잡자마자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저자의 책에 늘 나오는 역사, 사회, 과학은 모두 각각의 영역이 아닌 다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곽재식 작가님을 매체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별명답게 다른 시각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소설, 인문학 도서를 읽고 나니 말과 글 모두 감탄을 자아내는 분이었다. 앞으로 곽재식 작가님의 책이라면 믿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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