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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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인간의 변호사다. / p.39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난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인간의 직업이 조금씩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화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직종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공감을 했었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이나 감정을 다루는 분야는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Her'을 보고 그 생각이 와장창 깨졌다. 주변 사람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나는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 궁금증이 들었다. 전자의 경우는 터보의 노래 가사나 어느 연예인의 연애담처럼 사이버 공간과 펜팔을 통해 증명이 되었기에 별 생각이 안 들었다. 후자의 경우는 많이 충격이었다. 차라리 동물과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전자처럼 이해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아홉 명의 작가의 SF 단편 소설집이다. SF 소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차별이나 문제 의식 등을 생각할 수 있어서 즐겨서 읽는 편인데,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과 다르게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SF 소설집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나에게 또 다른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대리인과 나와 올퓌,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 라는 세 작품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인간의 대리인>은 무뇌아로 태어났으나, 투명한 뇌 기술을 이식받은 변호사인 ALP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ALP가 변호사가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으나, 인공지능 판사들의 판결로 변호사가 되었다. 겨우 변호사로 취업에 성공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병의 신약 임상실험 중 일어난 부작용에 대한 재판 건에서 부작용 피해자의 원고측 변호인으로서 참여한다.

대형 제약사의 편에 서는 인간과 피해자의 가족들 편에 서는 로봇이라는 구성 자체에 씁쓸함을 느꼈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게 본능이라고는 하나, 도덕과 윤리 기준에 맞지 않는 이익을 대변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현실에서도 거대 기업과 소수의 피해자들 간의 법정 다툼을 매체를 통해서 볼 때가 많은데, 그럴 때 느꼈던 감정이 딱 이러했던 것 같다. 거기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선한 인간성을 로봇에게서 느끼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아이러니가 추가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한 대답이었으며, 가장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이었다.

<나와 올퓌>는 할머니와 휴머노이드 올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할머니는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 손녀를 찾아 나서던 중 올퓌라는 이름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만난다. 당시 올퓌는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할머니는 올퓌에게 차량의 연료를 주어 소생시킨다. 그렇게 둘은 손녀를 찾으러 여정을 떠난다. 서로를 알게 되고, 조금씩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들개의 습격으로 올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할머니는 서둘러 손녀의 지역으로 운전한다.

과연 로봇과 인간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SF 소설에서 가끔 등장하는 주제이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참 회의적으로 느껴지는 문제다. 인간이 로봇에게 애정을 줄 수 있겠지만, 반대로 로봇이 인간에게 그만큼의 애정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와 올퓌는 여정을 떠나면서 서로에 대해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인간과 로봇이라는 설정만 없었다면 나의 눈물을 가지고 갈 감동적인 서사였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마 인간으로서의 오만한 편견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편견을 떠나 할머니와 올퓌의 우정은 참 아름다웠다.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는 도덕 3.4 버전의 정수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도덕 버전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정수는 새벽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으나, 도덕 4.0 이하의 직원을 해지 통보하라는 방침에 따라 사직을 당한다. 도덕을 업그레이트하기 위해 매장에 갔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게 비싸다는 것을 알게 되어 포기하게 된다. 직장이 사라진 정수는 어떻게든 도덕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한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도덕을 자본으로 구매가 가능하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내용을 보니 도덕을 버전으로 나눈다는 게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도덕이라는 게 학교 수업으로 배우기도 하고, 문화가 형성된 나라에서 통용된다는 점이 객관적이면서도 도덕의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애매모호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사람이 겉과 속이 일치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겉으로는 도덕적인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속으로는 누구보다 패악한 사람이기도 하므로 도덕을 과연 분류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할까. 어디까지나 허구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봤지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다.

사실 읽으면서 인류애가 조금씩 소멸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과의 사건들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나, 인간들이 행하는 일들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대기업의 악한 부조리에 옹호하는 변호사들과 혼란한 세상에서 남을 해쳐 무언가를 편취하려는 사람들, 노조 협상에서 모두를 생각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전부가 사실이지는 않겠으나, 매체를 통해서 본 지금 현재 사회라는 측면에서 인간의 편에 선 정의로운 로봇들과 휴머노이드들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서 좋았다. 과연 이러한 허구의 이야기들이 미래에 진짜가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때의 나는, 그 현재의 주인공인 나는 어떤 인물로서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던져 주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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