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책은 그녀에게 고국이자 동시에 영원한 도피처이기도 했다. / p.120

한때 무슬림 이민이 뉴스를 많이 다루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과 몇 년 안 되었던 일이었고, 유럽에서 그들을 이민자로서 받아들일지에 대한 토론이 먼 나라인 대한민국에도 전해졌다. 당시에 주변 지인들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민자를 넓게 포용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무슬림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가득 생겼던 모양이다. 

이 책은 엘리프 샤팍의 장편 소설이다. 예전에는 터키라는 이름이 익숙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튀르키예라는 호칭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물음표를 가졌던 책이었다. 알고 보니 터키 문학이었고, 종교적인 혼란을 가진 내용의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부정적인 느낌을 주었던 무슬림이 주제이다 보니 더욱 관심이 생겼다. 경험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심리와 이야기라 듣고 싶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페리의 일화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페리가 겪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초대된 파티 장소를 가는 길에 겪었던 일들 위주로 전개하다 친구 두 사람이 등장한다. 무신론자이자 종교를 혐오하는 쉬린과 무슬림이지만 페미니스트인 모나, 그리고 가정 환경 내에서 종교적 혼란을 겪고 있는 주인공 페리까지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또한, 페리가 믿고 있는 아주르 교수와의 일화도 함께 나온다.

처음에는 이브의 세 딸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했었다. 너무나 극단적으로 신을 믿는 어머니와 종교적인 관념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페리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머니와 페리, 딸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일까 하는 예상도 했었다. 그러나 딸에 대한 종교적인 이야기는 크게 다루지 않았기에 이 또한 너무 궁금했다. 어느 정도 지점에서 쉬린과 모나가 등장하면서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신론자이기에 쉬린의 이야기에 큰 공감이 가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리의 입장에서 읽게 되었다. 가장 큰 서사가 페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거의 혼란이 너무나 와닿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유신론자인 어머니와 반대로 극단적인 무신론자인 아버지 사이에서의 고민도 컸을 텐데 종교적인 입장으로 페리의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상태에 이르렀다. 각자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부모의 압박과 그 안에서의 공포는 참 답답하게 보였다. 사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종교적인 잣대가 무시될 수는 없겠지만 그게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데 부모가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가정 내에서 노력하는 페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또한, 아주르 교수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지점이 있었다. 맹목적으로 종교에 빠져드는 것은 위험하고, 반대로 종교를 부정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그동안 종교에 대한 너무 한 가지의 관점에 몰입해 편협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안 좋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서 페리가 아주르 교수에게 너무 빠져든 것 역시도 경계해야 할 태도이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무슬림과 페미니스트는 다른 평행선을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모나의 캐릭터 설정은 신선했다.

정보가 없어서 초반에는 용어를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동안 생소하게 느껴졌던 튀르키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부분이 생생하게 와닿기도 했었다. 생생하게 튀르키예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런 부분이 초반부터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는 아마도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꺼운 페이지 수에도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페리가 되어 혼란스러움을 겪었고, 아주르 교수가 되어 종교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렸으며, 친구들이 되어 다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읽는 내내 튀르키예의 현재부터 사회, 종교에 이르기까지 낯섦과 새로움이 공존했던 소설이다. 그러한 점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었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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