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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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이 있다는 건 믿어요. / p.30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기가 빨리는 순간이 있다. 작년에 큰 인기를 얻었던 '지구 오락실'에서 한 출연자가 이 프로그램을 끊어서 본다는 내용의 댓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댓글에 누구보다 크게 공감을 했고, 지인들과 한참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나와 같은 내향형의 지인들은 수긍했었던 반면, 외향형의 동생은 출연진들과 함께 저렇게 놀고 싶다고 부럽다고 했다. 같은 배에 나온 자매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다. 즐겨 보는 유튜버의 인생 소설이자 가수인 장재인 님께서 언급했던 책이어서 되게 궁금했다. 사실 주변에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이 있다고 해도 그들의 화장법에 큰 관심이 없다. 사실 화장 자체를 귀찮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로서 흥미 요소 하나 없는 제목인데 묘하게 끌렸다.

소설은 공항에서 연착을 기다리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낯선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안 그래도 연착이 되는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던 제롬은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텍셀이라는 남자가 거슬린다. 불편한 심기를 계속 어필했음에도 텍셀은 제롬 옆에 붙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네덜란드에서 온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며,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서 말이다. 제롬은 내내 불편한 상황에서도 텍셀의 이야기를 툭툭 반응해 준다. 내용은 그것이 전부다. 물론, 후반부에 이르러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말이 벌어진다.

읽는 내내 제롬보다 더 불편함을 느꼈다. 우선, 극강의 내향형에게 가장 고역이었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전제부터가 성사될 수 없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그 상황이 기가 빨리는 수준으로 힘들었다. 제롬은 그나마 텍셀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거나 비판을 보이는 등의 태도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제롬을 만류하고 싶었다. 차라리 무반응이 더 나았을 법했다.

거기에 텍셀의 과거 행동들도 참 불편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가지고 범죄자라고 칭해서 어이가 없어서 웃겼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범죄의 수위가 올라갔고, 텍셀은 강간과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한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고백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내부에는 적이 없다는 제롬의 생각과 신념에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실제 상황이었다면 속으로 비속어를 내뱉지 않았을까. 텍셀이라는 인물 자체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것이 더 이상했다. 

불쾌한 감정으로 읽으면서도 제롬과 텍셀의 티키타카는 참 웃기면서도 흥미로웠다. 여자를 쫓아가는 상황 중에 핫도그를 먹었다는 텍셀의 말에 소시지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제롬의 말이라든지, 텍셀이 집착하는 여자의 반응에 반대말 찾기처럼 여자를 높여 주는 부분이라든지 풍자하는 핑퐁 대화가 그나마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매력을 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불쾌함으로 시작해 난해함으로 끝났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장세니즘이나 신의 존재를 논하는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좋아하는 취향과 거리가 있었다. 그 부분은 참 아쉬웠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니 인생 책이면서 흥미롭게 읽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책의 세계는 참 넓고도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부정적인 느낌을 주었던 소설이었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충족이 된다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마도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난 이후에 나중에 다시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든 뇌리에 크게 박혔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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