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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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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외로움 혹은 황량한 적막. / p.142
이 책은 중국 작가 궈징밍의 청춘 소설로, 주인공인 이야오의 이야기이다. 이야오는 안타까운 환경에 처한 인물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은데, 이야오 옆에 있는 치밍이라는 친구를 짝사랑하는 인물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아 괴롭힘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자 친구와의 실수로 아이까지 임신하면서 절망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나온다.
치밍이라는 인물은 이야오와 정반대의 환경을 가졌다. 부잣집 아들이면서 부모님의 총애를 받는 아이. 외모도 준수해 학교에서 인기가 많기도 하며, 공부까지 잘한다. 요즈음 말로 표현하자면 엄마 친구 아들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오래 지낸 이야오를 좋아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처한 여러 사건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봐왔던 청춘과 성장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이다. 청춘 소설의 절망편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청춘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풋풋한 분위기는 느껴지지만 어른들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고독과 쓸쓸함이 묘하게 겹쳐졌다. 보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들이 새싹에서나 볼 수 있는 초록이라는 색깔을 가졌다면 이 소설은 조금은 탁한 갈색과 초록의 어느 중간의 색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오가 성인이었다면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테지만 소설에서 이야오는 한참 성장하는 고등학생이다. 부모님의 이혼 하나로도 충분히 충격을 받을 시기에 어머니에게 물리적으로 학대를 받고, 남자 친구와의 실수로 임신까지. 어린 주인공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황이다. 참으로 이렇게 불행한 서사를 때려 박은 드라마라면 애초에 포기했을 것 같다. 이야오에게는 너무 가혹한 상황과 기구한 운명에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어 읽어나가는 게 조금 어렵기도 했다.
치밍과 이야오의 사랑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청춘과는 조금 다르다. 소설에서 짝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인물들의 가슴앓이를 봤지만 묘하게 다른 결이라고 느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치밍의 사랑은 연민, 이야오의 사랑은 동경이라는 생각이라는 느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이성과 가까운 모습에 분명히 질투의 감정을, 서로에게 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거리를 두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도 하지만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순수하게 서로에게 이끌린 사랑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의 생각과 별개로 둘의 관계가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으면서 이야오의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문체에 감탄했다. 역시 제목 값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문구는 352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에 나온 '삶 속에는 이렇게 슬픈 은유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였다. 소설의 모든 사건을 함축적으로 담은 이 문장. 누구에게는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문장이겠지만 나에게는 이야오의 운명을 설명해 주는듯했다. 그 외에도 평범한 일들을 나열하고서 이러한 모습을 프레파라트의 표본으로 비유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이 표본을 청춘에 대해 명료한 주석과 설명을 붙여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는데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설을 읽는 것인가, 시를 해석하고 있는 중인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씹어서 소화시키거나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어서 조금 어렵게 읽기는 했으나, 4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몇 시간 내에 읽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쉬웠다. 어떻게 보면 예상하기 쉬운 전개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청춘이라는 시각을 비틀었다는 점과 시적인 문체에 있다고 본다. 청춘의 시각을 달리 해석하는 점은 뒤에 실린 서평과 작가의 말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야오의 삶을 가까이에서 이렇게 보니 진짜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멀리에서 보면 그냥 청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아마도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 치밍과 이야오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모습 등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청춘의 절망의 단편을 보았던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