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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 파이퍼
네빌 슈트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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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은 적당히 즐겨야 이롭다. / p.224
역사 수업으로 세계 대전 등 지금까지 흘러온 많은 전쟁 이야기를 배우다 보니 참혹함이 와닿을 때가 없다. 우리의 아픈 역사만 보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 수업 인식은 하고 있으나, 조상들이 겪었던 당시 상황은 잘 알지 못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기에는 역사라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소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전쟁 이야기들을 읽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그 전쟁 한 가운데에 놓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적인 동요가 일어난다. 물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극히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이렇게 알아간다는 것도 독서의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한 노인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 소설 중에서 일제강점기 시대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소설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은 있었는데, 해외 소설로 세계 대전을 다룬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해외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다룰 수 있는 소재라고 해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기 전까지는 한국 소설만 읽었기 때문에 소설로서 세계 대전을 볼 일이 없었다. 노인이 들려주는 세계 대전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하워드라는 노인은 낚시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데, 딸은 미국에서 결혼해 거주하고 있었으며, 아들은 공군이었다. 그러던 중 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고, 영국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당시 독일이 세계 대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는데, 자신이 가고자 하는 프랑스 지역까지는 독일군이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로 도피성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의 도시의 한 호텔에서 묵던 중 한 부부를 만난다. 그 부부에게는 자녀가 두 명 있었는데, 남편은 제네바 국제 연맹에서 근무하므로 스위스와 프랑스를 왔다갔다 하고 있으며, 부인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졌는데, 독일군의 심상치않은 행동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고,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 부부가 아이를 하워드에게 맡기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범할수록 영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어려워지고, 가는 여정에서 만난 이들의 부탁과 길거리에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지 못하는 하워드의 성격 탓에 그가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다섯 명의 아이와 긴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읽으면서 세계 대전의 참혹함을 활자를 통해 알 수 있어 괴로운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잔인하게 묘사된 부분이 없기는 하나, 역사 교과서 몇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를 400 페이지 가까운 소설로 읽게 되니 알지 못했던 참혹한 현실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독일군의 침범으로 육로가 차단된다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영어가 아닌 불어를 사용하는 하워드와 아이들, 영국군은 배신자라면서 그들을 검열하는 독일군의 행동 등 세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피부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 다섯 명을 데리고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하워드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나름 노인의 연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소설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래도 순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이들 자체가 통제가 어렵지 않은가. 그것도 국적과 사용 언어가 다른 다섯 명의 아이를 어떻게 다 케어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도 의문이었다. 이 또한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현실에 있다면 육아의 고수로 프로그램에 주구장창 나올 인물이었을 것이다.
탈출하는 과정이 온전히 하워드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과거 여행을 갔을 때 만난 인연들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가장 크게 도와주었던 니콜이라는 인물은 마음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하워드를 돕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도왔다. 니콜이 하워드와의 과정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아물 수 있었던 부분도 인간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선물이지 않았을까.
과연 내가 하워드였다면 길가에 돌 맞고 있는 아이와 연고도 없는 아이를 데리고 위험을 감당해가면서 여정을 떠날 수 있었을까. 좋은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기는 하나, 나의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위험과 목숨보다 길가에서 만난 아이들이 전쟁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선함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겠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쟁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