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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독서법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9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평점 :

생명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셀지도 모른다. / p.33
인터넷에서 MBTI의 마지막 J유형을 계획형이 아닌 통제형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운데 유형은 가끔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비교적 앞에 있는 I 유형과 가장 뒤에 있는 J유형은 변하지 않는 편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보통 J유형은 계획적으로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불리는 듯했지만 변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계획을 하는 것이기에 상황을 통제하는 의미로 보아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예상 시나리오와 엇나가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입장에서는 그게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 강박을 달고 살던 사람이 조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이는 한 청소년 소설을 읽은 것이 계기인데 주인공이 시간을 판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소재 자체도 참 흥미로웠는데 시간의 관점 자체를 색다르게 알려 주는 내용이어서 좋았다. 아마 청소년기에 읽었다면 시간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편하게 살았을 법도 한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읽어서 그 부분이 아쉽다고 느낄 정도였다. 사실 지금도 시간 강박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혼자 계획하는 일만큼은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은 많이 게으르다는 말까지 할 정도이니 많이 발전했다.
이 책은 김선영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이렇게 큰 영향을 주었던 책이 바로 김선영 작가님의 '시간을 파는 상점'이었다. 손자를 생각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어머니의 말씀이 가장 인상적이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좋기도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계획적으로 살아왔던 나날에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고 해서 더욱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이 역시도 청소년 문학이기에 얇은 페이지 수이다. 약 백오십 페이지 정도여서 한 시간 반에 걸려 완독했다. 역시나 생각할 부분들이 많았기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바깥은 준비됐어>와 <나는 잘 지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바깥은 준비됐어>는 주인공이 중학교 때 멀어졌던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를 가면서 등교를 거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과 조금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유라는 중학교 때 친했지만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공주와 시녀라는 소문이 돌고, 주인공이 준 편지를 안 좋게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유라와 거리를 두고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유라를 본 이후 어머니께 등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결국 주인공은 학교 근처를 배회하였고, 어머니는 친구인 상담사에게 주인공을 보낸다. 그곳에서 비둘기 알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이야기와 유라와의 관계 등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나 직접적인 이야기가 아닌 간접적인 소문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말이 살을 붙여서 돌아오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과거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크게 사람들의 소문에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읽는 내내 그 생각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껄끄러운 사이의 친구를 봐야 하므로 등교를 안 한다는 게 철이 없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당시 청소년이라면 충분히 가졌을 마음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사소한 비둘기 알 지키기로 조금이나마 주인공의 인식도 변화되는 부분은 더욱 좋았다.
두 번째 <나는 잘 지내>는 유럽으로 여행을 간 모녀의 이야기이다. 도전적인 딸과 조심스러운 엄마는 유럽 여행으로 떠난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일이 없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엄마는 언니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언니 역시도 도전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딸이 더욱 걱정이 된다. 반대로 딸은 매사 방어적인 모습을 취하는 엄마가 답답하면서 간섭을 하는 듯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딸은 엄마의 언니인 이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청소년 소설에서 어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게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모든 청소년 소설의 화자가 청소년은 아니지만 그것도 성인의 모녀 이야기가 화자인 경우는 처음 보는 듯했다. 그러나 가장 공감이 되었던 소설 중 하나인데 실제로도 딸이기 때문에 딸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기에 엄마의 입장도 수긍할 수 있었다. 특히, 사랑했던 언니를 떠나 보낸 입장에서 딸 역시도 그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게 충분히 느껴졌다. 아마 내내 노심초사하면서 딸을 지켜봤을 것이다. 소설에 등장한 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단단한 인물이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인 엄마를 걱정하는 이모를 생각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그밖에도 이혼 위기에 놓인 부모님을 바라보는 한 학생의 난타 도전기, 도서부장의 신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 모자의 중독에 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 역시도 하나하나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가 하나같이 염세주의적이거나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는 아마 현실의 청소년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들을 무기력하게 두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좋았다. 난타와 책이라는 수단으로 조금씩 성취해가는 모습이 흐뭇했었다.
어른이 읽어도 마음을 관통하는 부분을 준다는 점에서 청소년 문학의 매력은 끝이 없다. 얇은 페이지가 야속하다고 느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김선영 작가님의 청소년 문학은 늘 우선순위로 놓고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