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독에 초대합니다
정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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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되뇌지만, 사실은 너무도 외롭고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다. / p.7

생활 패턴을 아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외롭게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회사와 집이라는 일정한 루틴만 왔다갔다 다니고, 취미도 드라마나 예능 시청 또는 독서 정도만 하는 편이기에 사람이 그립지 않냐고 되묻는다. 행동이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혼자 지내는 게 남들과 소통하는 것보다 더욱 편한 스타일이다 보니 그렇게 외로움이나 고독을 느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즐기는 편이라고 봐야 무방할 듯하다.

삼십이 넘어서 지금은 예전에 비해 사람들을 그래도 조금 만나는 스타일로 변화됐다. 그렇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종종 그리울 때가 있으니 주변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자차를 가지고 있고 운전이 가능하다 보니 가동 범위가 넓어진 면도 없지않아 있겠지만 사람이다 보니 같은 사람의 향기나 소리가 떠오른다. 이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민선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요즈음 생각하는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어서 눈길이 갔다. 예전에는 고독을 모른다고 대답했겠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할 것 같은데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고독이 궁금해졌다. 또한, 등장인물들에게 고독이라는 것은 무엇일지 알고 싶어져서 읽게 되었다.

작품에는 이름보다 알파벳으로 닉네임이 정해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선, A이라는 인물은 삼십 대 초반의 출판사 편집자로 전 남자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사랑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지만 사람을 그리워한다. B라는 인물은 역시 삼십 대 초반의 대기업 직원으로 말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이지만 신혼여행지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역시나 연애와 담을 쌓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C와 N는 이십대 중후반의 인물로 회사원과 인플루언서이다. C는 조금 어른스러운 반면, N은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전형이다. 그밖에도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던 사십 대 초반의 작가 지망생 D와 오십 대 초입에 들어선 G가 있다.

이들이 브이로그 형식으로 각자 혼자 사는 삶을 말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고, 사생활은 최대한 숨긴 채로 익명 단체 대화방에 초대가 된다. 생존 신고부터 시작해 서로 속상하거나 슬픈 일들, 그리고 기쁜 일들을 함께 나누면서 가까워졌는데 더 나아가 누군가는 사랑을 느끼고, 함께 동지애를 느낀다. 이들이 말하는 고독 이외에도 연관성을 가진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모든 인물들에 공감이 되었지만 가장 비슷한 인물은 A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이 또래가 비슷하고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는 게 너무 공감이 되었다.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은근히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종종 있었는데 A가 딱 그렇다. 또한, 다른 인물들에게 배려하고 공감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부분에서 부러움과 동시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공감한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강한데 작품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공감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너무 좋았다. 그밖에도 인간이 왜 혼자일 수 없는지, 인생을 왜 살아가야 하는지 등 약간은 철학적인 내용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너무 현실적으로 와닿아서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나이대부터 직업까지 모두 다르지만 서로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 지내왔던 인물들이었는데 왜 하나같이 나의 심정을 다루었는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사랑에 대한 배신을 느낀 적도 없고, 인플루언서로 활동하지도 않고, 신혼여행 근처도 간 적이 없는데 말이다. 각자의 이야기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위안을 삼은 것처럼 나 역시도 그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아서 너무 좋았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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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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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딸아이에게 제 모든 걸 바쳐 정말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 p.9

아직 미혼이기는 하지만 주변에는 최근에 임신한 분부터 이미 아이를 성인까지 키우신 분까지 다양한 어머니가 계셔서 자주 언급이 되는 주제가 모성이다. 특히, 어머니와 이미 자녀를 두고 있는 동생까지 가족들이 전부 기혼자인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녀에 대한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오는데 그때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벗어난 나의 의견과 충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모성은 참 어렵고 또 어렵다. 추상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아마 자녀를 둔 어머니의 입장이라면 모성을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딱 한 문장으로 대답하기도,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본능적인 마음 정도일까. 가늠할 길이 없다.

이 책은 미나토 가나에의 장편소설이다. 미나토 가나에 하면 당연하게 떠오르는 게 노란색 꽃이 그려진 표지의 소설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 <고백>이라는 작품인데 당시에 읽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결말보다는 처음에 강렬하게 시작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었으며, 그 작품도 어떻게 보면 모성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데 그래서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한 여학생이 주택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루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은 이 여학생이 타살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의문을 가진다. 여학생의 일로부터 드러나는 한 가족의 비극적인 가정사를 딸의 고백, 어머니의 고백, 한 교사가 여학생의 사건을 듣는 이야기로 나누어 전달한다.

사실 내용만 보면 크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여학생이 주택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은 단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수단일 뿐 더 몰입이 되는 지점은 따로 있었다. 읽으면서 딸의 입장, 어머니의 입장, 그리고 제 3자로부터 듣는 입장 등 하나의 이야기를 다각도로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두꺼운 페이지 수가 아니기 때문에 퇴근하고 난 이후에 조금씩 읽으면 금방 완독이 가능할 수준이었다.

읽으면서 세 사람의 시선으로 등장하지만 딸의 고백에 더욱 감정 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딸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어머니는 이를 외면한 듯했다. 아니, 대놓고 외면하기보다는 혼란스러움을 안겨 준 듯하다. 딸의 손을 잡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를 무시한다거나 가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딸의 탓으로 돌린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그랬다. 아예 딸을 어머니의 삶에서 제외를 시켰다면 모르겠지만 그것 또한 아니었다. 딸을 애지중지 키웠다는 고백으로만 봐도 딸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게 과연 애정인지 애증인지 잘 모르겠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미혼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모성이라는 게 선천적인지 아니면 후천적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과연 화자인 어머니의 모성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사실 어머니의 태도로부터 모성이라는 것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딸의 외할머니로부터 대를 거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에서 친할머니는 딸의 의견을 묵살한다거나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고, 교육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반면, 외할머니는 딸을 무척 아꼈고, 존중해 주었다. 외할머니의 태도가 곧 모성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딸에게 하는 행동은 모성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말로부터 시작된 학습된 책임감처럼 느껴졌다. 나름 모성이라는 게 무엇일지 해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모성에 대한 고뇌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미나토 가나에 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을 인정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후루룩 읽을 수 있고, 전작에서 느꼈던 전율과 소름을 그대로 이어졌다. 충격적인 소재에 비례하는 무거운 여운, 그리고 술술 읽히는 스토리까지 뭐 하나 빠진 게 없었다. 아마 후에 혹시나 모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다른 느낌으로 읽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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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츠
이아타 지음 / 메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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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시 굶주림의 시대로 돌아가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 p.16

예전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한때 식량에 대한 두려움이 클 시기가 있었던 적이 있다. 어떤 때에는 식량난이, 또 다른 때에는 유전자 공학 식품에 대한 위험성이 그랬다. 전자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식품들이 고갈될 것을 우려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후자는 유전자 변형 식품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게 되면 희귀병이나 질환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식량에 대한 걱정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세상에는 먹을 것이 참 많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인데 최근에 수급난이 맞물려서 아주 오랜만에 식량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물이 없다면 위생적인 것은 물론이고,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쌀을 비롯한 곡식들의 재배량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많은 비가 내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이아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식량난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가장 크게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을 보면 식량 자체를 주제로 내세운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현실감이 있는 익숙한 소재들도 좋지만 SF 장르에서는 먼 미래에 벌어질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에 큰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기에 그런 비슷한 맥락으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 읽게 되었다.

소설에는 태오와 지오라는 이름의 형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식량 전쟁으로 자연산 곡식을 취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식물에 대한 소유권을 대기업이 모두 나눠서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전자를 연구해 슈퍼 곡식들을 개발해 납품하는데 그 중 하나가 베이츠에서 개발한 알파콘이라는 옥수수이다. 지오는 베이츠에서 알파콘을 재배하는 노동자로 취업한다. 취업하는 과정은 참 험난한데 누구보다 체력이 중요시되는 일이다 보니 다른 이들과 겨루고 또 선택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거기에서 지오는 당당하게 입사했고, AI나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한 가장 단순하고도 힘든 업무를 한다. 그렇게 형인 태오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일하던 중 갑자기 실종이 된다. 태오는 수소문하거나 베이츠에 동생의 행방을 물었지만 이미 퇴사했다는 답변을 받는다. 태오는 결국 베이츠에 입사해 동생의 흔적을 밟기로 한다. 그러면서 만난 다른 노동자와 마스터, 그리고 베이츠를 만든 이들 사이에 사건을 다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최근에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다. SF 소설의 특성상 과학적 지식이 많이 등장해서 늘 애를 먹기는 했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전자 공학 식품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느라 조금 더디게 읽었던 것 같다. 거기에 나오는 이름 자체도 너무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초반에는 스토리의 흐름을 하나씩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고, 이후부터는 조금 그래도 수월하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상상력에 집중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게 느껴질 법한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대한민국으로 말하자면 삼성이나 엘지 등의 큰 대기업이 유전자 식품 공학으로 나라의 식량을 제어한다는 설정일 텐데 이게 이상하게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과연 우리나라에도 큰 재난 재해나 세계 식량 전쟁으로 지금 재배하는 곡식들을 키우는 게 불법이고, 마트에서 구입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무조건 대기업에서 만든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나름의 살을 붙여서 이리저리 상상했다. 결론적으로는 끔찍할 듯하다.

거기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유전자 공학 식품의 안정성에 대한 문제들도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장 두려워하고자 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태오와 지오 형제의 할머니는 불법을 행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태오는 베이츠에 부정적인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가장 현실감이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밖에도 대기업이 중요한 무언가를 꽉 잡고 있는 것도 경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려웠지만 그만큼 새로워서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SF에 대한 지식은 늘 한계점을 보이는데 조금 더 잘 읽혔더라면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조금은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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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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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거미줄 안에서 살아남도록 허락을 받는다. / p.12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고딕 소설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영화도 호러 장르의 영화는 일절 보지 않는 편인데 활자로 느끼는 분위기도 부정적인 긴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고딕 소설은 놀이공원에서 절대 가지도 않을 귀신의 집과 비슷하다. 이는 아마 겁이 많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무섭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집이다. 그렇게 고딕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왜 읽었냐고 묻는다면 여성이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줄거리들이 현실감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아무래도 같은 여성이기에 등장인물들의 사건들이 나름 피부로 와닿지 않을까. 추리 장르의 소설도 현실과 맞닿아 있는 줄거리라면 누구보다 좋아하는 독자이기에 이 지점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총 네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여성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보통의 여성보다는 무언가 고민이나 사건을 가졌다. 사실 소설에서 고민이나 사건이 없다면 이야기 전개가 안 될 듯하지만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는다. 그게 남편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살고 있는 사회일 수도 있다.

고딕 소설이기에 긴장감이나 공포는 물론이며, 말할 수 없는 축축한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늪지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긴장감에 몰입이 되어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해하면서 읽었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받고 있는 감정을 느꼈는데 이는 아마 주인공 개인이 아닌 상황이나 배경 등의 조금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크게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먀오 다오>라는 작품과 <환영처럼: 1972>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먀오 다오>라는 작품에는 마오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청소년이지만 조금 조숙한 느낌을 주는 여자 아이이다. 그래서 학교의 남학생들은 그녀에게 성적으로 수치심을 줄 수 있는 괴롭힘을 자행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재혼해 떠나고 그 자리에는 의붓아버지인 패리스가 채운다. 패리스 역시도 마오에게 성적 학대를 일삼는데 기댈 곳 없는 마오에게는 먀오 다오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환영처럼: 1972>에 등장하는 앨리스는 남자 친구인 사이먼의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이후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앨리스에게 철학과 교수인 롤런드가 등장한다. 앨리스는 임신을 쉽게 밝힐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또 의지할 수 있는 롤런드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롤런드는 순수한 도움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그 역시도 앨리스를 "여성"으로서의 숨겨진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두 작품은 성이라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풀어낸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하나로 묶어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먀오 다오의 마오에게는 청소년 시기의 부모의 성적 학대를 떠올리게 했다. 상황에 놓인 마오의 모습과 학대를 받는 들고양이들의 모습들이 겹쳐서 보였고, 그게 더 나아가 동물 학대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학교에서 조숙한 친구들에게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던 일부 친구들을 보았기에 이 지점은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환영처럼: 1972는 먀오 다오보다 더욱 더 직설적인 느낌을 받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들도 노골적으로 와닿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앨리스가 임신 여부를 불안하게 그리는 장면이었다. 매달 하는 월경을 기다리는 듯했는데 이는 주변에서 너무도 익숙하게 보고 또 들었던 사실들이었다. 또한, 아이를 출산해 양육할 수 없는 자격이나 능력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앨리스의 심정에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었으며, 현실적인 문제에 붙잡혀 불순한 의도를 거절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이해가 되면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느꼈던 공포와는 조금 달랐다는 측면에서 고딕 소설의 거부감은 없었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여성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으며, 조이스 캐럴 오츠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조금씩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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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훔친 여자
설송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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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 가는 저세상은 봄인가 보다. / p.7

종종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북한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도인 평양은 출입증이 있는 국민에게만 허용이 된다는 점부터 대한민국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내용들까지 하나하나 마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유럽이나 미국의 이야기들도 대한민국 사회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자유가 보장이 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보다는 가깝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 책은 설송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띠지에 있는 문구가 조금 인상 깊게 다가와 선택하게 된 책이다. 북한의 이미지와 최근 인기를 얻었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 작품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진 탓이다. 북한은 개인의 자산이 통제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미묘한 간극을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봄순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1998년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015년에 숨을 거두었던 봄순이 1998년으로 돌아간 회귀물이다. 마음에 두고 있던 우진 오빠는 1998년에 사망했는데 봄순에게 다가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영문을 모르던 봄순은 알고 보니 자신이 1998년도로 돌아갔음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의 생활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새터민 패널의 이야기로만 듣던 사람이기에 초반에는 조금 읽는 것이 더디었다. 특히, 회귀물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활자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 매체로 익숙했기에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일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스토리 파악이 되면서부터는 그동안 잘 몰랐던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문자로 읽는 것이 낯섦보다는 신기함으로 다가와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생활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온 반면, 의외의 지점에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게 바로 여성이었다. 우선, 봄순은 철욱이라는 이름의 남편과 아이를 두고 있었다. 철욱은 그저 콧대만 높은 신분의 사람인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나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살아가겠다는 의지조차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부인을 잘못 들인 탓으로 돌렸다. 물론, 봄순의 가정사가 원인이 되었던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철욱의 핑계로 느껴졌다.

이 지점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에게 탓을 돌린다거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여자의 팔자가 세기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초반에는 우진과 봄순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가정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와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눈초리를 보내던 주변 여성들의 모습들도 씁쓸했다.

신분에 대한 통제와 더불어 성별에 대한 차별까지 있는 환경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당당하게 성공하는 봄순의 모습은 통쾌했고 다른 의미로 생각이 많아졌다. 거기에 자신보다 더 잘난 봄순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남편의 방해로 더욱 힘들었을 법도 한데 봄순은 이를 보란듯이 이겨냈다. 무엇보다 그런 악조건과 현실 속에서 이겨낸 봄순의 의지와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보면서 많은 배울 점을 찾았다.

북한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회귀물이라는 매치 자체가 조금 신기하면서 낯설었지만 오히려 색다른 조합이었기에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새로움과 회귀물이라는 저자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그 지점이 참 매력적이고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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