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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
류팅 지음, 동덕한중문화번역학회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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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뭔가를 잊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 p.127
이 소설은 중국의 류팅 작가님의 열두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예전에 비해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이다. 다양한 나라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소설과 또 다른 매력을 찾는 중인데, 중국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거기다 중국의 젊은 작가의 소설이라고 하니 중국 청년들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녹아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인 뒤바뀐 영혼과 허구의 사랑, 귀라는 단편 소설이 가장 인상 깊었다. <뒤바뀐 영혼>의 주인공인 야거는 학생일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유명한 시인이었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샤셩이라는 여자에게 반했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는 천재 시인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갈수록 그를 잊혀져 갔다. 시로서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야거는 화장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나아지지 않았던 어느 날, 신이 그에게 제안을 한다. 야거는 시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의 영혼과 바꾸어 준다는 제안. 생활이 힘들었던 야거는 시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영혼을 바꾸기로 한다.
영혼을 바꾸겠다는 야거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야거가 처한 상황이 참 안타깝다.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곧 부를 축적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마 내가 야거의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당장 식구를 살려야 했기에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에서의 야거의 허탈감이 이해가 되면서도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상력 한 스푼이 들어간 내용이기는 했으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소재이기에 읽는 내내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허구의 사랑>은 잉슈의 사랑 이야기다. 잉슈는 '도시와 사랑 그리고 죽음'이라는 소설의 남자 주인공으로, 소설 속에서 샤오셔우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이는 작가인 리런이 우연히 본 샤오셔우라는 여자를 보고 반해 집필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리런은 실제로 샤오셔우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소설을 이상한 방식으로 전개한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잉슈의 독백 형식으로 내용이 흘러간다.
불과 몇 년 전에 고등학교 배경으로 만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의식을 가진다는 소재의 드라마가 방영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한 내용이 떠올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와 결말이기는 하나,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을 가진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다. 아마 이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던 이유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감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전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작가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소설 속의 잉슈와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귀>의 주인공인 라오천은 개발 사업에 저항하다 전신마비가 되었고, 유일하게 청력만 남아 있다. 귀를 통해 세상의 소리를 듣는 남자의 이야기. 소설들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무서웠다. 당장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없고, 귀만 열렸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가장 먼저 생각했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들의 말과 태도,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라오천의 무력감이 가장 잘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아무래도 중국 문학을 처음 접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문체나 전개하는 방식이 생소했다. 특히, 직관적으로 말끔하게 닫혀진 것이 아닌 비틀어서 생각해야 이해가 가능한 결말이 익숙하지 않았다. 약간 수능생 시절로 돌아가 작가의 의도를 추측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열린 결말은 아니었으나, 씹고 음미해야 내용이 시사하는 바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운이 길었다.
열두 편의 단편이 하나같이 흥미로우면서도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제목처럼 기묘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기심과 신비감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을 정도였다. 무언가 나도 모르는 마법이 걸려 있는 기분. 꽤 두꺼운 양이기는 하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생소한 중국 문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름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