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더 아르테 오리지널 1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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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감시자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 p.278

요즈음 영상화로 구현될 소설에 눈길이 가게 된다. 과거에는 모르고 읽었던 소설이 영상화 확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면 최근에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홍보 문구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 소설과 영상에는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아서 읽는 게 좋다.

이뿐만 아니라 나름 스토리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영상을 구현하는데 이러한 재미도 있다. 흔히 가상 개스팅이라는 표현으로 SNS에서도 많이 회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캐스팅이 된 배우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대할 때가 더 크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 생각했던 주인공의 이미지와 배우가 조금 다르기도 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배우는 역시 직업이라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엠마 도노휴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있지만 가끔 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전 세계로 히트를 쳤던 한국 드라마도 보지 않았을 정도인데 뭔가 묘하게 눈길이 갔던 작품이었다. 표지에서부터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고, 줄거리만 보았을 때 영상화로 구현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전 원작 소설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애나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애나는 주님의 성수만 먹는 아이로 추앙을 받는 존재이다.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이슈가 되는 듯한데 애나가 살고 있는 곳에 나이팅게일의 가르침을 받은 리브라는 간호사가 온다. 리브는 수녀원 수녀와 함께 교대하면서 애나가 실제로 음식을 먹는지 감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처음에 리브는 사기극이라는 추리를 하면서 애나를 열정적으로 감시한다.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일하던 리브는 점차 애나에게 빠져들면서 이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온전히 리브의 입장에서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역시 리브처럼 한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가족에 대한 사기극이라고 짐작했었다. 우선 성장기의 아이가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에 표현된 애나는 너무나 건강한 소녀였다. 리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보통 며칠 굶으면 말할 힘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모르는 사이에 영양분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대로 근무하는 수녀가 있을 시간에 말이다.

그렇게 의심의 씨앗으로 읽게 된 이야기는 중반에 이르러 완전히 생각을 바꾸게 된다. 물론, 이 역시도 리브의 감정적인 흐름과 비슷했다. 중반에 알게 된 애나 가족의 이야기와 더불어 종교라는 큰 벽이 참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마 리브가 일에서 시작해 일로서 끝내고자 하는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갔더라면 애나의 상황에 마음을 쓸 일이 없었을 텐데 점차 애나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성과 감정 사이에 많은 혼란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야기에 빠져든 나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종교에 대한 문제이다. 소설은 많은 것들이 종교와 이어져 있다. 주님의 성수를 먹고도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이면서 종교인들의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했고, 애나가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단식을 이어가는 이유 또한 주님의 뜻이었다. 종교가 없는 입장이기에 이러한 그릇된 신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리브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종교가 다르기에 조금이나마 이성적인 시각으로 애나의 건강을 살폈다. 물론, 감정을 앞세울 때 리브를 붙잡게 만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종교가 주는 신뢰에 대한 무서움도 간접적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지점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무서웠다.

두 번째는 가족이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크게 보면 종교와 연관이 되겠지만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애나의 가정사로 하나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같은 일을 반복하려고 하는 가족들의 태도 역시도 의문이었다. 사람 위에 그 무엇도 없다는 입장이기에 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읽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동 학대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다른 이들이 멀쩡하게 보인다고 했을 때에도 애나의 상태를 보았다면 이를 말렸어야 했다. 또한, 애나의 말을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모라는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점점 자녀가 스스로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참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세 번째는 리브의 양가감정이다. 어떻게 보면 딜레마이기도 할 텐데 리브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에 리브는 감시의 목적으로 누구보다 객관적인 증거를 남겼다. 매일 애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음식을 먹는지 감시한다. 간호사라기보다는 감시인에 더욱 가까운 듯해 보였는데 애나에게 마음이 간 이후로부터 리브는 간호사의 입장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나름의 의학적인 지식에 의거해 애나를 설득하고, 의사에게 애나에 대한 몸 상태를 전달한다. 나중에 이르러서는 기적을 지키기 위해 못본 척하는 어른들의 신념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도 리브에게 이러한 점을 경고하는데 그게 더욱 리브에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리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본분을 저버리지 않은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책을 덮으면서 여운이 많이 남았다. 특히, 후반에 이르러 애나가 금식을 하는 새로운 이유가 발견되면서 더욱 감정적으로 와닿았다. 어린 아이를 희생으로 삼아 종교의 가치관을 견고히 하려는 어른들의 그릇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조건 종교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몰상식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보도를 통해 이런 일들을 종종 접한다. 또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느꼈을 모태신앙이 아동 학대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소설을 읽으면서 깊이 논의할 문제라고 느껴졌다.

조만간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활자로 읽는 스토리 자체가 무겁게 와닿았기에 영상으로 구현되는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하게 종교적인 문제로 읽었던 책이었으나, 더 나아가 아동 학대의 문제까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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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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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현실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참 묵직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맥락으로 도가니 역시도 참 마음을 아프게 한 영화이자 소설이었는데 이 소설로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깊이 고찰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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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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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위에 선 인간뿐이다. / p.336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한국 작가님들 중에서는 도장 깨기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이 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부족할 정도여서 예전 작품부터 현재 신작까지 하나하나 읽기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세계관을 읽으면서 나름 위안이 되거나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것 또한 하나의 덕질일까 싶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위주로 읽는 편이었는데 올해부터 일본, 영미, 더 나아가 중국과 낯선 나라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부터 선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서양 문학은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큰 편이기에 작품 자체가 와닿을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을 섭렵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읽은 외국 작품은 첫 작품들이어서 다른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해외 작품들 중에서 작가까지 눈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다. 서양 작가 중에서는 앤디 위어가 유일하고, 일본 작가 중에서는 두 명이 있다. 사실 한 명의 작가는 하나씩 섭렵하는 중이어서 조만간 한국에 나온 작품을 거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읽었던 한 권의 장편 소설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그 자체로도 최애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바로 다른 작품을 구입했었고, 내년에는 시리즈로 나온 소설을 구매해 읽을 계획까지 세울 정도이다.

이 책은 몇 안 되는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이케이도 준의 장편 소설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인데 서평단으로 읽었던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너무나 좋았다. 곧 구매한 다른 작품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우연히 출판사 이벤트로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 한자와 나오키, 변두리 로켓 등은 어느 정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물로 받은 작품은 처음 듣는 제목이어서 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세상에 읽을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렸다. 이제 더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시간을 쪼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이다. 총 10 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지점장 후루카와부터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정사,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연작 소설이라고 보여질 정도로 한 편에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와 처지를 말해 준다. 또한, 도쿄제일은행에서 벌어진 고액의 도난 사건과 직원 실종 사건이라는 큰 틀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읽으면서 애정하는 작품인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중소 기업의 고군분투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배경 자체부터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게 비슷하게 와닿았다. 에피소드 중에서 기업이 도쿄제일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은행 직원이 응대하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인상 깊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은행 직원들의 실적에 치이는 모습은 여전히 안쓰러웠고, 기업 간부와 은행원 간의 기싸움 역시도 뭔가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부지점장 후루카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해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다. 지점장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직원들을 아주 쥐어잡는 것도 모자라 현대 사회에서 흔히 꼰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부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상사의 말은 곧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직원에게 폭력을 가해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대졸 직원들과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인 지점장을 보면서 열정을 가지는 모습은 좋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격지심이자 열등감으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좋은 감정으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는 전형적인 회사에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로 각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노출이 되어서 안 좋게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큰 사건이었던 도난과 실종 사건에는 다른 인물에 비해 크게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밖에도 야구 유망주로 살다가 특채로 은행에 들어온 인물은 뭔가 짠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으며,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직원을 보면서 읽는 입장인 내가 더 억울하다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사다난하면서 우당탕탕 흘러가는 은행 직원의 분투기가 마치 대한민국에서는 보통의 직장 생활처럼 보였다. 물론, 돈을 다루는 직종이기에 크게 보면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아마도 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으로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의 개인사들도 공감이 되었는데 가장 크게 인상 깊었던 점은 큰 사건에 대한 전개 방식이었다. 다른 추리 소설이라면 초반부터 큰 사건이 등장했을 텐데 이 소설은 은행원들의 좌충우돌 소소한 이야기들 위주로 전개된다. 공감하다 정신을 놓고 나면 그제서야 100만 엔 도난 사건이 등장한다. 심지어 등장한 이후에도 개인의 이야기들이 우선적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잊을 만하면 관련 사건으로 실종된 직원과 100만 엔의 출처 등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면에서 직장 소설이라고 봐야 맞겠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흘러서 추리 소설의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읽으면서 범인을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은행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는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가끔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현실감이 느껴졌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주류에 속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덕분에 내년에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도장 깨기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견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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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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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활의 여유를 고귀한 인생의 지혜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88

매체에 등장한 장수 노인분들을 볼 때마다 삶의 원천이 궁금해진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자체가 어둡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를 못 찾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일을 하는 이유도 금전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가끔 자아 실현이나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절대로 업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떠오른다. 이러한 생각이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유를 찾아 표류하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공감할 것 같다.

이 책은 김형석 선생님의 에세이이다. 가끔 답이 안 나올 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시 잡는 편인데 딱 이 맥락이다. 103년 동안 세상을 경험하신 분이기에 삶의 지혜를 알려 주시지 않을까. 인생의 바다에서 원천을 찾아 떠도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답을 찾기 위해 선택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을 느꼈다. 저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신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실 택시 기사와의 에피소드나 동료 교수님들과 식사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도 크게 보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일은 아니었다. 아마 나라면 그냥 평범한 일상이라는 생각으로 잊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생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과거 행복을 모르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서문이었다.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는 문제를 받았다고 한다. 답변에 대한 시상이 있었는데 저자께서는 "정의"로 대답을 했고, 2등을 하셨다. 그리고 1등은 "사랑"이라는 답변을 적었던 선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의가 맞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살아가면서 정의에 대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기준만 보더라도 사랑보다는 정의에 가까운 입장인데 아직 세월의 풍파를 덜 겪은 청년 시기이기에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서문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독특하게도 지금까지도 큰 인상을 주었다.

두 번째는 취미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참으로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취미가, 머리를 사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책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글쓰기나 독서는 취미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뇌리에 꽂혔다. 마치 복지를 업으로 하는 나에게 자원봉사가 취미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어서 되게 흥미로웠다. 그밖에도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과 행복에 대한 시각, 다양한 에피소드는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가져야 할 시각과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른의 시각으로 뭔가 좋은 말씀을 듣는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완벽하게 고민과 감정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느낀점을 토대로 활용하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적으로 작은 일상 하나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가짐부터 다짐할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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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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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네 것을 써. / p.196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 관람은 고등학교 3 학년 때이다. 수능이 끝난 이후 단체 관람으로 어느 극장에서 보았던 연극이었다. 제목과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름 친구들과 웃으면서 보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고 있다 보니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그게 막상 쉽지는 않다. 

이 책은 한송희 작가님의 희곡집 에세이이다. 그동안 드라마 대본집은 접했는데 희곡집은 처음 접했다. 거기다 희곡집과 에세이의 조합은 또 색다르다고 느껴졌다. 지금까지 드라마 DVD나 블루레이 특전으로 대본집을 봤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희곡집도 대사가 있고, 괄호를 통해 상황을 설명해 준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연극과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이었다. 고전으로 너무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었다. 이렇게 책까지 나올 정도이니 제목에서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생소한 장르이지만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제목이었는데 후면에 실린 내용도 뭔가 수긍이 갔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헤테로 시각에서 쓰여진 문학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희곡에는 몬테규 가문의 줄리엣과 캐플렛 가문의 줄리엣이라는 두명의 줄리엣이 등장한다. 익숙한 이름의 로미오는 줄리엣의 남동생이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베로나 시대에서는 동성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동성을 짝사랑하는 줄리엣 몬테규는 어느 백작의 고백을 받았던 줄리엣 캐플렛에게 첫눈에 반한다. 줄리엣 캐플렛은 그동안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다 백작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잔치에서 줄리엣 몬테규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가족과 시대의 반대에도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색다른 설정이어서 흥미로웠다. 사실 알고 있는 줄리엣은 하나인데 또 다른 줄리엣을 만들어 낼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터라 이를 어떻게 구현할까 궁금했었다.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접했던 퀴어 소재의 이야기를 희곡집으로 보고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읽는 내내 몰입해서 보았던 것 같다. 줄리엣 두 사람의 감정을 나름의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었다.

초반에는 줄리엣들의 이야기가 번갯불에 콩을 구워서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첫눈에 반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사랑하는 게 조금은 철이 없다고 보여졌다. 만나자마자 사랑한다고 하더니 같이 살 집을 구해 결혼하겠다는 게 몇 페이지에서 바로 점프를 하다 보니 갑작스러웠다. 물론, 희곡으로 본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시간의 제약이 있기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사랑의 감정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따지는 성향의 사람이기에 더욱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스님의 등장이었다. 서양의 무대를 배경으로 갑자기 나타난 스님의 모습에 뭔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희곡의 내용에서 스님은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고, 캐플렛 가문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예전에 불교에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시나 로맨틱하다고 느껴졌다. 에세이로 스님 역할의 비하인드를 볼 수 있어서 이 점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배우이자 극작가로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과거 연극 후기를 읽으면서 차별적인 요소에 대해 수용해 다음 집필 때 수정을 한다거나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특히, 연극에서의 대사가 무성애자들에게는 조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후기에 깊은 공감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 역시도 이성애 문학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내용들만 생각했었던 터라 머리로 맞은 듯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정체성이 존재했을 텐데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줄리엣과 줄리엣이라는 연극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막을 내린 공연이기에 이를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후기를 검색하기도 했었다. 이 책 하나로 희곡집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의 열정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삶, 극작가로서의 삶,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삶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어 묘하게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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