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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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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은 늘 현재의 몫이었다. / p.8
백치라는 단어가 적어도 주변에서는 자주 들을 일이 없어서 생소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에 단어 하나하나에 나름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는 나 또한 자유롭지 않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릴 비속어 역시도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백치는 소설에서만 가끔 보고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사이먼 재럿의 장애에 관한 책이다. 아무래도 늘 장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다양한 도서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최근에 읽었던 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다루었고, 인생 책 중 하나는 미국에서 장애인 인권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분의 자서전이다. 그만큼 주의 깊게 보고 있는데 정작 지적 장애를 다룬 책을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데 지적 장애를 다룬 책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다.
책은 삼 세기의 지적 장애의 역사가 순서대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지적 장애의 역사가 아닌 서양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사적인 지식과 정신 치료라는 의학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우생학을 알고 있었으며, 시설 감호나 자선, 신구빈법 등을 전공 시간에 배웠던 적이 있었기에 그 부분은 익숙하기도 했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적 장애의 역사가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첫 번째는 18 세기 백치의 개념이다. 백치는 선천적 바보로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고대 시대에는 문맹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시설 감호가 없었을 시기이기 때문에 백치는 지역사회 내에서 보호를 했었으며, 백치가 죄에 대한 경감의 이유였다. 물론, 사회적으로 비난하거나 조롱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혐오와 경멸의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중에서 글을 모르는 사람과 동일시되었다는 게 처음 알게 된 정보이기에 인상 깊었으며, 백치가 무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신 미약을 이유로 죄가 경감되는 현대 사회가 겹쳐서 보였다.
두 번째는 백치에 대한 도덕적인 관념이다. 현대에 이르러 백치는 도덕 박약자라는 관념을 가지게 된다. 이는 우생학에서 나와 최고의 수준인 도덕관념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이며, 악마로 국가적 관심을 받는다. 아무래도 지적 장애라고 하면 사회와 의료에 대한 정의는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데 도덕적인 잣대까지 있었다는 측면에서 생소했다. 이 또한 우생학에서 가지고 온 개념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몇 줄의 설명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정신 장애와 지적 장애가 구분되어서 쓰이고, 또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는 많이 인식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읽는 내내 대한민국에서 지적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백치라는 말은 자주 쓰이지 않지만 그와 비교할 수 있는 멍청이, 병신, 바보 등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는 지점을 떠올리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 장애의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좋았지만 더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시각 또한 변화해야 됨을 다시금 새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