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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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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동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 p.187
이 책은 미국의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이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으며, 장애인의 인식 개선과 인권에 앞장서고 있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시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복지관을 놀이터처럼 드나들며 봉사활동을 했었고,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어쩌면 이 책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디스 휴먼은 독일에서 온 이민자 부부인 베르너 휴먼과 일제 휴먼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일제 휴먼은 딸 주디스 휴먼을 위해 타협 없이 세상과 싸웠다. 덕분에 주디스 휴먼은 장애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바꾸고자 정당한 방법으로, 민주적으로 싸웠던 인물이 되었다. 처음에 주디스 휴먼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했으나, 화재 위험 요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학교에서도 입학을 거부당해 버스를 타고 먼 지역의 공립학교를 다녔다. 심지어 그 공립학교에서도 비장애학생들이 아닌 장애학생들과 특수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학교에 입학해 주변에서 장래희망을 숨기라는 말을 들었다. 재활복지국에서 장래희망을 그대로 말한다면 주디스 휴먼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숨긴 꿈조차도 재활복지국에서는 다른 꿈을 권하며, 돌려서 회유했다. 주디스휴먼은 교사가 되기 위해 교원 자격증을 준비했으나,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원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에도 장애 시민권 단체 설립, 자립생활센터와 사원 의원실 입법 보자관에서의 근무, 특수교육 및 재활서비스국 차관보 등을 지내며 장애인 인권 행정가로서도 근무했다. 그리고 미국 재활법 504 조 서명을 위해 정부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한 인물이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기도 했었고, 그 안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주디스 휴먼이 처음으로 장애인으로서 차별을 인식하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친구와 사탕을 사러 가던 중 어떤 아이가 주디스 휴먼에게 아프냐고 물었다. 그때 휴먼은 인생 모든 것의 의미가 뒤틀어졌다고 서술했다. 사실 장애인이 곧 아픈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마음이 아려왔다.
고등학교 졸업했을 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단상에 못 오르게 했던 교장, 건강검진에서 말도 안 되는 문항을 확인하려는 의사, 비행기에서 안전을 이유로 내리라고 했던 승무원. 그동안 휴먼이 겪은 어이없는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비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겪은 적이 없는 일들을 마치 그들에게는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익히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졌던 것은 장애인에 대한 연민이었다. 특히, 비행기에서 위급 상황 시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탑승할 수 있다는 승무원의 말에 비장애인 역시도 도움이 필요할 상황일 것이라고 대답하는 휴먼의 대답에서 장애인이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장애인들의 욕구와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장애인으로서 제한된 삶을 살면서 휴먼이 느끼는 현실의 벽 또한 생각할 부분이었다. 비장애인에게는 고민의 가치조차도 없는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과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법이 그랬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이를 고민하는 모습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았음에도 움츠러드는 모습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장애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지만, 사회에 속하는 비장애인들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법까지 나아가기에는 아직 더딘 편이다.
이와 반대로 농성으로 바깥에 나갈 수 없을 때 유리문 너머로 청각장애인들과 수어로 소통하는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참 아름다웠다. 유리라는 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된다는 자체가 장애인들이 현실의 벽을 넘어 소통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주디스 휴먼이 재활복지국에서 장애인의 교육과 인권에 대해 바꾸어나갈 때,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작게나마 변화로 이루어질 때 희망이 보이기도 했었다. 물론, 이는 휴먼이 살고 있는 미국의 당시 상황이었겠지만 말이다.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으로서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들과 차별금지법의 본질은 비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기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관점에 대한 부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존중과 경청의 자세, 옳지 못한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옳은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끈기와 노력 등 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 주디스 휴먼 그 자체로도 나에게는 큰 영감을 주었다.
전자책으로 밑줄과 나의 생각들을 적어가면서 읽었고, 종이책으로 재독을 하면서 다시 마음에 되새겼다. 과연 나는 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지금까지 노력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중 어느 하나에 속하는 인간이 아닌 그들과 이 사회를 동행할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살아갈 길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
<출판사 '사계절'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