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이스트
다카야마 마코토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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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마침내 이 시골에서 웃을 수 있었다. / p.9

이 책은 다카야마 마코토의 장편소설이다. 책을 고르게 된 계기가 조금 특이하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이 출판사의 한 소설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 책과 판형이 똑같아 보여서 선택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시리즈로 생각을 했었다. 보통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은 모아두면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작품을 읽고 괜찮다면 그 유튜브에서 본 소설도 구매할 계획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스케이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십대 시절을 괴롭힘을 보낸 인물인 듯하다. 도망치듯 살던 동네를 떠나 도쿄에서 거주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다시 고향을 찾았다. 물론, 고향을 찾은 이유는 명품으로 치장된 옷을 보고 괴롭힘 가해자들의 눈빛을 보기 위함이다. 지나가다 본 동창들은 그의 모습을 보았고, 그들의 눈을 보자 고스케는 승리감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배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지인으로부터 류타라는 이름의 한 개인 트레이너를 소개받는다. 고스케는 동성애자였는데 류타 역시도 같은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류타의 몸매에 고스케는 호감이 생겼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결국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류타가 다른 직장을 알아보면서 고스케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다시 만났다. 소설의 내용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얇고 작은 판형이어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읽었고, 큰 사건보다는 잔잔한 일상적 내용들로 전개가 되다 보니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두 주인공이 동성 연인 관계이기에 이러한 지점에 크게 거부감이 없다면 무리없이 읽지 않을까. 아무래도 많은 퀴어 문학들을 접했고, 직전 작품 역시도 성소수자들이 등장했던 터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읽는 것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 지점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제목이다. 에고이스트의 사전적 정의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겉으로 보기에 고스케가 류타를, 그리고 류타의 어머니는 챙겼다는 측면에서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에 있기에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에고이스트라는 제목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면서 느끼게 되었던 점이 고스케가 류타를 연인 관계 그 이상으로 자신과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원래의 뜻과는 다르지만 자아라는 뜻을 가진 ego와 비슷하게 고스케가 류타에게 하나의 자아로서 의미를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고스케와 류타의 관계이다. 약간 첫 번째 지점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보통 연인 관계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물주로 오해가 될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물질적으로 지원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이해가 되지만 너무 지나쳤다. 그런 면이 오히려 류타로 하여금 마음의 부채처럼 쌓였을 것이고, 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을 잃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스케는 사랑하는 방법이 서툴었다. 결국은 그게 죄책감이 되어 두 사람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을 주었던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보면 구구절절 마음 아픈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고스케의 반성과 죄책감을 통해 성장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 배경이 같다고 해도 막연하게 자아를 투영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너무 퍼주는 것 또한 어떤 면에서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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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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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로 나뉜 길에서 용연은 울고 복희는 웃었다. / p.10

이 책은 김현 작가님의 소설집이다. 소설을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아무런 정보 하나 없이 선택한 책이다. 제목만 보고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고, 표지가 참 재미있었다. 컴퓨터에서 얼굴만 따로 따서 만든 그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때 유행이었던 오렌지 그림이 떠올랐는데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열한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조금은 낯선 세계에서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이 보여졌는데 소수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작품에서는 퀴어라고 불리는 동성애자들이 주인공이었고,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 있었고, 또는 그들에게 차별과 혐오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그 지점들이 흥미롭게 읽혀졌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라는 작품이다. 이무송과 노사연의 결혼 소식을 접한 숙자 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숙자 씨의 남편인 신운선 씨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아들 신태현 씨는 동성인 박민준 씨와 연애했다. 그렇게 주변 인물들의 사연을 설명해 준다.

이 작품에는 진짜 셀 수도 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열한 편의 작품 중 가장 난이도가 어렵게 느껴졌다. 등장 인물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읽기 힘들어한다는 약점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신운선 씨와 숙자 씨의 가족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겠다는 예상을 했었지만 신운선 씨가 탄 택시 기사의 이야기들까지 계속 끝도 없이 나아간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제목 그대로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렇게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특히, 전에 읽었던 정세랑 작가님의 한 장편소설이 떠올랐다.

두 번째는 <수영>이라는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수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영은 디아 아몬이라는 저자가 쓴 책을 편집하고 있다. 평일과 주말 가릴 것도 없이 꽤 오랜 시간을 일에 파묻혀 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엄마로부터 맞선 자리가 온다거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디아 아몬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수영의 이야기들을 따라가고 있다.

소설이라는 전제를 모른다면 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디아 아몬의 존재가 조금 특별하기는 했지만 일에 쫓겨 주말 없는 생활을 보낸다거나 주변으로부터 결혼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보통 사람들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에 에세이라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결말이었다. 딱 마지막 반 페이지를 읽자마자 소름이 돋았고, 나의 편협한 시각에 또 당황스러웠다. 디아 아몬이 물에서 수영한다는 이야기와 주인공 수영의 현실이 딱 맞아 떨어졌다. 사고를 깨트렸다는 점에서 참 인상 깊게 읽었다.

작품에도 드러나듯이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너무 현실적으로 와닿았고,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성적인 수치심을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주변 사례들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들은 너무나 차갑고 냉혹했는데 그 안에서 햇빛이 비추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소설 작품 하나하나에서 보여진 인간에 대한 관심, 그들의 연대, 그리고 보여지는 진심이 따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너무나 인간애가 와닿았고, 덤으로 중간중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재미가 나름의 묘미였던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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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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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서 처음 문을 연 서양요리점은 어디였을까? / p.24

맛집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기다려서 줄을 서서 먹는다고 해도 그 맛이 비슷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기도 하다. 굳이 맛집보다는 그냥 바로 들어가서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는 편이다. 나름 지역에 대한 자부심일지도 모르겠다. 사는 곳은 어디를 가도 절반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맛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맛집을 찾아서 다닌 적은 삼십이 넘는 지금까지도 없는 듯하다.

이 책은 박현수 선생님의 역사학 도서이다. 맛집이라는 내용보다는 경성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듯해서 고르게 된 책이다. 사실 그 시대의 감성들을 드라마나 사진을 통해 자주 접했는데 그게 참 좋은 쪽으로 와닿았다. 과거와 현대가 함께 있는 시기라고 할까. 책으로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더불어, 경성과 맛집은 크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던 것도 있다.

책은 크게 본정, 종로, 장곡천정과 황금정이라는 세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총 열 곳의 경성 식당을 소개해 주고 있으며, 문학 작품과 사진으로 식당의 분위기나 당시 경성의 상황 등을 이야기한다. 전체적으로 모르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흥미롭게 읽혀졌으며, 몰랐던 역사들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가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식당의 메뉴이다. 조선음식점으로 불리는 화신백화점 식당과 설렁탕 가게 이문식당 등 우리 고유의 음식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식이나 서양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화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들이 들어왔다는 점과 그 당시에도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두 번째는 빈부격차이다. 상대적으로 고급 요리를 대접하는 식당들의 메뉴는 값어치가 있었다. 보통 세트 메뉴가 2원, 1원 50전 정도였는데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 보면 12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당시 서민들이 받는 월급이 1원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답답하게 와닿았다. 그래서 이런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거나 그와 비슷한 류의 부자들일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처럼 보여졌다. 그밖에도 식당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흥미롭게 읽혀졌다.

아마 경성의 역사만 드러나는 책이었다면 읽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자세하게 드러난 지도와 사진 자료들, 그리고 문학 작품, 친숙한 맛집이라는 소재로 역사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맛집 자체에 큰 관심이 없지만 이상하게 여기에 등장한 맛집들은 궁금했다. 그만큼 생생하게 와닿았다. 가능하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경성에서 느끼고 싶었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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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퀴즈
오가와 사토시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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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긴다. / p.10

예전에는 공중파에서 백 명의 일반인과 한 사람이 대결을 벌이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시간을 기다려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보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가족과 그걸로 참 많은 내기를 했었다. 주관식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보기가 세 개라는 점에서 선택하기 좋았고, 지루한 일상에 나름 만족스러움을 주었다. 더불어, 정답률이 좋으면 간식을 사서 먹을 수 있는 용돈까지도 꽤 짭짤하게 들어왔었다.

이 책은 오가와 사토시의 장편소설이다. 내용이 참 흥미로웠다. 문제를 듣지 않고 정답을 맞힐 수 있을까. 퀴즈쇼에서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정답을 맞혀서 우승을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학창시절에 지문을 읽지 않고 문제를 풀었던 경험이 꽤 많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보여졌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시마 레오라는 인물이다. 중학교 때 퀴즈 관련 동아리를 들어가게 되면서 퀴즈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한 지금까지도 퀴즈를 좋아한다. 단순하게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퀴즈에 열광하는데 여러 퀴즈쇼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Q-1 그랑프리에 나가 결승전에 올라오게 되었다. 상대는 유명한 대학교를 다닌 연예인 혼조 기즈나이다. 나름 똑똑함은 증명이 된 듯하지만 미시마 레오만큼 퀴즈 마니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승전에서 앞서고 있던 미시마 레오는 마지막 문제를 허무하게 혼조 기즈나에게 내주어 우승을 놓친다. 첫 마디가 나오기도 전에 바로 맞힌 혼조 기즈나. 방송국과 혼조 기즈나가 협의해 조작을 했다는 의혹을 품게 되고, 그동안 퀴즈 프로그램에 나왔던 혼조 기즈나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는 등 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이 사건에 대해 풀어내며, 미시마 레오와 혼조 기즈나가 살아온 과거도 함께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인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지적인 분위기이다. 아무래도 소재가 퀴즈이다 보니 다양한 문제가 등장하는데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삼대 학술지에 대한 문제, 사건의 지평선 문제 등 그동안 잘 몰랐던 상식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퀴즈를 맞히는 게 가지고 있는 정보에서뿐만 아니라 퀴즈 출제자의 발음을 유추해 답을 해결하는 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일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있었다면 일본 세탁소에 대한 문제라든지, 출제자 발음 등이 더욱 재미있게 와닿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삶이다. 미시마 레오는 퀴즈에 인생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직장을 선택하는 조건부터가 퀴즈쇼를 자유롭게 나갈 수 있는지 여부가 걸린다.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퀴즈를 던져 사유하고, 퀴즈에 자신의 인생을 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몰입이 되었다. 퀴즈를 가깝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퀴즈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듯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곧 하나의 퀴즈인 듯했다. 나 역시도 읽는 내내 나의 퀴즈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작은 판형에 페이지 수도 적어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스토리 자체가 너무 흥미로워서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단순하게 퀴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그냥 퀴즈 문제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우승을 한 이유를 파헤치기만 했다면 여느 추리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퀴즈라는 수단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어서 생각보다 큰 여운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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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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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피도 눈물도 없어. / p.9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베테랑이라는 말은 하나의 훈장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살아가면서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발전이 되고, 더 나아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게 비단 팀장, 과장, 부장 등의 직급의 상승이나 호봉이 오르는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직업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희정 작가님의 사회 관련 서적이다. 비소설 계열의 인문학 또는 사회학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자주 접하는 분야가 노동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는 명함이 없는 직업인 여성들에 대한 인터뷰집을 읽었고, 그 전에는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직업으로 돈벌이를 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만큼 자아실현도 꿈꾸는 사람으로서 큰 도움이 될 듯해서 읽게 되었다.

책에는 총 열두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 다른 직종에서 베테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비교적 익숙했던 수화통역사, 어부, 조리사, 배우부터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던 마필관리사, 세공사, 식자공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직업인으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들과 베테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각 장의 마지막에는 관련 직업에 대한 이슈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직업인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수어통역사이다. 익숙함과 의문점이 동시에 들었던 파트인데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장자리에 자주 볼 수 있고, 또 직업의 특성상 수어통역사분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에 궁금했다. 그러면서 로프공이나 조리사, 세공사 등의 직업은 직업인으로서의 삶의 흔적들이 신체 곳곳에 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 수어통역사는 신체적인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아했다. 읽으면서 손을 비롯해 몸을 써서 말을 전달하는 직업이기에 그 또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수어통역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나아져야 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두 번째는 안마사이다. 사실 맡고 있는 업무 중 하나가 안마사분들과 함께 협업을 하다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이다. 각각의 신체에 맞게 적당한 압력으로 안마를 해 준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떻게 보면 사회의 편견을 깨고 하나의 직업인이 되셨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안마를 통해 풀어 주는 능력이 크게 와닿았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안마라고 하면 퇴폐업소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조금은 변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조산사이다. 가장 생소하게 와닿았던 직업이었는데 부끄럽게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분만실 간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출산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를 디테일하게 진행하는 직종이었다. 흔히 병원에서 자연분만이 아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단순하게 출산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모의 감정을 읽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준다거나 상황에 맞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에 등장하는 직업인들은 베테랑이라는 단어에 부끄럽다고 말하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크게 와닿았다. 그 자체가 베테랑이 아닐까. 누군가는 이 직종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읽는 내내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또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인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이 책 덕분에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직업인으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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