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 아저씨
김은주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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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금방 잊어버려. / p. 26

달리기를 필수로 하는 운동에는 완전 쥐약이다. 초등학교 운동회부터 달리기 시합을 하면 앞보다 뒤에서 달릴 정도로 소질이 없다. 가장 높은 등수가 3 등이라고 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어렸을 때에는 공책과 연필 등의 선물 세트를 못 받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시합에서 졌다는 게 그렇게 분했다.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은 김은주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구구 아저씨의 존재가 궁금했다. 구구라는 별명을 가진 아저씨를 말이다. 거기에 세계 신기록을 앞두고 부상을 당한 소녀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줄거리를 보기 전에는 청소년 문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청소년 문학이 의외로 감동을 줄 때가 많았기에 편하게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다연이는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며, 세계 신기록을 눈앞에 둔 육상부 선수이다. 그러다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재활하게 되었다. 재활 이후 다리가 완치되었음에도 이상하게 다연이는 달릴 수가 없었다. 한강에 나와 달리기 연습을 하거나 강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구구라는 이름을 가진 비둘기를 만나게 되었다. 비둘기의 말을 알아듣는 다연이는 이내 구구 아저씨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터놓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철딱서니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좋게 말하면 낙천적인 사람들이다. 1군에서 반짝 기대주 야구 선수였다가 결국 야구 코치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뜬금없이 행동하는 간호사 어머니, 누가 보면 허무맹랑한 꿈을 가지고 있는 구구 아저씨. 다연이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읽으면서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다연이는 자신의 말이라면 언제든지 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구구 아저씨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힘을 냈던 것이다. 점점 답을 찾아가는 다연이의 변화도, 다리가 완치되고 나서도 뛰지 못했던 이유를 찾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른들의 조언들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연이의 정신과 의사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달리지 못하는 심리적인 이유를 찾기 위해 정신과를 찾은 다연이는 예상과 다른 답을 얻는다. 어른의 말을 새겨듣지 말라,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는 조언을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배설물을 전부 모아 연구했던 산토리오의 예시를 든다. 남들은 똥이나 모은다고 비웃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너무 큰 공감이 되었다. 무조건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조언들이 곧 진리라는 생각으로 달려왔지만 막상 그게 정답이 아닐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구구 아저씨와 다연이의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말들로 큰 위안을 받았다. 참 어른이라는 게 힘들다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나름의 답을 얻기도 했었다. 누군가 어른이라는 게 왜 이렇게 힘든가요, 라고 묻는다면 고민도 없이 이 책을 내밀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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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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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지나 메타세쿼이아 나뭇가지 끝을 울게 해다오. / p.147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으면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소설에 표현된 청소년들은 누구보다 순수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의 청소년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끔 길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소년 또는 소녀다운 모습으로 웃음을 짓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야요이 사요코의 장편 소설이다. 두 소년이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제목도 약간 뭔가 시적으로 느껴져서 더욱 눈길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제목과 어울리지 않은 추리 장르의 소설이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마치 그렇지 못한 외모에서 다른 매력을 본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내용보다는 궁금증이 들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시후미와 리쓰라는 이름을 가진 두 소년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유키라는 남자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유키는 시후미의 사촌이자 드문드문 탐정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후미의 양어머니 부탁으로 시후미 양아버지의 살인 사건에 대한 의뢰를 받는다. 이미 가닥이 나온 사건임에도 양어머니는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양아들인 시후미를 지목하고 있기에 뒤를 캐서 알아봐달라고 한다.

시후미는 아버지의 폭력과 이혼으로 조부모의 양자로 들어간다. 열심히 공부를 한 결과 법대에 재학중인 대학생이다. 유키는 시후미의 학창 시절부터 차근차근 주변 사람들을 만나 탐색하기 시작한다. 조사하면서 고구레 리쓰라는 시후미의 친구를 인지하게 되고 그와 벌어진 다른 사건들을 파악해 나간다.

읽는 내내 생각과 다르게 소년들의 순수함과 생기발랄함보다는 우울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시후미와 리쓰의 소설 내에서 바닥에 가라앉는 성향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법대생에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시후미도, 문학에 큰 소질을 보이는 리쓰도 생각보다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낸 인물들이었기에 조금은 암울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의 생각을 느꼈는데 첫 번째 생각은 시후미와 리쓰의 관계였다. 친구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가깝다고 느꼈다. 흔히 일상에서 친구보다는 가까운, 연인보다는 먼 관계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이 딱 그 정도였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고 있기에 내적인 친밀감과 의지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기기 위해 위험하고도 힘든 일에 뛰어든다는 게 단순한 우정으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성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첫사랑의 감정보다는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운 사랑의 정체성으로 이해했다.

두 번째 생각은 청소년기에 받았던 상처이다. 시후미와 리쓰는 둘 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가정 내에서 상처를 받기 시작하면서 변하게 되었고, 시후미와 리쓰 둘만이 가장 큰 의지 대상이자 감쌀 수 있는 존재였다. 읽으면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들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었고, 두 소년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도 들었다. 대체 누가 이 두 소년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른들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 소설이라는 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양아버지의 죽음과 다른 연계된 사건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추리적인 요소를 띄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만큼 두 소년의 이야기에 집중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소년이 뭔가 알 수 없는 여운을 주고 간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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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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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 살고 있을까. / p.61

불안과 우울과 고독. 사람들에게는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 감기와 같은 감정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 역시도 이러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과 절망에서 피어나는 우울, 인간 관계 풍요 안에서 느끼는 고독을 매미처럼 달고 산다. 

사실 책을 통해 위안을 받기는 하지만 대놓고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를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럴수록 내 자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삶을 펼친 에세이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지만, 이 시기를 보내는 젊은 세대들을 위로한다는 류의 에세이에서는 별 감흥을 얻지 않는다. 이를 자기 연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항상 이를 경계하는 편이기에 의도된 공감을 받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현요아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앞표지보다는 뒤에 등장하는 '불안과 우울과 고독'이라는 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세대를 살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이므로 관심이 갔고, 자살사별자의 기록이라는 점에 더욱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었던 자살사별자에 대한 내용이 깊게 남아 있기에 더 알고 싶었다.

저자는 동생을 떠나보낸 자살사별자이다. 동생은 학창시절의 폭력을 비롯한 안 좋은 일로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리고 가족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따로 살고 있다. 가정폭력과 어머니의 가스라이팅, 동생의 사별까지 겪게 되면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다. 1남 2녀 중 장녀로 집안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이것은 개인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철저한 계획주의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에세이를 읽는 내내 저자의 가정 환경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암울하지만 기구하지는 않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쉽게 만날 수 있는 가정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언어 폭력을 비롯해 가정폭력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곪다 못해 터져버린 가정들을 생각하니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들을 보고 있으니 공감이 되기도, 깊은 생각으로 빠지기도 했다. 특히, <자살이라는 말버릇>과 <삶에 애착이 있다는 혼잣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자살이라는 말버릇>은 주변에서 자주 들리는 죽고 싶다 또는 자살하고 싶다 라는 말버릇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보통은 이러한 말들은 자살사별자를 포함한 타인들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을 위해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을 계속 읊게 되다 보면 힘을 받아 위태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디어에서도 자살이라는 소재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현재 사회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애착이 있다는 혼잣말>은 한 직원의 말을 듣고 풀어낸 이야기이다. 회식에서 이틀 전부터 술을 끊었던 직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삶의 애착이 있어서 안 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의 전환점을 느꼈다. 저자 또한 다시 생각했지만 말이다. 어려운 일을 하고 있을 때 힘들다는 말보다는 삶의 애착이 있기에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 힘든 현실 속에서 삶의 이유를 생각할 때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애착이 있기 때문에 항상 하루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유리창에 부딪힌 새들을 살리고자 물을 먹여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저자의 힘든 시기에 물을 주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아침이 망했다고 해도 오후에는 덜 망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자는 내용 등 3장 전체 내용들이 크게 와닿았다. 아마 비슷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기에 동지애가 더욱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절망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자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어떤 의미로든 말이다. 저자의 개인적이고도 어려운 가정사이지만 보면서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부모님께 서운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K-장녀, 앞길이 어두워 살아가야 할 힘을 찾지 못하는 동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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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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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 p.42

한밤에는 역시 술이 빠질 수 없다. 특히,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맥주와 함께 어울리는 안주들과 하루를 보낼 때가 다른 계절에 비해 많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체중계에 올라가기 두렵기도 하지만 더운 여름에 차가운 맥주는 거의 천생연분 수준이지 않을까. 나의 간은 한참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글을 빌어 미안하다는 말을 적고 싶다.

이 책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소설이다. 처음에는 입맛을 돋게 만들어 주는 소설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그러다 술과 안주, 이야기의 삼박자를 맞춘 소설이라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술과 안주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에 미스터리는 조금 무섭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기에 걱정을 하면서 읽게 되었던 책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일곱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나쓰미와 겐타 부부, 나가에 나기사와 나가에 다카아키 부부로 네 명이다. 보통 이 네 명이 모여 안주와 술을 마시고 그로부터 하나씩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은 안주나 술의 특징을 토대로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흔히 이야기를 시작할 때 '저기 홍길동 씨 기억하지?' 또는 '옛날 옛날에 있잖아.' 이런 류의 이야기 시작 말이다.

두 아이의 엄마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학교가 다르다거나 갑자기 이혼을 하는 등 전체적인 이야기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법한 내용이다. 순간 집단 내에서는 뒷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지만 지금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히, 나가에 나기사 라는 인물의 생각을 통해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다르게 해석이 된다.

개인적으로 사케X오징어내장구이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호와 노모토이다. 둘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 관계인데 어느 날, 미호가 임신을 하게 되어 휴가를 낸다. 여기에서 문제는 미호가 미혼이었다는 것에 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휴가를 주었으며, 미호는 출산 후 복귀했다. 이상한 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2년 뒤에 노모토와 결혼을 한다. 출산 후 결혼이라는 조금 이상한 순서로 전개되기에 네 명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즈음은 선 동거 후 결혼을 택하는 사람도 있기에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동거 중 아이가 생긴다면 출산 이후 결혼을 바로 했을 것이다. 미호가 왜 2년 뒤에 노모토와 결혼을 했을까. 다른 인물들처럼 아이가 노모토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직장 동료들이 봐도 아이의 얼굴은 노모토와 똑같았다고 한다. 점점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결말을 보고 나니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의 가부장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과거에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도 나기사가 생각했던 류의 결과로 흘러가는 내용을 보았던 것 같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가지관의 차이에서 나오는 아쉬움이었다.

전체적으로 흐름 자체가 너무 정형화되어 흘러가기에 좋았다. 일본 소설이기 때문에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헤매는 일이 많은데 이 소설은 매 이야기마다 네 명의 관계를 소개해 준다. 아마 세 번째 정도에 들어가니 대충 어느 지점에 인물에 대한 소개가 나올지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인물 이름을 헷갈리는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전개라고 생각한다.

스릴러의 큰 긴장감보다는 술 한 잔 마시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마치 네 명 사이에 나라는 솔로가 딱 끼어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나기사의 냉철하면서도 날카로운 추리는 소름을 돋게 하기도 했다. 마음은 편안하지만, 머리는 굴릴 수 있었던 그런 추리 소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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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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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최선을 다했으니 그들의 운명이겠죠. / p.18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운명을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점점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경조사를 챙기면서부터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생 함께 보낼 반려자와 생사의 갈림길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은 김정금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좋아하는 풍경의 표지가 먼저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바다 풍경의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다. 또한, 바다에 가면 무조건 찍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줄거리를 읽는데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가. 손이 안 가는 게 더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흥미로운 소재들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해수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다. 응급의학과에서 나름 능력을 펼치고 있는 10년차 의사인 해수는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이상한 증상을 느낀다. CPR이나 처치를 할 때마다 환자의 과거가 보이는 증상이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증상으로 환자를 살리지 못하게 되면서 사직서를 내밀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환자를 살리는 게 저주라고 하면서 한 아이가 원하는 무언가를 주어야 저주가 풀린다고 하는 스님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에 보았던 드라마의 배경이었던 병원이어서 술술 읽혔다. 읽는 내내 좋은 느낌으로 읽기도 했었다. 해수와 다른 주인공인 연화, 해수의 동생인 해인, 해수의 동료인 재하로 이어지는 네 명의 알 수 없는 운명을 풀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 네 명의 운명은 진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네명의 기구한 인연은 19년 전에 벌어졌던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 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는 원인 제공자가, 또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어 저주를 받기도,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도 한다. 희생되었던 이들에게는 기구하기는 하지만 큰 사건을 만든 원인을 제공한 자들을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그렇게 큰 사건을 통해 꼬인 운명의 실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연민과 알 수 없는 분노로 읽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아무래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이라는 배경을 가진 소설이면서 네 명의 인연을 다루고 있기에 운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온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해 종교, 국적, 성별 등에 차별없이 처치를 해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이를 어기는 모습이, 이무기와 염라대왕들은 선녀와 인간들의 선택에 대한 운명을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그렇다. 사실 신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소설을 보니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은 알지 못하는 신의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는 내내 도깨비를 주제로 한 드라마 하나의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모르기에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운명에 대한 소설이지만 살아가는 지금에 대한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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