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마니아
김쿠만 지음 / 냉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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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맛 좋은 인생이겠군요. / p.252

학교 다닐 때에는 다른 친구들보다 유행을 조금 늦게 타는 편이어서 누가 봐도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당시에 유행했던 MP3 플레이어보다는 CD로 돌아가는 CD 플레이어를 더 선호했으며, 김광석 님이나 유재하 님의 노래를 참 좋아했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영스트리트라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조금은 과거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딱 중간에 선 사람인 듯하다. 동영상이나 사진 편집에 관심이 있다거나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습득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봐서는 그래도 디지털 세대로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튜브 매체보다는 독서를 즐기고, TV 프로그램보다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선호하다 보니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는 젊은 사람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낭만적이라고 칭찬해 주시지만 솔직히 가끔 스스로 정의를 내리는 것에 대해 혼란스럽다.

이 책은 김쿠만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요즈음 뉴트로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과거 유행을 현대 방식으로 맞게 재구성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는 사람으로서 추억을 자극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과연 소설 안의 인물들은 어떻게 레트로를 즐기고 있을까. 

표제작인 <레트로 마니아>를 포함해 여덟 편의 소설과 해설이 실려 있다. 솔직히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요즈음 신조어인 '돌+I'로 표현될 정도로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법을 어긴다거나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닌데 주변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흔들게 될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이나 문체, 호불호를 떠나 인물 자체로만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지점이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웠는데 개인적으로 <레트로 마니아>와 <제임슨의 두 번째 주인>이라는 단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레트로 마니아>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게임기가 있는 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주인은 한국 사람이지만 시게루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레트로 게임기를 수집하기도 하고, 가게에서 죽치고 앉아서 게임을 하는 등 그야말로 레트로 게임 광이었다. 그곳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조금은 이상하다. 꽤나 가방끈이 긴 손님은 주인과 싸우는 게임을 하다가 얻어 맞았고, 청소년 손님은 게임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맞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제임슨의 두 번째 주인>은 제임슨이라는 술집 주인과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이다. 제임슨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이지만 자신은 아일랜드계 한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화자는 안 교수라는 사람과의 회식에서 남은 최종 2인 중 한 사람으로 제임슨을 알게 되고, 거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일을 하게 된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술집을 이어받아 운영한 화자는 전 주인이 된 제임슨으로부터 손님들의 정보를 받는데 <레트로 마니아>의 손님들처럼 이상하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정치색이나 성 정체성까지 기재가 되어 있으며, 방문하는 손님들 중에서는 JAMESON을 자매손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두 편의 소설 모두 소설의 방향을 흔들만한 큰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인 답지 않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 돈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니아라고 불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인들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두 아르바이트생, 진상이면서 아닌 것 같은 손님들까지 처음에는 이들이 어이가 없어서 웃겼고,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공감이 되어서 웃겼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실실 웃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소설에 이름이 보일 때면 반가웠다.

거기다 중간에 건조한 유머도 웃긴 포인트에 한몫했다. 목사님께서 요한계시록으로 설교를 했다는 말에 자신이 순순히 믿는 주님은 맥주밖에 없다는 대답, 아일랜드인이라면 주근깨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응수하는 말 등이 그랬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고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시크한 유머가 딱 취향에 맞았다.

읽는 내내 웃으면서 가볍게 읽다가 해설을 보면서 소설의 무거움이 확 느껴졌던 것 같다. 사실 이상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기에 작가의 의도나 소설에 담긴 반영적인 부분을 읽지 못했는데 해설이 딱 그 지점을 꼬집어 주었다. 그제서야 어둡고도 냉혹한 현실과 인물들의 무기력함이 보였다. 어떤 화자는 소설 작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으며, 또 안 교수라는 인물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여기저기 쫓기고 있다. 오죽하면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에서는 아예 대놓고 비와 멸망을 기다리겠는가. 

인물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보고 있으니 어쩌면 특별하고도 특이한 게 가장 평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지칭했었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묘하게 마무리는 위로가 되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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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괴담 스토리콜렉터 104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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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야. / p.184

유명한 작가님들의 소설들은 한 권씩 읽으려고 노력하게 된 것도 올해가 되어서 조금씩 시작한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소설은 도장 깨기를 할 정도로 놓치지 않거나 주기적으로 재독을 할 정도로 애정하지만 관심이 없는 작품은 그 아무리 유명한 작가님이라고 해도 제목조차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다. 이름은 아는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면 입도 못 뗄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은 미쓰다 신조의 호러 미스터리 소설이다. 그 중 하나가 미쓰다 신조이기도 하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한국 소설에 지나치게 편중이 된 독서 습관 탓에 못 읽고 있었는데 올해 일본 소설을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기회가 되었다. 이제 호러 미스터리 소설에도 맛을 들이고 싶은 생각과 기대감이 들었다.

소설에는 표제작인 우중괴담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의 괴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가 화자로 등장해 들은 이야기를 말하는 듯한 문체여서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마치 괴담을 많이 알고 있는 이야기꾼으로부터 듣는 것처럼 생생함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지만 기이함과 무서움만큼은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심야괴담회 같은 미스터리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는 편이어서 익숙하지 않은 무서운 감정들이 크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다섯 편의 괴담 중에 <은거의 집>과 <예고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로 실린 <은거의 집>은 산골 집에서 한 할머니와 일주일을 보낸 어린이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깊은 산골의 집에 온 아이는 몇 가지 규칙을 지키면서 일주일을 살아야 한다는 미션을 받는다. 결계 밖으로는 나가지 않을 것,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을 것, 할머니를 할아버지라고 부를 것, 휘파람을 불지 않을 것 등의 이해할 수 없는 규칙에 아이는 의문이 들었지만 명령이기에 순순히 따르는 듯했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한 또래 아이의 유혹에 하나씩 규칙을 어기게 되고, 이는 더욱 큰 결과를 부른다.

은거의 집 이야기를 보면서 답답함과 이해가 공존했다. 아이들은 하지 말라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에 못 이겨 행동하다 혼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아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면서도 자신을 유혹하는 아이의 스산한 느낌을 인지하지 못한 점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마 주인공인 아이에게는 일주일이 마치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고,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거기에 왜 이렇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른들의 명확한 설명이 없었기에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두 번째로 실린 <예고화>는 그림을 그리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교사와 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는 뭔가 조금 어두운 아이처럼 보였다. 독자인 입장에서 이 아이는 단순하게 어두운 것을 떠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교사가 아이의 집에 가정 방문을 갔을 때에 어머니께 하는 행동을 보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교사는 이 아이를 관찰한다. 특히, 미술 시간에 그림을 깊이 보는 편인데 이는 아이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지하는 듯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조금 기괴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림들을 보고 나면 실제로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예고화는 서프라이즈나 미스터리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흥미로웠다. 자신의 질병과 죽음을 미리 예고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들의 심정이 참 궁금했다.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면 그릴 때 운명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일 텐데 말이다. 거기다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이었다면 뻔하게 느껴졌을 텐데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생각을 하게끔 만들다 보니 이 부분도 나름 재미있게 보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보았던 이야기이지만 갈수록 그 흥미는 소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다른 소설들도 충분히 무서웠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예고화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마지막에 이르러 화자의 이야기로 돌아와 하나로 묶어지는데 통합하게 되는 마무리까지 만족스러웠다. 특히,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로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문체나 이해하기 쉽게 표현해 주었던 점은 더욱 몰입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게 된 미쓰다 신조의 월드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호러 미스터리 소설 하면 미쓰다 신조 작가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를 이 책 하나로 완벽하게 깨닫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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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데스의 유산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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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형사의 두뇌 대결이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데 사람들의 이슈를 풀어냈다는 점이 더욱 관심이 가네요. 자당두천의 대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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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할 권리
아미아 스리니바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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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기를 바란다고 해서 비뚤어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p.169

독서를 하면서 그동안 읽지 않았던 분야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이다. 매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슈가 되고 또 사람들 사이에서 논의나 논쟁이 벌어지는데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인터넷에서 퍼지는 일부의 의견만 듣고 거부감을 느낀다거나 반대로 맹신을 하게 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책으로나마 관련 지식을 쌓고 있다.

이 책은 아미아 스리니바산의 페미니즘 도서이다. 사실 제목부터가 조금 강렬하면서도 충격적이라고 느껴졌다. 약간 보수적이면서도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섹스라는 말이 그렇게 외설적인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금기로 여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 책은 '누가 남성을 음해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해 포르노, 섹스, 욕망, 청소년의 성관계, 섹스와 자본주의 등 섹스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섹스에 대한 환상, 성행위에서 발견되는 가부장적 사회 등에 대해 철학적인 이야기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는 점에서 깨우침을 주었고, 논쟁과 고민점은 스스로 정립하거나 방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섹스와 페미니즘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포르노를 말한다'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흔히 말하는 야동을 검색하기만 해도 많은 양의 성관계 동영상과 매체들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남자 아이들로부터 듣기도 했었고, 친구들끼리도 포르노에 대해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포르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이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는데 가장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동안 포르노는 외설적이면서도 유해하다고 생각을 해오다 독서 모임의 첫 선정 도서를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성관계 자체가 남성의 환상에 초점을 맞추어 영상을 제작하기에 여성의 권리 쟁취를 방해하는 요인으로서 더욱 부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책에서도 포르노 영상에서는 남자의 욕구에 맞게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성관계가 아닌 항문을 이용하는 등의 성관계를 말이다. 포르노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단체에서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의견에 동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포르노에 대한 시각을 비교적 다양하게 비추어서 그것도 좋았지만 가장 머리를 때리는 부분은 요즈음 세대와 포르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저자의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이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제대로 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포르노를 보고 나니 감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다. 미성년자는 법적으로 포르노를 볼 수 없고, 성인이 되어서야 접한다고는 하지만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성교육이 아닌 포르노를 통해 정상적인 성관계를 배우고 있다는 점을 말하는데 이러한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 그런 면에서 포르노가 교육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성교육의 중요성과 포르노에 대한 왜곡된 성관계 등을 조금 진지하고도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에도 미국에서 무차별적으로 여성을 공격하는 아시아계 남성들의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성에 대한 편견을 다루기도 한다. '아시아 여성들은 백인 남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평가하며, 아시아 남성들은 성적으로 꼴리지 않는다.'를 비롯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편견 등이 그렇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성적인 꼴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언급했던 것처럼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의 첫 도서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저자인 페미니즘 도서였고, 여성, 인종, 계급이라는 페미니즘 도서도 읽었지만 사실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페미니즘 도서를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재미있으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다. 페미니즘 용어라든지 미국 사회나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어려울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에 비해 이 책은 아시아계의 사람들도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이해가 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동안 부끄러워했었던 섹스라는 행위에 대해 여성으로서 또는 성욕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깊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두 사람이 단순하게 육체적 결합으로 나누는 행위가 아닌 이 행위 안에 정치와 사랑, 인권 등 다양한 이슈들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이렇게 쭉 완독을 했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회와 타이밍으로 이번 독서 모임 도서로 선정이 되었기에 빠른 시일에 다시 재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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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것부터 먹고
하라다 히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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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내세우는 사람만큼 무서운 건 없다. / p.41

음식을 주제로 하는 소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이는 일반 힐링 소설뿐만 아니라 미스터리나 호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뻔할 것 같다는 편견을 가지고 읽었지만 내용부터 와닿는 지점까지 전부 다르다는 생각에 놀란다. 애초에 음식의 종류가 많은 것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의 주제도 다양할 텐데 아직까지는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는 반성도 든다.

이 책은 히라다 히카의 연작 소설이다. 낮술이라는 작품이 꽤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올해 책을 이렇게 많이 읽기 전까지는 음식을 주제로 한 소설 자체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괜히 관심이 생겼다. 항상 음식 하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따스함이라는 게 공통적으로 느껴진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미스터리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힐링을 느끼고 싶다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선택하게 된 책이다.

소설은 의료 스타트업 회사인 그랜마의 대표인 다나카는 회사 직원들에게 새로운 도우미를 채용하겠다고 밝혔고, 가케이라는 도우미가 그랜마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가케이의 비밀도 이야기 중 하나에 등장한다. 그랜마를 설립하고 일군 다섯 명의 동창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 또는 자신의 비전, 쉽게 터놓을 수 없는 개인사 등의 각각의 고민을 가지고 있는데 가케이는 무심하면서도 따뜻하게 이를 야식으로서 위로해 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타미와 마이카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타미는 회사를 이직하려고 고민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이다. 꽤 좋은 회사에서도 면접을 요청할 정도로 큰 인재인듯 하고, 현재 만나고 있는 애인의 부모님 쪽에서도 대기업에 들어가야 결혼을 허락해 주실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와중에도 섣불리 회사를 옮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민하고 있는 이타미에게 가케이는 도미밥과 반찬을 내밀면서 회사에 남을 것을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능력과 상황 자체가 이직을 말하고 있음에도 이타미가 이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는 내내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이타미였다면 고민이라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명확할 텐데 말이다. 아마도 회사에 대한 미련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같이 회사를 일군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일까. 정답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이타미가 되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현실과 이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타미가 되고 보니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에 와닿았다.

마이카는 필리핀 혼혈의 사람이다. 보통 일본인에 비해 약간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듯하다. 사람들로부터 필리핀에서 와서 그런지 개방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읽는 내내 마이카에게 느낀 감정도 그랬다.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가케이에게 조금은 편하게말을 놓는 것도 그랬고,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고 시원하게 느끼는 부분도 그랬다. 물론, 다나카는 이를 마이카에게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뭔가 읽는 내내 숨겨진 아픔을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누군가는 불행을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마이카는 약간 스스로의 불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이는 아마 자신을 키워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마이카의 어른으로서의 모습과 투정을 부리고 싶은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 겹쳐서 보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이를 알아차린 가케이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덮으면서 든 생각은 제목은 잘 지었다라는 것이다. 제목 자체가 말을 하다가 마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면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그랜마의 직원들에게 가케이가 '우선 이것부터 먹고 마음 풀자.'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내용도 보면 직원들에게 야식을 먼저 주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이게 딱 맞아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납득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랜마의 회사 이름 유래처럼 친할머니처럼 직원들을 챙기는 가케이의 모습에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리뷰를 이렇게 적으면서 하라다 히카는 <할머니와 나의 삼천 엔>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네의 한 청년을, 손녀와 며느리를 따뜻하게 생각해 주었던 고토코 할머니의 인상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렇게 따뜻한 소설을 통해 또 다른 할머니인 가케이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다. 조만간 낮술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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