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4월
평점 :

화석을 발견할 때마다 그 번개가 남긴 메아리를 느낀다. / p.10
신께서 나라는 존재를 만드셨다면 아마 예술적인 감각은 깜빡 잊고 안 넣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미적 감각이라고는 제로에 수렴했다. 아마 과거 7살의 나와 현재 나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일관되었고, 지금도 그림은 가장 자신이 없는 분야이자 관심조차도 없다. 그렇다 보니 전시회나 미술관은 크게 흥미가 없는 편이다.
일자무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더라도 익숙한 작품들은 있다.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 작품을 매체에서 많이 보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화가를 알고 있다. 물론, 다빈치는 다른 학문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에 그쪽이 더 익숙하기는 하다. 더 익숙한 작품이 있다면 화려한 이목구비의 여성이 귀걸이를 하고 있는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작품 역시도 사진으로 많이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장편소설이다. 사실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조금 웃겼다. 그림 작품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화가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출판사 소개를 대충 훑어 보고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실제로 그림의 이름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고, 작가의 소설 작품은 '진주 귀고리 소녀'로 약간 다른 제목이었는데 착각하고 읽게 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메리 애닝이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고생물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룡이라는 생물의 화석을 발견했고, 이십 대에 공룡의 한 종류인 플레시오사우루스의 골격을 발견한 인물이다. 이후로도 다른 공룡들의 흔적을 찾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화석에 매력을 느꼈다. 전체적인 내용은 메리가 고생물학자로서 밟아왔던 일대기, 그리고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금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미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애로사항을 하나 뽑자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름들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이름보다는 발견하는 생물체들에 대한 이름이 익숙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화석이라는 주제에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더욱 낯설게 다가왔던 것 같다. 거기에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 지점 또한 책장을 더디게 넘어가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읽기 힘들었지만 재미있어서 끝까지 완독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흥미로웠다. 첫 번째는 실제 인물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메리 애닝이 고생물학자로 활동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성이 확 느껴졌다. 물론, 소설로 다루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일화가 과장되었거나 없는 사건들이 발생했을 수는 있겠지만 메리 애닝의 일대기가 하나의 뼈대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지점이 너무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마치 메리의 주변인이 된 듯한 생동감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던 작품이었음에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었다. 고생물학자는 지금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낯선 직업임은 분명해 보인다. 어렸을 때 공룡 화석을 교과서에서 보고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주변을 보더라도 고생물학자는 접하기 어렵다. 원래 일부의 직업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배척되는 경우가 많은데 메리 애닝 역시도 천한 신분과 여성, 어린 나이 등의 이유로 그 능력이 평가절하되었다. 화석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어려움이 너무나 크게 와닿았다. 아마 엘리자베스와의 연대가 아니었더라면 그마저도 어렵지 않았을까.
몰입도 하나는 강렬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소설이지만 일대기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메리의 일대기를 기록한 에세이로 착각이 들었다. 고생물학, 메리, 화석 등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고, 관심조차도 없었던 주제들이 모여 이렇게까지 큰 인상을 주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아마 엘리자베스나 메리처럼 화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면 더욱 풍부한 감상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부분이 약간 아쉬웠던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