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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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하는 부적이 된다. / p.84

어렸을 때에는 은행 광고를 많이 보았다면 중학교 이후로부터는 생각보다 저축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저절로 CM송을 따라서 부를 만큼 노래도 참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이러한 친근함을 주는 광고가 개인의 부채를 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들이 나왔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차무진 작가님의 단편집이다. 부제의 라이프 앤 데스 단편집과 다른 제목이어서 눈길이 끌었다.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거기에 대부 업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라니 말이다. 단편집 제목 중 하나가 이 제목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내용이 참 궁금해졌다. 

단편집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구전으로 듣는 듯한 먼 시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 들어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죽음을 표현하는데 묘하게 느껴지는 소설이 있고, 너무나 생생하게 공감이 되는 소설도 있었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부 소설은 읽으면서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일부 소설에서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참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마포대교의 노파와 아폴론 저축은행이라는 작품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마포대교의 노파는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두 경찰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살을 동요하게 만드는 노파를 감시해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박 경사와 김 순경이 등장하는데 박 경사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인물이다. 경찰 내에서도 왕따인 인물이었는데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의 파트너로 김 순경이 자원한다. 박 경사는 사실 귀신이 보이는 인물이었고,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반드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이후 박 경사의 능력으로 확인을 해 보니 사실이었고 김 순경은 이를 막을만한 묘책을 세워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김 순경의 아이디어로 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부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김 순경의 모습을 보면서 직업적인 열정이 느껴졌지만 가장 크게 와닿은 포인트는 박 경사의 비밀과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감정이었다. 노파의 모성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코미디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전개가 되었는데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 뭔가 이름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들 또는 딸이라는 생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지키지 않았을까 싶다.

표제작인 아폴론 저축은행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첫째 아들은 아픈 상황이며,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빚을 지고 있다 보니 택시 기사로 겨우 먹고 살고 있는 듯하다. 빚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결국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이를 포기한다. 그렇게 절망에 살고 있던 어느 날 남자의 택시에 한 노인이 손님으로 탄다. 그 노인은 이상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아폴론 저축은행으로 남자를 인도했다. 거기에서는 빚을 빌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은행에서 상담을 받고 보니 남자에게 9 억 5 천만 원을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나중에 남자에게 10 억의 돈이 들어올 예정이며, 미리 돈을 준다는 것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설 내용이었다. 미래에서 받을 돈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소재 자체가 참 독특했다. 사람의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에 돈이 어디에서 나올 줄 알고 이를 예상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일까. 거기다 남자의 경우에는 도저히 돈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처음부터 뭔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결말을 보고 참 많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남았다. 과연 나에게 미래의 돈 10 억을 미리 끌어서 빌려 준다고 하면 수락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난 이후 나의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동안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었던 소나기가 떠올랐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이의 이야기, 라면과 떡볶이에 빠진 과거 옛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전혀 죽음이 떠오르지 않는 주제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부제 그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집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느꼈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무거우면서도 가라앉는 느낌을 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삶과 죽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죽음이라고 하면 조금은 멀게 느껴졌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일까.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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