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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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 / p.429

작은 대한민국의 나라에서 참 인재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만 보더라도 항상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10 위 전후의 성적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해 윤여정 배우님의 오스카상 수상, 여러 영화제에서의 수상 소식,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차트 1위 등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애국심이 불타오르기도 한다.

이 책은 김주혜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표지를 보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의 새로운 주역이라는 소개글이었다. 파친코를 읽지는 못했지만 관심이 생겼다. 박서련 작가님의 체공녀 강주룡 등의 한국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사람들의 1918년부터 시작해 1964년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주된 인물은 옥희와 정호, 한철이다. 옥희는 어머니와 함께 기생집의 하인으로서 갔다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기생이 된 인물이다. 마을에서 안 좋은 소문이 날 것을 염려해 어머니는 옥희를 기생집에 버리다시피 했고, 그렇게 옥희는 기생집의 주인이었던 은실의 보살핌으로 성장한다.

정호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아버지 남경수의 아들이다. 어려운 시대에 고아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던 중 거지들에게 속아 싸움이 벌어진다. 거지들의 무리와 싸워 이기게 되었고 얼떨결에 왕초의 자리에 오른다. 아이들을 다니면서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거나 가게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인생의 스승인 이명보라는 인물을 만난다. 명보에게 학습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독립 투사의 길을 걷는다. 

한철은 정호와 옥희에 비해 조금 나중에 나오는 인물이다.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인력거를 모는데 옥희와 연희가 한철의 단골이 되면서 등장한다. 그렇게 옥희와 사랑에 빠져 연애하는데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열심히 일하는 한철에게 옥희는 금전적인 지원을 해 주고 결국 자전거 수리공으로 취업한다. 이후에도 성수라는 인물의 도움으로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옥희가 모시는 단이라는 인물과 거지 무리의 미꾸라지, 영구 등 다양한 대한민국 사람들과 이토와 야마다 등의 악랄한 일본군도 등장한다. 이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길, 다른 성향, 다른 이유로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세 사람의 이야기 구도 중심에 또 새로운 주인공으로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무래도 중심이 되는 인물이 옥희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옥희의 서사를 중심으로 읽게 되었다. 옥희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주었다. 기생이라는 직업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지만 옥희가 살아왔던 삶은 너무나 지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한철을 향한 가슴 절절한 사랑이나 정호와의 우정, 그 우정과 다른 연화와의 우정, 단이를 향한 효심 등 옥희의 희노애락 자체가 너무나 감정적으로는 와닿았지만 이성적으로는 뭔가 배경 자체가 새로웠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중반에 이르러 정호라는 인물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옥희라는 인물도 중요한 서사를 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에 실린 이야기부터 정호와 일본인 순사의 인연으로 시작되기에 이 책의 주인공을 정호로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인 남경수가 일본인 순사를 호랑이로부터 구하는 이야기인데 이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 정호의 목숨을 구하는 어느 하나의 일이 되어 돌아온다. 이러한 인생의 큰 사건으로 주인공을 잡았다면 마음이 갔던 이유는 정호의 삶에 크게 공감했었기 때문이다.

정호는 거지들의 왕초 자리부터 시작해 독립 운동에 이르기까지 크게 일을 해온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사명감을 가진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어진 임무에 실패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명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동안 책이나 공부를 통해 익숙하게 보았던 인물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심보다는 명보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고자 임무를 처리했으며, 사랑하는 옥희를 지키는 마음으로 일을 하나하나 완수했다. 누군가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순수하게 독립을 외쳤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강주룡이라는 인물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와 반대로 한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성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쁘지 않았고, 결과도 한철이 원하는 수순으로 이루어졌지만 그의 삶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착실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온 인물이기는 하나 옥희와의 애틋한 사랑보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한 기회주의차처럼 보였다. 차라리 작고 사소한 의도로 시작했던 정호가 마지막에도 신념을 지켰던 게 오히려 더 크게 와닿았다.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입체적이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있는 인물이어서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일본군 순사이면서도 의리와 이성을 지켰던 야마다라는 인물도 꽤 매력적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온갖 악덕한 일들을 저지르는 이토라는 인물과 대비가 되었다. 또한, 의도하지 않는 사건으로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삶을 살아왔을 법한 월향도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가기에 이러한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삶의 아이러니도 느꼈다. 나라를 위해 애썼던 명보라는 인물이 정치적인 견해로 생각과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 누가 봐도 이기주의자였던 성수라는 인물이 친구인 명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도왔던 하나의 일로 무죄가 되는 게 화가 났다. 의도와 결과가 어찌 되었든 해석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세상이 참 얄궂다 라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옥희와 한철, 정호의 마음 아픈 사랑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일제강점기 사람들의 하나의 희노애락이 담긴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보다는 후자로 읽혀졌다. 조선의 아픈 역사에 담긴 작은 땅의 야수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는 점에서 쉽게 읽은 것과 별개로 마음의 여운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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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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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 p.119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설의 비율이 거의 2:1 수준으로 높은 편이었는데 한 가지 주제의 비소설을 몰아서 읽다 보니 최근에는 소설의 비율이 많이 줄었다. 심지어 이번 달만 보더라도 비소설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러다 소설 읽는 감이 사라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다시 소설의 맛을 느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메리 쿠비카의 장편 소설이다. 서두에 적은 것처럼 요즈음 본의 아니게 절대적으로 인문학이나 심리학, 법과 관련된 비소설을 많이 읽었다. 정보를 얻는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높지만 이렇게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다 보니 소설이 슬슬 끌리기 시작했다. 역시 소설의 맛을 들이기에는 추리나 스릴러 소설이 최고이기 때문에 고른 책이다. 거기에 심리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도 끌렸다. 머리를 환기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은 크게 등장 인물의 시점과 거기에 11 년 전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진행된다. 처음에는 비 오는 날 한 여자가 사라진다. 주인공인 메러디스는 요가 강사이자 산모도우미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일에 집중을 못한다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메러디스와 그녀의 딸인 딜라일라가 사라진다. 소리도 없이 사라진 두 사람을 찾기 위해 메러디스의 남편인 조쉬와 이웃 사람인 케이트는 메러디스의 고객과 산부인과 의사 등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계속 관찰하면서 실종 사건을 파헤친다. 메러디스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동네의 세 여자는 왜 사라진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심리 스릴러 소설이라는 장르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조금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었다. 메러디스과 조쉬의 서로 다른 불안, 메러디스 아들인 레오의 혼란스러움, 케이트의 따뜻한 마음 등 인물 중 단 한 명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정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마무리를 보기 전까지의 마음이었다. 결말을 보니 또 생각이 달라졌다.

또한, 모든 사람이 의심하게 되었다. 사건과 별개로 인물의 감정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용의 선상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혼란스럽게 하거나 빈틈을 보이면 메러디스와 딜라일라를 납치한 범인으로 보였다. 심지어 아내와 딸을 잃은 남편 조쉬조차도 그렇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찾는 경찰의 기분이 들었다. 

사건을 파헤치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 지점은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느꼈을 다양한 상황들이었다. 소설에서는 어두운 밤길을 다닐 때의 불안감과 임산부에게 무례한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 등의 사회적 이슈가 소설의 장치로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여성으로서 느끼는 이슈들을 생각하거나 경험했지만 진료라는 명분으로 했던 성적인 행위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인물들의 세세한 심리 묘사부터 사건을 끌어가는 스토리 텔링,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한 묵직함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 소설이었다. 이를 진지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닌 조금은 가볍게 툭툭 던졌다는 점에서 적당한 무게감까지 느껴져서 좋았다. 재미와 여운을 동시에 잡았던 소설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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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곁의 산 자들 -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배운 생의 의미
헤일리 캠벨 지음, 서미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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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보는 것은 애도하는 과정의 이정표이자 흔적이다. / p.132

항상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살지만 근원이나 궁금증을 가지고 산 적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 살아야 죽을 때 후회없이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주로 했었던 것 같다. 죽음은 늘 갑자기 찾아오고,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젊음과 나이를 맹신하는 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먼 미래로 느껴진다. 아마 지금 나이의 배 이상을 살아야 죽음이 가까이 오지 않을까.

요즈음 본의 아니게 죽음에 대한 도서를 많이 읽게 되는 편이다. 그러면서 조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면, 현재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근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또한, 죽음이라는 게 조금은 꺼내기 어려운 주제인 만큼 책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이 책은 헤일리 캠벨의 죽음에 대한 에세이이다. 개인적으로 이름 붙인 죽음에 대한 도서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느껴진다. 그동안 법의학이나 법정신의학 등 법과 관련되어서 사인을 파헤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면 조금 다른 직업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물론, 국내에서도 특수청소부나 유품정리사 등의 다양한 직업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이 다양한 직업군이 나오는 책이어서 궁금증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저자인 헤일리 캠벨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익숙하게 생각해 온 사람인 듯하다. 부모님께서 죽음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시지는 않았지만 관련 그림을 그리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비교적 익숙하게 봐왔다. 책에서는 아버지께서 그리신 시체 그림을 이면지로 사용해 학교 공부를 했었고, 이를 본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하셨다고 하니 조금은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던 저자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에 종사자들을 찾아간다. 비교적 익숙한 장의사와 책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해부병리전문가부터 조금 새롭게 느껴진 직업 사산 전문 조산사, 대참사 희생자 신원 확인자 등 총 열두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죽음에 대한 의미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들의 이야기와 저자가 눈앞에서 본 죽음들을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가 참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저자의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저자는 친구의 죽음과 길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동물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가 죽게 되었을 때에는 학교 재학생들에게 고개를 돌려 시체를 보지 못하도록 하거나 죽음을 신적인 내용으로 포장을 하는 등의 저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았다. 그런 부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고, 이러한 저자의 생각에 큰 공감을 했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아이들의 의견에 존중해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또한, 죽음 자체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뉴스를 포함한 매체와 주변 사람들의 죽음으로 보면 생각보다 죽음을 가까운 곳에서 자주 보게 된다. 물론,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입장에서는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 자체에 조금은 익숙해질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는 죽음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저자는 종사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죽음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각자 대답은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는 그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아무래도 이러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 죽음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익숙하면서도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알면서도 놀라웠다. 

많은 종사자의 이야기 중에서도 사형 집행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사실 사형 집행인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형을 할 때에도 사인이 살인으로 기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형 집행인은 이러한 일은 신이 시키신 일이며,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일에 대한 결과가 곧 죽음이기에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의 반박이나 죄책감에 대한 질문에서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저자가 느낀 것처럼 읽는 내내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부 숨기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을 돕기 위해 죽음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한 종사자들과 죽은 사람들에게도 예의와 기본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사람을 살리거나 돕기 위한다면 경찰과 소방관, 간호사와 의사 등 조금이나마 직접적으로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연구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게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으로 그리고 금기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에세이로 분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최소한 두 번 정도는 읽어야 온전히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재독이 필요할 것 같다.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책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생보다는 사에 익숙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과 생사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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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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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기 위해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 p.7

이 책은 경민선 작가님의 장편 소설이다. 제목부터 의문을 자아내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투명인간을 죽인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애초에 투명인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기에 더욱 시선이 갔던 것도 있다.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한수는 나름 먹고 살만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직업 하나 없는 인물이다. 부모님께서는 유학을 보낸다거나 연기자로서 학원에 보내주시는 등 한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주시고 있지만 한수를 믿지 못한다. 거기에 동생은 의사로서 승승장구하기에 더욱 대비가 된다. 바깥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만나는 자리에서 한수는 그저 한심한 무직에 불과했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공기업 등에 취업한 친구들은 한수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임에서도 메인은 되지 못했다. 메인은 전교 1등의 기영이라는 인물인데 아웃풋에 비해 트럭 운전을 하는 등 친구들이 안주로 생각할만한 삶을 살아간다.

모임에서 기영이에게 안부 문자를 보낸 한수는 답장을 받는다. 바로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는 기영의 부탁. 한수는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갔고, 기영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한다. 자신이 투명인간을 죽였다는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를 무시할 법도 한데 기영의 집에 있는 쇼파에서 진짜로 투명인간의 존재를 촉감으로 느꼈다. 그렇게 기영과 함께 한수는 죽인 투명인간을 처리했다. 이후 기영은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한수는 투명인간의 습격을 받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의 습격이 참 피부로 와닿았다. 한수의 입장이라면 더욱 공포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한 상상으로 나래를 펼쳤는데 애초에 기영의 도움에 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투명인간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서 한수는 기영에게 빚을 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상상을 하면서 읽으니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중반에 이르러 투명인간의 존재에 대해 나오는데 인간의 이기심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전쟁이나 권력으로 사람들을 학살하는 역사적 배경들이 떠올랐다. 권력을 견고히 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많은 사람을 희생하는 악인들과 그를 지지하는 약자의 존재를 다시 느꼈다. 줄거리와 내용을 떠나 그런 악한 행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기도 했다. 소설이 아닌 현실과 맞닿은 지점으로 보였다.

또한, 투명인간의 존재도 새로웠다. 단순하게 눈에 안 보이는 설정이 아닌 눈의 구조나 피의 색깔 등 디테일하게 묘사한 부분을 보면서 인간의 종을 가지고 있는 하나인 다른 생물체처럼 보였다. 마치 고양이과에 속한 사자처럼 말이다. 나름 상상이 가능한 묘사여서 뭔가 색다르게 투명인간을 바라보고 소설에 몰입되었다.

생각보다 얇은 페이지 수여서 한 흐름에 읽게 된 소설이다. 애초에 설정 자체가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킬링 타임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로 큰 영감을 받거나 교훈을 얻을 때도 있지만 소설 자체로도 흥미를 느끼는 게 또 하나의 매력이다. 이 책은 그 점을 충족시켜 주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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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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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더 좋다고 느꼈던 거야. / p.246

철학 도서로 스스로 되묻고 답을 찾는 과정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러한 활동이 깊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철학을 읽으면서 느낀 매력은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찾아서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읽으면서 봤던 철학자의 이름만 인지할 뿐 깊이 연구하거나 조사해 알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철학 도서를 읽는 사람치고는 많이 부족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 더 큰 이해를 위해 더욱 깊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사만다 로즈 힐의 한나 아렌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도서이다. 사실 철학 도서에서 종종 한나 아렌트 이름을 보았다. 소크라테스나 니체 등의 이름을 많이 보았고, 여성 철학자들의 이름은 거의 볼 수 없었다. 기억에서 몇 안 되는 이름 중 한 명이 한나 아렌트이다. 그래서 관심이 생겼다. 다들 어렵다고 해서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평전이라고 하면 배경 지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소 낯을 가렸던 한나 아렌트는 조용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아버지께서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고, 나치 시대에 다른 나라를 떠돌면서 일생을 보냈다. 미국에서 국적을 인정받기 전까지는 무국적자로 살아간 시간도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많은 시인, 철학자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이론과 다른 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거나 평론하는 삶을 살아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장은 유대인의 나라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대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해 모여서 삶의 터전을 이루자는 시오니스트들이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와 반대되는 입장으로 유대인들이 다양한 나라에 터전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보통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터전을 이루는 게 맞는 말이지 않을까. 유대인이면서 전통적인 시오니스트가 아니라는 점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부분도 정치적으로 봤던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밖에도 아이히만 재판을 보면서 악의 평범성과 사유의 불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아이히만은 나치 시대에 많은 사람을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는 뻔뻔한 말을 남겼는데 이를 보았던 한나 아렌트는 사유의 불능성이라는 근거를 들어 개인적으로 그를 심판한다.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하지 못한 무능력하다는 사유의 불능성이라는 내용 자체가 조금 어렵게 느꼈다.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한나 아렌트에 대해 이름만 인지할 뿐 이론이나 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한나 아렌트의 국적이나 배경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는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비교적 지금까지 읽었던 철학 도서에 비해 쉬운 내용이어서 전기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하이데거나 알베르 카뮈 등 익숙한 이름들도 보여서 나름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눈으로는 쉽게 글자가 인지가 되는 반면에 페이지는 쉽게 넘기지 못했던 책이었다.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느라 넘겨야 된다는 사실마저도 잊었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한나 아렌트의 삶을, 그리고 이 역사를 온전히 이해했는지에 여부에는 의문점이 든다. 책을 보면서 옆에 자연스럽게 검색 사이트를 두고 읽었지만 앞으로 더욱 알아가고 싶은 이론이었다. 이는 공부하면서 채워가야 할 몫이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면서 조용한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이 현실에 맞서 싸우는 행동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과 타인을 사유해 누구보다 분명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할 줄 아는, 누구보다 삶을 사랑할 줄 아는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는 큰 울림이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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