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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교실 - 젠더가 금지된 학교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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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 내가 꼭 '변용'되어 있기를. / p.196
이 책은 무라타 사야카 작가님의 네 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얼굴 가면을 말리는 듯한 표지와 젠더가 금지된 학교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소설을 읽었는데, 참으로 인상 깊었다. 사회적인 문제를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우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책 역시도 젠더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소설인 <마루노우치 선의 마법소녀>는 미라클 리나라는 마법소녀 놀이를 27 년째 하고 있는 지가사키 리나의 이야기이다. 리나는 마법소녀 놀이로 힘든 일상을 이겨내고 있다. 그러던 그녀에게 전직 매지컬 레이미라는 이름을 가진 마법소녀이자 현재는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 레이코라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레이코는 남자 친구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리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며칠 후 마사시는 레이코를 만나기 위해 리나의 집을 찾아온다. 리나는 마사시에게 제 2 대 매지컬 레이미가 되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마사시는 이 요구를 수락해 매지컬 레이미로서 활동한다. 이러한 모습으로 레이코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레이코는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남긴다.
처음에는 동심의 세계를 잊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힘든 일상의 한줄기 빛이 되는 마법소녀 놀이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중반에 들어서 흐름이 바뀌었다. 남녀 사이의 데이트 폭력에 관한 내용과 선이라는 이름으로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소설 안에서는 악당을 구하고자 마법소녀가 되어 선을 행하고 있지만, 일상에서의 분노를 약한 사람에게 표출하고자 했다.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선이라는 이름으로 만만하거나 약한 자들에게 행하는 악한 폭력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두 번째 소설인 <비밀의 화원>은 첫사랑을 감금한 우치야마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야카와라는 남자를 짝사랑했다. 이후 세 번의 연애를 했지만, 첫사랑과 상상에서 키스했을 때의 감정이 살아나지 않아 실패했다. 하야카와와 같은 대학교에 입학한 우치야마는 기회를 노려 그에게 일주일만 감금당할 것을 제의한다. 우치야마는 수락했고, 하야카와는 수갑과 감금을 제외하고 모든 부탁을 들어준다. 화장지로 입술 모양을 만들어 감촉을 느끼는 등 첫사랑과의 상상을 즐겼다. 그러나 현실의 하야카와는 너무 달랐다. 껄렁한 양아치에 가까웠으며, 바람을 피우는 질이 나쁜 남자였던 것이다. 감금을 당하는 중에도 갑인 것처럼 우치야마에게 명령했고, 성적인 수치심을 자극할 성희롱도 했다. 감금 마지막 날, 우치야마는 하야카와에게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당황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 첫사랑이 쌍방이 아닌 짝사랑이었다면 말이다. 짝사랑의 경험이 있어도 그렇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큰 기대 없이 봤으나,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찬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첫사랑의 환상을 깨기 위해 남자를 납치했다는 설정부터 의문이 들었으나, 결말과 옮긴이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소설인 <무성교실>은 표제작으로 성별 표출이 금지된 학교의 학생인 유토라는 학생의 이야기이다. 유토는 여성이지만, 학교 교칙에 따라 이를 알 수 없게 특별 제작이 된 교복을 입고 등교한다. 학교에는 비슷한 키를 가진 유키와 연애하는 것으로 의심이 되는 마즈키, 코우라는 친구가 있다. 어렸을 때에는 외적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으나, 2 차 성징 이후부터는 교복으로 가릴 수 없는 신체적 변화가 있기에 유토는 친구들의 성별을 추측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세나의 성별만은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러워 하던 어느 날, 유키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성별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토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게 되고, 마즈키와 코우를 찾아가 성별을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이후 세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주제이자 깊이 생각할 지점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사회에서 요구되는 젠더 규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랑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이성애자로 믿었으나, 성별을 알 수 없는 세나를 보면서 가치관이 흔들리는 유토의 모습을 통해 이성애가 주류인 사회에서 당연시하게 여기는 관념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리가 아는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로서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측면에서도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네 번째 소설인 <변용>은 분노가 사라진 사회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마코토의 이야기이다. 레스토랑에서 유키자키와 다카오카라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과 같이 근무를 하게 된다. 어떤 진상이 와도 친절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나모무하다는 신조어를 들은 마코토는 충격을 받고, 친한 친구인 준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코는 과거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엑스터시의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이소가와라는 인물을 예시로 들며, 분노를 표출하면 그 사람처럼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는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남편이 주최하는 홈 파티에 마코토를 초대한다. 이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마코토는 이소가와를 만나 분노와 육체적 관계가 사라진 현 상황을 신랄하게 욕한다. 준코의 홈 파티에서 이소가와의 행동에 마코토는 충격과 함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용모가 바뀌었다는 뜻의 변용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책에서도 보지 못한 단어여서 제목만 보고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읽고 나니 무엇보다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 이의 말에서 면접 준비를 하면서 면접관들이 선호하는 MBTI를 찾아 자신의 성격을 가공해 대답으로 활용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역시도 대세에 맞춰 젊은 사람들의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부분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수 있는 범위인지에 대한 의문을 관통하고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체와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소재들로 쉽게 읽혀지기는 했으나, 머리와 마음은 무겁게 만든 소설이었다. 옮긴 이의 말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소화할 수 있었으나, 이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던지는 질문과 주제가 많아 리뷰를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무래도 이러한 물음 자체가 답이 정해지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란스러운 내 머릿속에서 똑같은 물음을 사회에 던지고 있다. 적당한 사회적 관념은 체계의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분은 지켜야 한다고 믿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에서 도덕과 젠더, 세대차이 등 확실한 답이 없는 이러한 개념에 대한 정답과 오답을 가릴 수 있을까. 오히려 사회의 관념과 낙인이 개인의 감정과 주체성을 흐리고 일관성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성을 저해하는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출판사 '하빌리스'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