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의 다이어리
리처드 폴 에번스 지음, 이현숙 옮김 / 씨큐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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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여 내게 오라. / p.40


이 책은 제이콥이라는 남자와 레이첼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표지부터 추천 문구까지 전부 사랑을 향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로맨스 소설로 알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 중에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 있는데 전부 한국 소설이다. 해외 로맨스 소설에는 크게 흥미를 못 붙이는 편이어서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제이콥은 수천 명의 팬을 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런 그에게는 형의 죽음과 부모님의 이혼, 어머니의 학대라는 어두운 과거가 있다. 청소년기 어느 날에 어머니께서 그를 내쫓았고,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과거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해 주었던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로맨스 소설 집필과 꿈에 나오는 이름 모를 여인이었다. 특히, 이름 모를 여인은 늘 어린 제이콥을 안아주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그 여인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직원에게 보여준 첫 소설이 에이전트 사를 거쳐 출판되었으며, 큰 인기를 누려 이후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어느 날, 한 변호사로부터 어머니께서 2주 전에 돌아가셨고,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렇게 찾아간 집에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정신병 증세를 알게 되었고, 집을 치우기 위해 당분간 그 집에서 지내게 되면서 하나의 다이어리를 얻게 되고, 집에 살았던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찾아온 레이첼과 마주한다.

레이첼 역시도 엄격한 양부모님 밑에서 억압받으며 살아왔고, 현재는 자신을 억압하는 남자와 약혼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항상 친어머니를 찾고자 노력해왔는데, 남자 친구를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종교적 관념에 얽매여 그 환경을 놓지 못했다. 제이콥과 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정을 떠나면서 제이콥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제이콥 역시도 레이첼에게 이끌림을 얻는다.

처음에 집을 나간 이후 고향 근처에 가지도 않으며, 부모님과 연락을 끊고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제이콥이 회피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마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에 고향을 다시 밟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마 나였다면 슬픔보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살고 있던 곳으로 갔을 때 마주했을 형의 죽음과 어머니의 학대 등 온갖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마주할 때의 고통이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제이콥이 외부 업체에 맡겨 처리해도 될 문제를 혼자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을 정해야 되는 상황에서도 집을 스스로 정리하고자 했다. 거기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찾고자 했고, 일부 물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가지고 가기 위해 업체를 불렀다. 그런 면에서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의 상처들을 로맨스 소설 집필을 통해 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쓰기가 주는 순기능으로 치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제이콥을 통해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되었다.

레이첼은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보수적인 면을 가진 양부모님 밑에서 하고 싶은 것조차 눈치를 보거나 자신을 아끼지 않는 남자와 약혼을 하겠다는 것까지도 하나부터 열까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또한 세뇌이지 않을까. 종교적인 이유가 주는 죄악이라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입장이기에 더욱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매체에 나오는 종교적인 신념과 차별에 대한 가치들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가치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종교적인 면을 더 우위에 둘 수 있을까. 과연 종교가 사람이 가진 개인적 특성과 가치관을 무시할 정도의 우위에 있을까.

서론에 적었던 것처럼 로맨스 소설로 알고 읽었다. 전체적으로 표지부터 추천사, 출판사 소개까지 전부 사랑의 감정을 중요하게 강조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으면서 과거에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로부터 느꼈던 원망을 가진 제이콥과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레이첼이 서로를 만나 같이 여정을 떠나는 게 크게 보면 로맨스일지도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내용만 놓고 보면 성장 소설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누구나 아픔은 있다고 생각한다. 어르신들의 말씀에도 사연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는지에 따라 좋은 어른이 될 수도, 나쁜 어른이 될 수도 있다. 각자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으나, 단단한 내면과 틀을 깰 수 있는 용기를 무기로 이를 승화시켰다. 결국 서로의 아픔을 품을 수 있었으며, 사랑까지 쟁취하게 되었다. 결말까지 완벽한 소설이어서 보는 내내 흐뭇했다. 곧 영상화가 된다는데, 이 소설이 나에게 몽글한 마음과 교훈을 주었던 것처럼 영화는 나에게 어떤 종류의 색다른 감동으로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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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 파이퍼
네빌 슈트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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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은 적당히 즐겨야 이롭다. / p.224

역사 수업으로 세계 대전 등 지금까지 흘러온 많은 전쟁 이야기를 배우다 보니 참혹함이 와닿을 때가 없다. 우리의 아픈 역사만 보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 수업 인식은 하고 있으나, 조상들이 겪었던 당시 상황은 잘 알지 못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기에는 역사라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소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전쟁 이야기들을 읽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그 전쟁 한 가운데에 놓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난다. 물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극히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이렇게 알아간다는 것도 독서의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한 노인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소설 중에서 일제강점기 시대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소설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은 있었는데, 해외 소설로 세계 대전을 다룬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해외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다룰 수 있는 소재라고 해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기 전까지는 한국 소설만 읽었기 때문에 소설로서 세계 대전을 볼 일이 없었다. 노인이 들려주는 세계 대전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하워드라는 노인은 낚시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데, 딸은 미국에서 결혼해 거주하고 있었으며, 아들은 공군이었다. 그러던 중 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고, 영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당시 독일이 세계 대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는데, 자신이 가고자 하는 프랑스 지역까지는 독일군이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로 도피성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의 도시의 한 호텔에서 묵던 중 한 부부를 만난다. 그 부부에게는 자녀가 두 명 있었는데, 남편은 제네바 국제 연맹에서 근무하므로 스위스와 프랑스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며, 부인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는데, 독일군의 심상치않은 행동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고,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 부부가 아이를 하워드에게 맡기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범할수록 영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어려워지고, 가는 여정에서 만난 이들의 부탁과 길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지 못하는 하워드의 성격 탓에 그가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다섯 명의 아이와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읽으면서 세계 대전의 참혹함을 활자를 통해 알 수 있어 괴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잔인하게 묘사된 부분이 없기는 하나, 역사 교과서 몇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400 페이지 가까운 소설로 읽게 되니 알지 못했던 참혹한 현실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독일군의 침범으로 육로가 차단된다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영어가 아닌 불어를 사용하는 하워드와 아이들, 영국군은 배신자라면서 그들을 검열하는 독일군의 행동 등 세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피부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 다섯 명을 데리고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하워드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나름 노인의 연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래도 순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이들 자체가 통제가 어렵지 않은가. 그것도 국적과 사용 언어가 다른 다섯 명의 아이를 어떻게 다 케어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도 의문이었다. 이 또한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현실에 있다면 육아의 고수로 프로그램에 주구장창 나올 인물이었을 것이다.

탈출하는 과정이 온전히 하워드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과거 여행을 갔을 때 만난 인연들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도와주었던 니콜이라는 인물은 마음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하워드를 돕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도왔다. 니콜이 하워드와의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아물 수 있었던 부분도 인간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지 않았을까.

과연 내가 하워드였다면 길가에 돌 맞고 있는 아이와 연고도 없는 아이를 데리고 위험을 감당해가면서 여정을 떠날 수 있었을까. 좋은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기는 하나, 나의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위험과 목숨보다 길가에서 만난 아이들이 전쟁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선함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겠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쟁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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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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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인간의 변호사다. / p.39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간의 직업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화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직종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공감을 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이나 감정을 다루는 분야는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Her'을 보고 그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주변 사람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나는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 궁금증이 들었다. 전자의 경우는 터보의 노래 가사나 어느 연예인의 연애담처럼 사이버 공간과 펜팔을 통해 증명이 되었기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후자의 경우는 많이 충격이었다. 차라리 동물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전자처럼 이해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아홉 명의 작가의 SF 단편 소설집이다. SF 소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차별이나 문제 의식 등을 생각할 수 있어서 즐겨서 읽는 편인데,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과 다르게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SF 소설집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나에게 또 다른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대리인과 나와 올퓌,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 라는 세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인간의 대리인>은 무뇌아로 태어났으나, 투명한 뇌 기술을 이식받은 변호사인 ALP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ALP가 변호사가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인공지능 판사들의 판결로 변호사가 되었다. 겨우 변호사로 취업에 성공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임상실험 중 일어난 부작용에 대한 재판 건에서 부작용 피해자의 원고측 변호인으로서 참여한다.

대형 제약사의 편에 서는 인간과 피해자의 가족들 편에 서는 로봇이라는 구성 자체에 씁쓸함을 느꼈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게 본능이라고는 하나, 도덕과 윤리 기준에 맞지 않는 이익을 대변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현실에서도 거대 기업과 소수의 피해자들 간의 법정 다툼을 매체를 통해서 볼 때가 많은데, 그럴 때 느꼈던 감정이 딱 이러했던 것 같다. 거기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선한 인간성을 로봇에게서 느끼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가 추가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한 대답이었으며, 가장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이었다.

<나와 올퓌>는 할머니와 휴머노이드 올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할머니는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 손녀를 찾아 나서던 중 올퓌라는 이름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만난다. 당시 올퓌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할머니는 올퓌에게 차량의 연료를 주어 소생시킨다. 그렇게 둘은 손녀를 찾으러 여정을 떠난다. 서로를 알게 되고, 조금씩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들개의 습격으로 올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할머니는 서둘러 손녀의 지역으로 운전한다.

과연 로봇과 인간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SF 소설에서 가끔 등장하는 주제이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참 회의적으로 느껴지는 문제다. 인간이 로봇에게 애정을 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로봇이 인간에게 그만큼의 애정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와 올퓌는 여정을 떠나면서 서로에 대해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인간과 로봇이라는 설정만 없었다면 나의 눈물을 가지고 갈 감동적인 서사였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마 인간으로서의 오만한 편견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편견을 떠나 할머니와 올퓌의 우정은 참 아름다웠다.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는 도덕 3.4 버전의 정수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도덕 버전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정수는 새벽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으나, 도덕 4.0 이하의 직원을 해지 통보하라는 방침에 따라 사직을 당한다. 도덕을 업그레이트하기 위해 매장에 갔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포기하게 된다. 직장이 사라진 정수는 어떻게든 도덕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도덕을 자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내용을 보니 도덕을 버전으로 나눈다는 게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도덕이라는 게 학교 수업으로 배우기도 하고, 문화가 형성된 나라에서 통용된다는 점이 객관적이면서도 도덕의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애매모호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사람이 겉과 속이 일치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겉으로는 도덕적인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속으로는 누구보다 패악한 사람이기도 하므로 도덕을 과연 분류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어디까지나 허구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봤지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사실 읽으면서 인류애가 조금씩 소멸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과의 사건들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나, 인간들이 행하는 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대기업의 악한 부조리에 옹호하는 변호사들과 혼란한 세상에서 남을 해쳐 무언가를 편취하려는 사람들, 노조 협상에서 모두를 생각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전부가 사실이지는 않겠으나, 매체를 통해서 본 지금 현재 사회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편에 선 정의로운 로봇들과 휴머노이드들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서 좋았다. 과연 이러한 허구의 이야기들이 미래에 진짜가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때의 나는, 그 현재의 주인공인 나는 어떤 인물로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던져 주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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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피 유니버스 - 29인 여성 철학자들이 세상에 던지는 물음
수키 핀 지음, 전혜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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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추지 않는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우리 여성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 p.375

이 책은 29 인의 여성 철학자들의 질문이 담긴 인터뷰집이다. 즐겨 보는 유튜버의 강력 추천이라는 말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여성 철학자들의 이야기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철학 도서와 다른 교훈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에게 맞는 철학적인 교훈과 깨달음을 던져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동물의 지위와 욕설, 신뢰에 대한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동물의 지위에 관해 이야기한 크리스틴 M 코스가드 교수는 동물을 보호할 방법으로 법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공감이 되기는 했지만, 동물의 지위라는 말 자체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통 동물은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동물 존재 자체의 목적을 생각할 일이 없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동물복지가 아닌 동물의 권리 개념으로서 접근해야 하며, 인간이 동물의 지위와 권리를 행사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통해 동물의 보호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베카 로치 교수는 욕설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분이 재미있으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보통 욕이라고 하면 언어적인 폭력의 일부라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해왔다. 그러나 리베카 로치 교수는 스티븐스의 실험을 예시로 들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욕을 하면 고통을 더 오래 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욕은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나에게 가장 흥미를 주었던 지점은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과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리베카 로치 교수의 물음이었다. 나 역시도 고운 말을 배워야 한다고 자라오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학창시절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욕을 배웠다. 욕이 무엇인지 알려 주면서 욕을 사용해도 되는 상황을 가르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이 큰 공감이 되었다.

신뢰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 깨부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캐서린 홀리 교수는 신뢰라는 게 꼭 미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절이 오히려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조건적인 신뢰의 단점으로 관대한 이미지를 통해 신뢰를 쌓고자 무리하게 일을 수락해서 진행했고, 정작 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의도를 떠나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하며, 진실이라는 게 무조건 좋지는 않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면서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끝났다.

처음에는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페미니즘 관점에서 시작되었으나, 동물보호권, 신경생물학, 언어학, 다문화주의, 종교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내용이 나왔다. 또한,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아프리카 철학이라는 생소한 부분의 이야기까지 나와서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철학에서도 언어철학, 과학철학 등 전문적인 분야의 교수님들의 이야기이다보니 내 부족한 상식으로 따라가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시간이 될 때 조금씩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여성 철학자들을 통해 듣는 철학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여성으로 살고 있기에 그들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파트에서도 큰 괴리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 거부감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별을 떠나 현 세대에서 다시 생각해야 될 동물복지나 다문화주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사람들에게 의문을 던졌다는 점과 이를 철학적인 시각으로서 풀어냈다는 점들만 보고도 이 책 자체의 존재에 큰 의미가 있으며,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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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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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일 아침에 내가 꼭 '변용'되어 있기를. / p.196

 

이 책은 무라타 사야카 작가님의 네 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얼굴 가면을 말리는 듯한 표지와 젠더가 금지된 학교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소설을 읽었는데, 참으로 인상 깊었다. 사회적인 문제를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책 역시도 젠더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소설인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는 미라클 리나라는 마법소녀 놀이를 27 년째 하고 있는 지가사키 리나의 이야기이다. 리나는 마법소녀 놀이로 힘든 일상을 이겨내고 있다. 그러던 그녀에게 전직 매지컬 레이미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소녀이자 현재는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 레이코라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레이코는 남자 친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리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며칠 후 마사시는 레이코를 만나기 위해 리나의 집을 찾아온다. 리나는 마사시에게 제 2 대 매지컬 레이미가 되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마사시는 이 요구를 수락해 매지컬 레이미로서 활동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레이코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레이코는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남긴다.

 

처음에는 동심의 세계를 잊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힘든 일상의 한줄기 빛이 되는 마법소녀 놀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중반에 들어서 흐름이 바뀌었다. 남녀 사이의 데이트 폭력에 관한 내용과 선이라는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소설 안에서는 악당을 구하고자 마법소녀가 되어 선을 행하고 있지만, 일상에서의 분노를 약한 사람에게 표출하고자 했다.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선이라는 이름으로 만만하거나 약한 자들에게 행하는 악한 폭력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두 번째 소설인 <비밀의 화원>은 첫사랑을 감금한 우치야마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야카와라는 남자를 짝사랑했다. 이후 세 번의 연애를 했지만, 첫사랑과 상상에서 키스했을 때의 감정이 살아나지 않아 실패했다. 하야카와와 같은 대학교에 입학한 우치야마는 기회를 노려 그에게 일주일만 감금당할 것을 제의한다. 우치야마는 수락했고, 하야카와는 수갑과 감금을 제외하고 모든 부탁을 들어준다. 화장지로 입술 모양을 만들어 감촉을 느끼는 등 첫사랑과의 상상을 즐겼다. 그러나 현실의 하야카와는 너무 달랐다. 껄렁한 양아치에 가까웠으며, 바람을 피우는 질이 나쁜 남자였던 것이다. 감금을 당하는 중에도 갑인 것처럼 우치야마에게 명령했고, 성적인 수치심을 자극할 성희롱도 했다. 감금 마지막 날, 우치야마는 하야카와에게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당황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 첫사랑이 쌍방이 아닌 짝사랑이었다면 말이다. 짝사랑의 경험이 있어도 그렇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큰 기대 없이 봤으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찬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첫사랑의 환상을 깨기 위해 남자를 납치했다는 설정부터 의문이 들었으나, 결말과 옮긴이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소설인 <무성교실>은 표제작으로 성별 표출이 금지된 학교의 학생인 유토라는 학생의 이야기이다. 유토는 여성이지만, 학교 교칙에 따라 이를 알 수 없게 특별 제작이 된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학교에는 비슷한 키를 가진 유키와 연애하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마즈키, 코우라는 친구가 있다. 어렸을 때에는 외적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으나, 2 차 성징 이후부터는 교복으로 가릴 수 없는 신체적 변화가 있기에 유토는 친구들의 성별을 추측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세나의 성별만은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러워 하던 어느 날, 유키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성별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토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게 되고, 마즈키와 코우를 찾아가 성별을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세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주제이자 깊이 생각할 지점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사회에서 요구되는 젠더 규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랑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믿었으나, 성별을 알 수 없는 세나를 보면서 가치관이 흔들리는 유토의 모습을 통해 이성애가 주류인 사회에서 당연시하게 여기는 관념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가 아는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로서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도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네 번째 소설인 <변용>은 분노가 사라진 사회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마코토의 이야기이다. 레스토랑에서 유키자키와 다카오카라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과 같이 근무를 하게 된다. 어떤 진상이 와도 친절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나모무하다는 신조어를 들은 마코토는 충격을 받고, 친한 친구인 준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코는 과거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엑스터시의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이소가와라는 인물을 예시로 들며, 분노를 표출하면 그 사람처럼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는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남편이 주최하는 홈 파티에 마코토를 초대한다. 이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마코토는 이소가와를 만나 분노와 육체적 관계가 사라진 현 상황을 신랄하게 욕한다. 준코의 홈 파티에서 이소가와의 행동에 마코토는 충격과 함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용모가 바뀌었다는 뜻의 변용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책에서도 보지 못한 단어여서 제목만 보고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읽고 나니 무엇보다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 이의 말에서 면접 준비를 하면서 면접관들이 선호하는 MBTI를 찾아 자신의 성격을 가공해 대답으로 활용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도 대세에 맞춰 젊은 사람들의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부분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수 있는 범위인지에 대한 의문을 관통하고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체와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소재들로 쉽게 읽혀지기는 했으나, 머리와 마음은 무겁게 만든 소설이었다. 옮긴 이의 말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소화할 수 있었으나, 이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던지는 질문과 주제가 많아 리뷰를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무래도 이러한 물음 자체가 답이 정해지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에서 똑같은 물음을 사회에 던지고 있다. 적당한 사회적 관념은 체계의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도덕과 젠더, 세대차이 등 확실한 답이 없는 이러한 개념에 대한 정답과 오답을 가릴 수 있을까. 오히려 사회의 관념과 낙인이 개인의 감정과 주체성을 흐리고 일관성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성을 저해하는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출판사 '하빌리스'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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