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길을 잃다
엘리자베스 톰슨 지음, 김영옥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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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인 오스틴을 꿈꾸는 삶은 확실히 아니었다. / p.194

이 책은 엘리자베스 톰슨의 소설로,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1920년대의 파리의 풍경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시기에 대한 관심을 크게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로 인해 꼬인 딸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 두꺼운 책이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해나는 런던에서 제인 오스틴 투어를 맡고 있는 투어가이드이자 여행사의 직원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뭘 해도 못 미더운 엄마 말라가 있다. 그녀는 엄마와 떨어져 살기 위해 런던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엄마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이는 엄마가 런던을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외증조모의 문서와 함께 말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같이 파리로 떠나자는 제안. 그렇게 엄마와 함께 파리로 떠나게 되었고 거기에서 엄마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당탕탕 힘을 합치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해나는 외증조모인 아이비의 일기를 발견하는데, 전체적으로 해나와 말라의 시점과 외증조모 아이비의 시점이 교차해 진행된다.

읽으면서 내가 해나였다면 말라의 제안에 흔쾌히 수락을 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업이 있는 나에게 갑자기 다른 나라에 가야 된다는 이야기 자체가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수락할 수 없는 제안이지 않을까. 아무리 급한 일이었다고 해도 어떻게 보면 직업이 걸린 문제이기에 섣불리 파리로 떠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어머니께서 제안해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할 것 같은데, 아예 남처럼 지내는 엄마의 제안이라고 한다면 굳이 나는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결과론을 놓고 만약 거절했다면 배가 많이 아팠을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해나의 감정이 무엇보다 깊이 공감이 되었던 이야기이다. 전적으로 해나의 시선으로만 읽게 되었는데 나름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엄마인 말라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기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보다 더 앞가림을 못하는, 어떻게 보면 책임감 하나 없이 자유분방 그 자체인 말라는 그저 나에게 철없는 어린 딸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능구렁이처럼 이리저리 피해가는 말라의 모습들을 상상하자니 명치 끝 단전에서부터 오르는 답답함을 가지고 읽느라 중간마다 멈추고 해소시킬 시간이 필요해 완독하는 게 오래 걸렸던 것도 있다. 그나마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것도 아니었다면 아마 독자의 입장에서 말라는 저주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해나의 과거 서사들이 신빙성 있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신을 외할머니와 증조 외할머니께 맡기고 밖을 돌아다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다. 더군다나 외조모와 외증조모께서는 해나를 예뻐해 주셨고, 항상 믿고 지지해 주시기도 했다. 물론, 소설 내용 중에서는 엄마인 말라가 이 세 사람에게 받았던 감정들을 잘 풀어서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해나의 감정선에 따라 읽었던 나로서는 말라가 관계 개선을 위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구조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다면 버리고 갈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야 되지 않았을까. 말라에게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아이비의 시점은 다이어리 형식으로 나오는데, 허밍웨이나 피츠제럴드, 피카소 등의 반가운 작가나 화가의 이름이 나와서 재미있었다. 사실 고전 문학와 미술 작품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선호하지 않는 편이어서 대표작들조차도 읽지 못했지만 워낙에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1920년 중후반부터 1940년까지의 시대상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아마 등장하는 이름들의 작품을 읽었다면 재미가 배로 더 컸을 것 같다.

외증조모의 문서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해나에게 큰 깨달음이자 든든한 버팀목을 주었다. 아마 항상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해나를 지켰던 아이비의 선물이지 않았을까. 엄마 말라에게는 큰 애정이 없었지만 해나를 응원했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모정은 느낄 수 없었지만 딸이 가진 엄마를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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