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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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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제발 가식과 위선이라도 떨어줬으면 좋겠다. / p.62
이 책은 김혼비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다정이라는 어감 자체를 좋아할 뿐더러 주로 잔잔하면서도 다정함이 묻어나오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선호하는 편인데 제목부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주변에서도 에세이로 추천하기도 했었고, 예전에 읽었던 음식에 관련된 에세이에서도 김혼비 작가님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구매한 시점은 올해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읽을 기회가 나지 않아 최근에서야 읽을 수 있었다.
전체 2부로 나누어져 있지만 목차와 별개로 저자가 느끼는 일상생활에서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산문집이다. 생활 밀착형 산문집이라고 느껴졌는데, 현실감이 그대로 와닿아서 너무 좋았다. 나 역시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또는 겪을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었다. 나처럼 둔한 사람이 그냥 생각하지도 못하고 넘겼을 이야기들이 이 책에서는 다소 깊게 서술이 되었던 내용들도 있어서 가벼우면서도 그렇게 썩 가볍지만은 않았던 글이다.
전체적으로 너무 좋았던 이야기들이었지만, <가식에 관하여>와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 <D가 웃으면 나도 좋아>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가식에 관하여>는 위선과 가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선과 가식은 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런 편에 속하기에 이 이야기가 새로운 전환을 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가식 또한 배려와 존중에서 나오는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저자의 직장 상사를 통해 인식시켜 주었고, 세월호에 대해 질리니까 그만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에게 제발 가식을 떨었으면 한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위선과 가식을 무조건 나쁘다고 지칭하는 게 하나의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 혐오를 멈춰 주세요>는 여성의 전유물인 제사나 차례 음식 장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즈음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문화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 그러한 와중에 상을 차리지 않으면 조상님께서 큰 벌을 주신다는 말들을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는 생일 때 다른 사람들이 생일상을 차려주지 않거나 잊고 살아가면 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칠 정도로 큰 분노에 휩싸이는지 되물으며, 이러한 괴담에 대해 한마디를 던진다. 조상님들께서는 후손들이 잘 살기를 바랄 테니 이런 가부장적인 제도의 괴담으로 조상 혐오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대체 무슨 내용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글을 보고 나니 웃음이 나오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D가 웃으면 나도 좋아>는 현대 사회에서 차별적인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어렸을 때 같은 반이었던 D라는 인물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국어 시간에 '엄마 품처럼 따스한'이라는 직유법을 배울 때 D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이것 또한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로 구성되어 있는 정상 가족이라는 게 과연 맞는 말일까. 정상 가족이라고 칭하고 있는 경우보다 그외의 다른 가족의 형태를 생각보다 많이 보고 듣는다. 이야기에서 보는 것처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가족, 혼자 사는 가족, 이혼이나 사별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분과 함께 사는 가족, 요즈음은 동성 배우자와 사는 가족 등 너무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던 이 내용을 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섬세하면서도 다정한 저자의 이야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저자는 마트에서 본 김솔통을 보고, 같이 여행을 다녔던 캐리어를 지키고, 수제 사리곰탕면을 먹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에게서 다정함을 느꼈지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가는 환경들 속에서 큰 다정함을 느끼지 못했다. 이 산문집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다정함을 간과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정함의 가장 기본은 체력이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있지만 거기에 섬세함이라는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될 것 같다. 나에게는 평범한 일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나 또는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따뜻하게 만드는 일. 그것은 체력보다는 섬세함에서 나오는 다정이 아닐까. 제목처럼 다정 소감들을 읽고 나니 나까지 다정 게이지가 차오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