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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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어요. / p.162


이 책은 연쇄살인범과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심리스릴러 소설이다. 권일용 교수님이나 박지선 교수님께 내적 친밀감을 느낄 정도로 프로파일링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즐겨서 본다. 범죄심리학자의 두뇌 싸움이라는 게 내 시선을 끌었고, 아직도 내 기억에 남은 그 영화를 보았을 때의 생각과 감정을 활자를 통해 다시 느끼고 싶어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로버트 헌터는 LA 경찰서에 근무하는 형사이다. 큰 사건이 해결된 후 하와이로 떠나는 날에 FBI에서 그를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우연한 교통사고로 밝혀진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로버트와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계획을 접고 FBI의 요구에 따라 용의자를 만나러 왔는데, 그 용의자가 대학교에서 같은 기숙사를 사용하던 동료였던 것이다.


동료는 리암 쇼라는 이름으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이는 곧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난다. 그의 실제 이름은 루시엔 폴터. 그는 로버트 헌터와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은 범인이 아니며, 범인을 알고 있으니 자신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한다. 로버트 헌터는 루시엔 폴터를 믿었기에 그의 혐의를 풀어 주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루시엔 폴터가 만든 덫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연쇄살인범인 루시엔 폴터와 경찰관 로버트 헌터의 심리 게임이 펼쳐진다.


보통 범죄자라면 두려움과 자책감 또는 뻔뻔한 무죄 주장을 했을 터인데, 영화나 소설 등 매체에서 표현하는 연쇄살인범의 모습은 경찰과 기싸움을 통해 모종의 거래를 하고자 한다. 이는 꼭 허구의 사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예전에 권일용 교수님께서 프로파일링 면담을 하셨을 때 연쇄살인범이 물을 떠오라고 시켰다는 말을 프로그램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그들은 심리전에 능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오는 연쇄살인범 루시엔 폴터는 그러한 심리전을 능가했다. 아무래도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수재이자 범죄심리학을 통달한 인재였다. 거기에 형사인 로버트 헌터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사람이므로 보통 연쇄살인범이 아니었다. 루시엔 폴터는 로버트 헌터의 거짓말을 바로 구분했지만, 로버트 헌터 역시도 루시엔 폴터의 작은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창과 방패의 심리 대결이라고 할까.


그들의 쫓고 쫓기는 심리전은 보는 내가 다 긴장하게 만들었다. 루시엔 폴터는 시종일관 FBI 요원이자 로버트 헌터의 동료인 코트니 테일러를 무시하기도 하고, 심리전에서 우위에 점하고자 로버트 헌터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질문해 그를 심리적으로 무너트리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감정에 앞서 욕을 던지는 코트니 테일러와 다르게 일관성 있고 차분하게 밀고 당기면서 루시엔 폴터를 조종했다.


이 소설에서 루시엔 폴터에게는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내용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고통받을 때의 표정에서의 쾌감뿐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는데, 이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이어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어찌 보면 사람을 죽여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자 현실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유다. 사실 읽으면서 그의 영웅 심리가 그를 연쇄살인을 저지른 괴물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그의 살인 동기와 주장도 자신의 살인 중독과 죄를 포장하기 위한 비겁한 합리화로 들리기는 했다. 그의 계획으로 진행했던 그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게 나름 통쾌한 결말이었다.


읽으면서 루시엔 폴터의 잔혹한 범죄 현장이 사실적이면서도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잔인함이 묘사된 매체나 문학을 즐겨 보지 않는 나의 스타일로 느낀 감정이었다. 아마 범죄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나름 흥미로운 부분이 되지 않을까. 500 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어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으나, 범죄심리학 특유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만족스러웠다. 자강두천 두 범죄심리학자의 머리 싸움을 통해 셔터 아일랜드에서 느꼈던 쾌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소설이었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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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부크크오리지널 3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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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은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네. / p.343

수능이 끝난 이후 당시 친한 친구가 추리 소설을 하나 주었다. 그때도 책을 많이 읽기는 했었으나, 추리 소설은 불호에 가까운 장르 중 하나였다. 책은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에서 보자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었기에 마음 졸이면서 보는 추리나 공포 장르는 딱 질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준 추리 소설 하나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이 책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무경 작가님의 추리 소설이다. 간간히 추리 소설을 읽기는 했었으나, 한국 작가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이었다. 의도적으로 골라서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삼십 넘어서 처음으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요즈음 소소하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추리 소설 하나가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이 책의 표지가 가장 눈에 들어왔었고, 개화기 시대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이라는 설정에 큰 흥미가 느껴져서 읽게 되었다.

에드가 오이자 오덕문은 모던 자체를 동경하는 남자로, 에드가 엘런 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왔다. 그는 내지에서 향수병을 못 이기고 경성에 오게 되었다. 경성에서 은일당이라는 하숙집에서 머물게 되었고, 하루는 친한 친구 두 명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잠들어 다음날 일어나보니 자신이 아끼는 페도라가 사라졌다. 페도라의 행방을 쫓기 위해 갔던 곳에서 친구의 사체를 목격하였고, 그는 용의자로 몰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가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는데, 유치장에 있던 시간에 새로운 도끼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용의선상에서 제외가 되었다. 당연히 다른 친구가 용의자로 몰리게 될 것을 걱정하였다. 친구는 용의자가 아닐 것을 확신하고, 증거를 모으기 위해 그가 동경하는 셜록홈즈처럼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를 나타나는 단어들이나 내용 중에 윤심덕의 사의 찬미 가사가 인용되는 등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개화기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또한,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이 다소 언밸런스한 모습들이 또 하나의 재미를 주었다. 양복의 전체를 갖추어야만 모던 보이로서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에드가 오의 모습들과 다르게 그의 모습은 엉성했으며, 탐정 기술들은 너무나 허술했다. 오히려 다른 인물들의 추리에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내용과 별개로 시대에서 등장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초점을 가지고 보기도 했다.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던 보이 에드가 오와 신분으로 갈등의 불씨를 만드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현대 사회의 계급이 떠올랐다. 개화기 당시에는 명목상 신분 계급이 폐지되었으나, 국민들의 인식까지는 바꾸지 못했던 것 같다. 백정의 자식은 배울 가치도 없는 천민으로서 무시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재산 보유 정도가 하나의 계급이 된 현대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는 시각들도 존재하기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긴장하면서 읽는 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경험한 이 감정들이 너무 좋았다. 추리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이 맛에 독자들이 추리 소설을 찾게 되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지만, 사건을 파헤치는 에드가 오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면서 몰입했더니 생각보다 순식간에 다 읽었다. 추리 소설의 초보 레벨 독자이기에 결말을 쉽게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마무리가 되어서 더욱 인상 깊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손바닥의 땀을 닦느라 고생도 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게 독자에게는 어떤 감정을 줄지 모르겠으나, 시간을 초월해 경성의 한 살인 사건으로 이끈 이 소설이 나에게는 색다른 독서의 재미를 주었다.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북크크 오리지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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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휘명 지음 / 히읏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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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심이 아닌 곳에서도 도심에 있었다. / p.29


이 책은 오휘명 작가님의 로맨스 소설이자 안성하와 장효빈의 연애와 이별 이야기다. 여기에서는 성의 가장 앞 글자를 따서 A와 Z로 불린다. A는 어떻게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인 스타일의 여자이며, Z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조용한 장소를 좋아하는 정적인 스타일의 남자다. 카페에서 조금 황당한 질문과 대답을 첫 만남으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둘은 서로의 삶에 관여해서 깊숙이 파고들었다. A가 뜬금없이 보고 싶다고 하면 Z는 늘 기다리고 있었고, Z는 A에게 깊숙이 보고 싶다는 말로 마음을 표현했다. 둘은 그렇게 사랑했다.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세상에 서로만 존재할 것처럼 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러다 이별을 맞이했다. 명분상으로는 Z가 미국으로 1년간 파견을 가는 것이었지만, Z는 A에게 상처를 주면서 이별을 통보했다.


그들의 사랑 방식들이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둘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키우는 A와 Z 커플이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편지 서신보다는 문자메시지가 더욱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목소리로는 전달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이야기들이 텍스트로는 너무나 로맨틱하게 전달이 되어 있어서 보면서도 대리만족을 느꼈다. A가 Z에게 로맨티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작년 10 월 12 일 오후 10 시 14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도심의 카페에서의 A와 도심의 공원에서의 Z의 이야기. Z는 도심에 대해 재정의를 내렸고, 명언과 같은 한마디를 남긴다. A의 사진을 보면서 그녀가 보고 싶어 메시지를 A의 메시지는 문학이 되고, A의 옆모습은 미술이 되고, A와의 전화에서 들려오는 것은 음악이 된다는 내용. 감탄을 자아내는 구절이다. 단순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과 메시지, 목소리를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 아마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A보다는 Z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에 빠지면 새벽에 문자를 보내는 Z처럼 나 역시도 갑자기 당시 만나던 사람 생각에 새벽에 깨서 장문의 구구절절 감성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동으로 바꿔놓고 잤던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라고 해도 안 할 행동들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들은 보통의 연인들처럼 A와 Z도 사소한 오해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감정도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는 감정의 신호탄으로 생각하는 것도 좋았다. 상처를 안 낸다면 다행이겠지만, 상처를 냈더라도 서로가 있으니 괜찮다는 말. 나에게는 다소 뜬구름 잡는 식의 말처럼 느껴졌지만,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성숙하면서도 이상적인 관계로 느껴졌다. AZ에서는 실리지 않은 이후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어서 그것조차도 만족스러웠다. 성장한 그들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했다. 안 본 사이에 닮아 있는듯한 느낌도 받았다.


AZ라는 커플은 과거 연애를 하던 시간으로 나를 가져다주었다. 이불을 차고 싶을 정도로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자아성찰의 시간이기는 했으나, 오래간만에 연애 감정의 세포를 되살릴 수 있는, 누구라도 사랑을 했었다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조금 불완전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그만큼 그들은 성숙한 어른의 연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와 같이 읽으면서 추억 하나 정도 쌓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히읏'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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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목표는 다정해지기입니다 - 나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행복 루틴 78
이치다 노리코 지음, 윤은혜 옮김 / 언폴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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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어. / p.118

이 책은 일본의 프리랜서 에세이스트 이치다 노리코 작가님의 일기이다. 올해의 목표가 다정해지기,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된 책이다.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루틴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과연 저자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에서 어떻게 다정함을 보일 수 있을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등 그동안 내가 원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과 그걸로 느끼는 감정들, 생각들을 담았고, 감사 또는 반성, 다짐으로 마무리가 된다. 직업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았다. 지나가면 보였을 아주머니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했다.

일기를 보면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3 월 18 일, 6 월 23 일, 8 월 13 일의 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3 월 18 일은 '낯선 환경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바꿉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북극권과 주변 지역인 극북의 여행기를 담은 <극북으로> 라는 책을 읽고 느낌을 적었다. 북극이라는 세계를 카누를 들고 떠난 여행가를 보면서 부러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안, 시행착오, 두려움 같은 것이 생기더라도 어떤 환경에 스스로를 내던진다면 미지의 세계가 열린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였는데, 그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워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는데, 하기 전의 불안보다는 한 후의 자유를 즐기라는 점에서 나에게는 새로운 문으로 인도하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6 월 23 일은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을 찾습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브리콜라주> 라는 단어를 통해 생각의 틀을 깨는 내용을 담고 있다. 브리콜라주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에 있는 도구와 재료를 활용해 이를 해결한다는 의미이다. 발효가 재미있는 이유는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답이 있기 때문이라는 빵집 주인의 말을 듣고 일상 속에서 브리콜라주의 방식으로 일상을 살아보는 것을 시도하자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나 역시도 정답 하나만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엔지니어링의 방식에 맞게 살아온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엔지니어링의 방식이 안정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실패가 적기는 하겠지만, 항상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서, 정답만 쫓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브리콜라주 방식이 아닐까.

8 월 13 일은 '어떤 작은 일에도 진실되게 행동합니다.' 라는 주제의 일기이다. 저자의 거짓말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중복으로 의뢰를 한 상황에서 하나는 거절해야 되나, 의뢰한 사람에게 일정이 연기되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사실대로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일을 보낸다. 저자는 사과했지만,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큰 죄책감과 후회를 한다. 이후 어떤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면서 이런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된다. 과거에 저자와 같은 실수를 했던 적이 떠올라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작은 거짓말이 큰 소용돌이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한 이후로 미련할 정도로 솔직하게 보고하는 스타일이 되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조로움이나 익숙함이라고 느껴질 수 있으나, 나에게는 섬세함과 관심으로 보였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들로 느껴졌을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고, 별 대수롭지 않은 실패에서도 끈기를 보이고, 이를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 것. 다정함이 아니었다면 보이지도 않았을 평범한 일상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음식이 나오는 일기 하단에 나오는 음식 레시피와 독자를 배려하는 사진 설명 등에서 저자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사실 50 대의 저자이기 때문에 30 대를 살고 있는 내가 겪지 못한 일들도 있었다. 50 대의 내가 읽었다면 더 큰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단 하나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50 대의 내 모습이었다. 마치 저자처럼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여유와 다정함을 무기로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물론, 저자처럼 작은 변화에서의 만족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가정이 깔렸을 때 이야기이다. 그 첫걸음으로 올해 목표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으로 보기'로 새롭게 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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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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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레지스탕스. / p.116

이 책은 아저씨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소설이다. 여러 기사를 통해 일본이 한국보다 여성에 대한 인권이 낮다고 알고 있다. 일본 페미니스트 작가의 소설이라는 게 첫 번째로 시선이 갔고, 일본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들이 사라진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흥미롭게 느껴져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게이코는 남자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나, 역으로 이상한 소문이 퍼져 억울하게 퇴사를 하게 된 인물이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한 달동안 캐나다에서 머문다. 캐나다에는 동성과 동거하는 친구 커플이 살고 있는데, 거기에서 친구가 일본에 살았을 때와 다르게 목소리가 커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친구로 변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들이 억압되어 있는 일본 사회 구조를 바라보게 되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세상에 저항하는 콘셉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의 XX에게 빠지게 된다. XX는 다른 여자 아이돌 그룹들과 다르게 귀여움이나, 여성스러움, 섹시함 등을 어필하지 않는다. 또한, 무대에서도 다 잡아먹을 것만 같은 눈빛과 무대 매너로 그룹의 센터 자리를 맡고 있다. 게이코는 이러한 XX를 좋아하지만, 최애가 속한 그룹 역시도 남자 프로듀서의 작품으로서 아저씨의 욕구나 니즈에 맞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약간의 흔들림을 가지고 있었으나, 보통 아이돌 그룹에서 볼 수 없기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든다. 그러면서 아저씨들의 판타지가 만연한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가장 크게 게이코가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부분들이 공감이 되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보다는 여자 아이돌 그룹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감정 이입이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중 짧은 치마와 속바지를 보이며 춤추고 노래하는 수많은 여자 아이돌을 보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면서 XX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와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게이코가 좋아하는 콘셉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무대를 보면서 힘들어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음악 프로그램에서 얇고도 짧은 의상을 걱정스럽게 시청했던 과거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남자 아이돌 그룹은 잘 차려진 실장님 콘셉트의 수트거나 장난꾸러기 콘셉트의 캐주얼 의상을 주로 입는 반면, 여자 아이돌 그룹은 무릎 이하로 내려간 옷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서 이러한 부분이 팬으로서 마음이 아팠다. 격한 안무에 그렇지 못한 의상이 늘 마음에 걸렸다.

또한, 가장 뒷통수를 맞은 부분으로는 교복에 대한 내용이었다. 게이코는 단순하게 여자 아이돌들의 스쿨룩 콘셉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여학생들에게 범위로 확장시켰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머리에서는 과거에서부터 스쿨룩을 입었던 많은 여자 아이돌의 얼굴들이 스쳤다. 심지어 매체에 나오는 스쿨룩은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일률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 형태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떠올렸다. 그녀의 말처럼 교복을 입는 평범한 여학생들이 매체에 나오는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서 소비가 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였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는 것도, 여자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가 귀여움으로 제한적인 것도, 일본과 한국의 문화 자체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전부 통용이 되지는 않는다. 게이코가 반했던 세상을 비판하는 가사를 가진 센 콘셉트가 한국에서는 특정 소속사의 하나의 장르일 정도로 너무 익숙한 일이다. 그래서 소설에서도 한국 여자 아이돌 그룹을 일본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와 일본 여자 아이돌 그룹과 비교를 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점은 한국인으로서 흥미롭게 보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일본 소설에서 보였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으며,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쳐두고 보더라도 페미니즘이 하나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고민할 내용이 많았다. 그러한 맥락으로 중간마다 픽션이라는 것을 자꾸 잊게 되었다. 소설이기는 하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 분야의 서적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무겁게 느껴졌다. 교복과 여자 아이돌, 출산과 양육 등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어쩌면 한국에서도 당연하게 느껴지고 있을 시선들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네이버 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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