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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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보다 내가 싫다. / p.136

보통 감동과 여운, 현실 세계와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많이 얻는 편인데 추리 소설은 개인적으로 약간 결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처음에는 사회파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도, 읽을 때마다 여운과 감동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마 처음부터 생긴 습관 때문이지 않을까. 장르마다 읽는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런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즈음은 그래도 온전히 추리에 몰입해 읽으려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물론, 여전히 현실 세계를 반영한 추리 스릴러 소설을 조금 더 선호하기는 하지만 약간 기묘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 안에서 나름 재미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추리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겠지만 건더기보다는 읽는 순간 자체의 재미도 나름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 소설집이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책 표지 중 하나가 백광이었다. 결말에 놀라지 않았다면 환불해 주겠다는 출판사의 이벤트와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들의 후기 등 사실 그때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작가와 작품이었는데 계속적으로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백광도 소장하고 있지만 단편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번 신작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총 아홉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자신을 죽인 아내가 다른 곳에서 같은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 바람을 피우고 있는 아내를 살인 사건의 범죄자를 추리하는 이야기까지 조금은 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소재이지만 하나같이 어두우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집중하면서 읽었다. 

개인적으로 아홉 편의 소설 중 <이중생활>과 <열린 어둠>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인상적이었다. <이중생활>은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마키코라는 인물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슈헤이와 밀회를 하고 있다. 주변의 만류와 거액의 돈을 제시해 헤어지자고 고하는 슈헤이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계속 붙잡는다. 그러면서 데쓰오라는 은행원과 연애를 하고 있다. 슈헤이의 아내인 시즈코는 둘의 관계를 눈치채게 되었고, 마키코를 복수하고자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데쓰오와 잠자리를 가진다. 데쓰오는 누구보다 마키코에게 진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마키코가 시즈코와 데쓰오의 관계를 알게 되자 슈헤이 부부를 죽이겠다는 복수 계획을 세워 데쓰오와 실천한다. 

처음에는 인물 관계가 참 복잡하다고 느껴졌다. 가장 어려워 했던 고전 소설 중 하나가 떠오를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결말을 보자마자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물 관계 이해에 급급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와닿았다. 더불어, 복수 자체가 참 다른 의미로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미키코라는 인물이 가장 공감이 되었으며, 그녀가 하는 복수의 이유 자체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키코처럼 복수를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조금 신중하게 생각할 것 같다.

표제작인 <열린 어둠>은 두 사람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폭주족 학생들과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마사는 마더라고 불릴 정도로 학생들과의 신뢰가 두터운 교사이다. 폭주족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갑자기 급한 목소리로 마더 선생님을 호출했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폭주족 아이들의 아지트를 찾아가면서 시작한다. 그곳에는 폭주족의 리더인 다카기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외부의 침입 흔적이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폭주족 내부에 살인을 저지른 학생이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추리를 한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벌어진 또 다른 교사의 살인 사건과 연관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한다.

전체적으로 제목에 맞는 어둠이라는 키워드에 맞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용 중 가장 밝은 분위기였던 소설이었다. 물론,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 특성상 밝게 진행이 된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마더인 마사 선생님과 폭주족 아이들의 사이에서의 모습들이 너무나 좋았다. 누군가는 폭주족 아이들을 문제아 취급하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겠지만 마사는 아이들 자체를 인정해 주는 듯했다. 경찰은 믿지 못해도 마사를 믿는다는 게 흥미로웠다. 제목에서의 어둠이라는 표현은 살인 사건과 관련된 어떠한 특징에 대한 의미라는 사실이라는 점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추리 스릴러 소설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결말 역시도 납득이 가능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었기에 크게 의문이 든다거나 붕 뜨지 않아서 좋았다. 이번 작품 역시도 렌조 미키히코의 장편 소설 백광 출간 때와 마찬가지로 "출간 기념 반전에 놀라지 않거나 재미없으면 100% 환불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어떻게 보면 큰 리스크가 있는 이벤트를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추리 스릴러 소설의 초보 단계인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단편집을 읽고 나니 렌조 미키히코의 다른 장편 소설인 백광 역시도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읽는 순간의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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