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모토 산포는 내일이 좋아 무기모토 산포 시리즈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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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산포와 함께 생활하는 인간도 없고 동물도 없다. / p.9

이 책은 스미노 요루라는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제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작가라고 들었다. 특히, 소설 원작의 영화는 꽤 오랜 시간동안 회자가 되었는데 아직 그 작품조차도 읽어 보지 못했다. 궁금하던 찰나에 다른 작품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제목부터가 직관적이어서 흥미로웠던 작품이었다. 이번 신작도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보니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산포라는 인물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기보다는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직장인이다. 회사에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여느 직장인들처럼 알람을 끄고 잠에 다시 빠져들기도 하다. 회사에서 영원히 막내로 살아가고 싶지만 중국인 신입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 자리마저 뺏기는 상황이 온다. 순진무구하게 다른 이의 꼬임에 낚여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취향에 맞는 문체와 이야기가 아니어서 책장을 넘기자마자 당황스러웠던 작품이다. 일본 작가 특유의 발랄함이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지점이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전작을 읽었을 때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평을 남긴 적이 있다. 그 주인공이 커서 사회인이 된다면 산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부터 많은 것이 다르지만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가볍게 읽기에는 좋았다.

초반에는 조금 의문을 가지고 읽었는데 점점 읽을수록 들었던 생각은 산포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솔직히 '저렇게 생각없이 살아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게 말하면 순수함, 나쁘게 말하면 순진함의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실수하고 난 이후의 행동을 읽고 나면 다른 세계에서 오는 듯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실수 이후에는 두려움, 자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약간 결이 다른 인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참 부러웠다. 이런 마인드라면 직장인으로서도 행복할 것 같다.

또한, 산포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 부러웠다. 잠을 자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는 것,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것 등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하고 있지만 좋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너무나 일상적인 부분에서 행복함을 느끼면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게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소한 무언가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산포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듯했다. 읽는 내내 스스로의 일상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 슬프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일상에서 좋아하는 행동을 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것들을 할 수 있는 내일이 있기에 괜찮다는 나름의 위로가 되었던 작품이었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가볍게 킬링타임 정도로만 기대했는데 일상에서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전해 주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일상 이야기의 매력을 새삼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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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30년째 - 휴일 없이 26만 2800시간 동안 영업 중
니시나 요시노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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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끊임없이 계속된다. / p.53

몇 년 전, 가장 친한 선배와 일본 여행을 3박 4일 일정으로 떠난 적이 있다. 다양한 풍경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지만 그 중 하나가 일본의 편의점 풍경이었다. 그동안 식사 도시락나 주전부리를 구매하기 위해 편의점을 많이 이용했었는데 한국 편의점과 또 달라서 많이 놀랐다. 오죽하면 외부 음식점보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더 많았는데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참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니시나 요시노라는 일본 작가의 에세이다.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는 표지의 책이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한 십 년 가까이 지난 시점인데 여전히 편의점은 가장 자주 가는 가게이기도 해서 친근함이 들었다. 혼자 사는 자취생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존재인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특히, 자주 언급하는 것처럼 직업인의 에세이를 읽는 것에 빠져 있다 보니 더욱 기대가 됐다.

저자는 삼십 년동안 편의점 주인으로서 살아온 인물이다. 교사 집안에서 저자도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의 권유로 퇴직금과 이것저것 자금을 모아 2FC형으로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게 작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십 년 단위의 계약이 끝났지만 편의점 본사에서 재계약을 권유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다. 책은 편의점의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다.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읽혔다. 사실 사업에 소질이 없는 편이어서 전문 용어에 대해 무지한데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서 어느 한 문장도 이해를 못한 부분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면 일본에서 편의점 운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었다. 편의점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 내부 수익 구조를 배울 일이 없을 텐데 일본의 한 체인점의 한정이기는 하지만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진상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지만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시간 단위로 쪼개서 부부와 아르바이트생 여러 명이 같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는데 지인의 부탁으로 그녀의 아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맞이하게 된 일화가 기억에 남았다. 그 아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밖을 나간 적이 없었던 인물이었는데 초반에는 혼자 할 일을 하지 못해 뒤에서 받쳐 주는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업무를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 일을 계기로 아르바이트를 성실하게 수행했고, 다른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 사람의 인건비를 더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다.

그밖에도 학생들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는 편이기도 했는데 그 지점들이 대단하게 와닿았다. 보통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익을 위해 숙련된 일꾼을 원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했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참된 어른을 보는 듯했다. 고용주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경력직만 원하면 신입들은 어디에서 경력을 쌓나.'라는 의문을 가지고 살았던 게 참 부끄러웠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사회 경험치를 쌓아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갈 때나 부점장 정직원으로 승진한 한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로서 참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편의점 이용인으로서만 보았던 것과 다르게 참 다사다난한 편의점 업주의 운영 일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신선했고, 또 재미있었다. 거기에 보통 전문 용어나 어려운 낱말에만 주석이 달리기 마련인데 이 책에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마치 주석처럼 하나하나 달려 있어 그것 또한 너무 좋았다. 읽는 내내 '아, 한 직장을 삼십 년 다니는 것도 멋진데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삼십 년을 주인으로 지내는 내공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에피소드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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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김민경 외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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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 p.12

이 책은 김민경 작가님, 김호야 작가님, 이리예 작가님, 임규리 작가님, 김규림 작가님의 작품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작년에 같은 이름의 수상작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사적인 취미와 맞는 작품 하나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수상작품집은 눈에 보이면 바로 읽는 편이다 보니 올해도 발간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읽게 되었다. 늘 좋은 작품들을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많은 기대가 되었다.

이번 수상작품집에는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다. 마법소녀, 좀비, 도박, 인형, AI 등 다양한 화자가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음울하고 상황이 어려운 주인공들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보여졌다. 오히려 그 지점이 평범한 일상적인 인물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기에 결말은 각자 분위기를 다르게 자아낸다는 점과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들의 매력이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얇은 페이지 수여서 금방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국수템의 정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어려운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좀비 이야기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무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퇴근 이후 한 시간 반 정도에 모든 작품을 완독했다. 요즈음 책과 권태기를 맞이하는 중이었는데 그것을 날려버릴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들이었다.

사실 모든 작품이 다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 중에서도 어렵게 하나를 뽑자면 김규림 작가님의 <문을 나서며, 이단에게>라는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는 어머니이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다. 딸은 어머니를 자꾸 밖으로 끌어내려는 편이었고, 어머니는 밖에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나마 직업이 글을 쓰는 스토리메이커라는 점에서 그나마 나을 뿐이었다. 딸은 집을 나갔다가 율이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으나, 그 과정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다시 나간다. 어머니가 이단이라는 편집자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다.

유일하게 장편소설로 만났던 작가님의 작품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 작품은 AI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AI가 사랑하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느꼈다. 안드로이드와 친구가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결국에는 그 안드로이드를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이 믿었던 누군가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독자인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AI나 안드로이드는 어디까지나 기계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어느 하나 버릴 스토리가 없었던 수상작품집이었다. 책의 마무리에 두 작가님의 심사평이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서 공감이 되기는 했지만 나에게만큼은 참 만족스러웠던 작품들이었다. 오히려 길게 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좀비, 호러 등 불호 스타일의 소재나 장르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런 개인적인 취향까지 잊을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는데 이렇게까지 모든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집이 있었나 싶었던, 그만큼 만족스러웠던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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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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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상상이,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별별 상상들이 갈수록 성가시게 차연을 괴롭히고 있다. / p.8

이 책은 한차연 작가님과 김철웅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사실 그동안 로맨스 작품들을 종종 읽기는 했었지만 흔히 말하는 달달함의 끝이 오래 남은 적이 없었는데 요즈음 즐겨 보는 드라마가 로맨스의 끝을 달리고 있기에 부쩍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던 중 미스터리와 로맨스의 조합인 이 작품을 찾아 읽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로맨스 이야기는 중간 정도는 성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기대를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차연이라는 남자와 은원이라는 이름의 여자이다. 둘은 여섯 살 차이의 연상연하이자 600 일 정도 만난 커플이기도 하다. 차연이 연락이 되지 않는 은원을 찾아 나서다 은원의 집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회사로도 찾아갔지만 지지난주부터 연가를 사용해 자리에 없다고 했다. 그 시기는 차연과 은원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떠난 기점부터인데 그 어느 누구도 은원의 소재를 모른다.

경찰마저도 비협조적으로 실종을 대응하고 있던 중 차연에게 은원의 고모와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온다. 그동안 은원이 가지고 있었던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후 차연은 은원이 가지고 있는 비밀 그리고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차연의 시점으로부터 진행되며, 은원과의 첫만남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SF 장르로 연결되면서 흘러간다.

SF 장르가 결합되기는 하지만 어려운 난이도의 과학적 지식이 아닌 살짝 사이보그 비슷한 느낌이 풍기는 작품이어서 오히려 읽기 수월했다. 거기에 갑자기 사랑하는 연인이 사라졌다는 소재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에 나름 현실감도 가지고 있었다. 보통 수준의 페이지 수를 가진 작품이었음에도 두 시간 정도 완독할 정도로 금방 전반적으로 술술 읽혀졌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꽤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600 일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은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는 것이 하나도 많지 않았다는 게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나 다른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연인이라고 하면 많은 것을 알아가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처음 만난 커플처럼 두 사람은 가까운 듯 먼 사이처럼 보였다. 차연의 입장에서 서술이 되었기에 은원을 향한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과연 은원도 차연처럼 상대를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생각했던 로맨스 장르와 달랐다. 아예 이별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 또는 보통 연인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몰입하면서 읽었겠지만 연애 서사로만 본다면 얼음이 녹은 프라푸치노를 마신 듯한 기분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오히려 관계의 서사나 은원 개인의 사건보다는 각자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불안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차연으로부터 플랫폼 노동과 두 사람의 이름을 읽자마자 착각했었던 남녀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편견이 더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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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알 환상하는 여자들 1
테스 건티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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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그녀에게 달려와 소리를 지른다. / p.11

이 책은 테스 건티라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전미 도서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눈에 띄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비평가협회에서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고, 다른 매체에서 당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작품성 하나만큼은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미소설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인정받는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기대가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블랜딘이라는 소녀다. 어느 날,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토끼장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갇힌 것부터가 낯설게 느껴지는데 가톨릭 종교를 가진, 신비주의자라고 칭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체 이탈이라는 것 역시도 겪는다.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망해가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상황 등이 다채롭게 펼친다.

걱정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더디게 읽혀질 줄은 몰랐다. 문체부터가 등장 인물이 경험한 것처럼 낯설고 환상적으로 다가왔고, 전체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영미소설에 SF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그만큼 책의 난이도는 꽤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 작품은 다르구나.'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파편처럼 흘러간다는 느낌을 드는 작품이었다. 내용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독자로서 받아들이기에는 기억의 파편, 또는 장면의 파편처럼 와닿았다. 그렇다 보니 사진의 한 컷들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상상이 되기도 했는데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 지점도 조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블랜딘이 낯설고도 신비한 상황이 독자로 하여금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상황과 스토리를 이해하느라 블랜딘이 경험했던 일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까지 크게 와닿지는 못했다. 물론, 현실감이 떨어지다 보니 이 부분이 개인적인 약점과 맞물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앨리스가 경험했던 이상한 나라처럼 나 역시도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져 블랜딘을 관찰자로 보는 듯했다. 이렇게 느꼈던 지극히 사적인 감상과 감정은 흥미로우면서도 신기했다.

이 작품을 덮고 난 뒤, 얼마나 이해했는지 묻는다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내놓을 것 같다. 그만큼 완독에 확신이 없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까지 자신없었다면 중간에 덮을 법도 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읽었던 이야기들과 다르게 흥미롭고 신선했던 것은 분명하다. 어느 정도 독서가로서의 경험치가 올라온다면 나중에 꼭 다시 이해하고 싶은, 나름의 도전 정신이 생겼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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