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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평점 :

기계는 피도 눈물도 없어. / p.9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베테랑이라는 말은 하나의 훈장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살아가면서 크게 욕심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발전이 되고, 더 나아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게 비단 팀장, 과장, 부장 등의 직급의 상승이나 호봉이 오르는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직업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희정 작가님의 사회 관련 서적이다. 비소설 계열의 인문학 또는 사회학 책을 읽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자주 접하는 분야가 노동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는 명함이 없는 직업인 여성들에 대한 인터뷰집을 읽었고, 그 전에는 배달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직업으로 돈벌이를 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만큼 자아실현도 꿈꾸는 사람으로서 큰 도움이 될 듯해서 읽게 되었다.
책에는 총 열두 사람이 등장한다. 각각 다른 직종에서 베테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비교적 익숙했던 수화통역사, 어부, 조리사, 배우부터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던 마필관리사, 세공사, 식자공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직업인으로서 살아왔던 이야기들과 베테랑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각 장의 마지막에는 관련 직업에 대한 이슈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직업인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수어통역사이다. 익숙함과 의문점이 동시에 들었던 파트인데 아무래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장자리에 자주 볼 수 있고, 또 직업의 특성상 수어통역사분들을 종종 만나기 때문에 궁금했다. 그러면서 로프공이나 조리사, 세공사 등의 직업은 직업인으로서의 삶의 흔적들이 신체 곳곳에 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 수어통역사는 신체적인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 직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아했다. 읽으면서 손을 비롯해 몸을 써서 말을 전달하는 직업이기에 그 또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수어통역에 대한 인식과 처우가 나아져야 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두 번째는 안마사이다. 사실 맡고 있는 업무 중 하나가 안마사분들과 함께 협업을 하다 보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이다. 각각의 신체에 맞게 적당한 압력으로 안마를 해 준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떻게 보면 사회의 편견을 깨고 하나의 직업인이 되셨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안마를 통해 풀어 주는 능력이 크게 와닿았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안마라고 하면 퇴폐업소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조금은 변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조산사이다. 가장 생소하게 와닿았던 직업이었는데 부끄럽게도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분만실 간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출산 과정에서 필요한 업무를 디테일하게 진행하는 직종이었다. 흔히 병원에서 자연분만이 아닌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부분도 꽤 흥미로웠다. 단순하게 출산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모의 감정을 읽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준다거나 상황에 맞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에 등장하는 직업인들은 베테랑이라는 단어에 부끄럽다고 말하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크게 와닿았다. 그 자체가 베테랑이 아닐까. 누군가는 이 직종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읽는 내내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또 존경스러웠다.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인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이 책 덕분에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직업인으로서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