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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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발견됐을 때에도 누가 이렇게 치를 떨었으려나. / p.47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발전 속도에 맞는 또 다른 직업이 생성되고 있다. 그 많은 직업들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직업들을 제외하면 뇌리에 박히는 직종이 많지 많은데 신선하면서도 생각을 깊게 하게 만들었던 직업군들이 몇 가지 있다. 대부분 유퀴즈를 통해 만나게 된 새로운 직종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유품정리사와 특수 청소 전문가였다. 장례지도사나 법의학자 등의 직업들은 어느 정도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두 직종은 유퀴즈가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추세에 따라 생겨난 직종이기는 할 텐데 강하게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인터뷰를 하신 분들의 태도였던 것 같다. 사실 이름만 들으면 조금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릴만한 직종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들을 진심을 담아서 정리해 주신다는 생각과 종사자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쓸쓸한 길을 비추어 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마에카와 호마레의 장편 소설이다. 그동안 읽었던 죽음에 관련된 직종 이야기들은 비소설이었다. 관찰자의 시점이거나 종사자 개인의 입장에서의 이야기들이었는데 이를 소설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궁금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감정이나 생각은 비소설이 훨씬 더 와닿기는 했지만 소설로 보는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았다. 소설에서 오는 또 다른 감동을 느끼고자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와타루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이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한 술집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옷차림에 향을 풍기는 사사가와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와타루가 사사가와의 옷에 실례를 저지르면서 인연이 되어 사사가와가 대표로 있는 데드 모닝의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하게 된다.

데드 모닝은 특수 청소 회사로 고독사를 한 사람들의 공간을 청소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처음 갔던 장소에서 와타루는 고약한 냄새와 집주인의 무례한 말투, 조금은 직설적이고 까칠한 가에데라는 인물 등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이를 거절하려고 하지만 그것 또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야기는 의뢰를 받은 현장들에서의 일들을 각각 다루어 전개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데드 모닝이라는 회사 이름에 대한 순수한 의문이었다. 소설에서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데드(Death)와 모닝(Morning)이라는 단어의 조합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데드는 마지막을 뜻하고, 모닝은 시작을 말하는 건데 어떻게 이게 하나로 모여서 회사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 특수 청소 회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산뜻했다. 이와 반대로 회사의 사무실은 어둠으로 가득찬 환경이었기에 더욱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삶의 마지막을 보냈던 누군가의 공간에 새로운 시작을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라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리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인상 깊게 보았던 점인데 와타루와 사사가와의 성장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별하게 꿈도 없이 해파리처럼 살아가는 청년의 불안함이 와타루에게 보였기에 이에 대한 부분은 공감이 되었지만 데드 모닝에서 근무했던 아르바이트생으로서의 와타루의 성격은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아들의 산악용 신발을 거부하는 어머니께 끝까지 이를 안겨 주려고 했던 내용이나 사사가와의 어둠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했던 행동들이 조금 오지랖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타루가 현장에서 조금씩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인정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면서 이게 안 좋은 것이 아닌 서툴었기에 벌어진 일들이라는 사실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와타루가 사람을 좋아했기에 보였던 행동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한, 사사가와 역시 냉정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사사가와의 사연 자체가 너무나 공감할 수 있었고, 그의 잘못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와타루의 성장보다는 사사가와의 성장이 더욱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밖에도 중요한 상황에서 고민의 방향을 잡아 주었던 가에데의 역할은 참으로 멋있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마냥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아서 읽는 내내 밝은 마음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극적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체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집주인 또는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아파하지만 이를 삼키는 어머니, 가족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형 등 다양한 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자 이웃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소설에서는 뻔한 클리셰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역시 너무 현실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도 평범한 이야기가 가진 힘은 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낀 이야기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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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형제들
아민 말루프 지음, 장소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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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서는 판단을 유보한다. / p.109

어느 순간부터 리뷰를 적을 방향을 생각하면서 적는 습관이 생겼는데 책을 읽고 나서도 가닥이 잡혀져 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작가의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이다. 전에 언급했던 듀나 작가님의 작품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다. 아무래도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결점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스스로 의심을 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두 번째는 생각했던 부분과 전혀 다르게 철학적인 의미를 지니는 경우다. 어떻게 보면 철학 도서를 읽을 때처럼 리뷰를 하지 않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줄거리, 인물의 성격 등을 가지고 철학적인 내용을 도출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느낀다. 과연 이렇게 적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이 또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 읽으면서 큰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중간에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혼란스럽다.

이 책은 아민 말루프의 장편 소설이다.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이라는 제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있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박경리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이다. 노벨문학상처럼 누구나 아는 상이 아니면 대부분 한국적인 이름의 상들은 한국 작가들이 많이 받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누가 봐도 외국 이름의 작가라고 하니까 관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세계문학상이라는 상 이름만 봐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텐데 편견이 곧 호기심의 원인이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알렉이라는 인물은 대서양에 위치한 안타키아라는 섬에 거주한다. 아버지께서 섬 전체를 구입하면서부터 집안의 소유가 되었는데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그곳에서 화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유일한 주민일 줄 알았던 알렉은 거주민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브라는 삼십 대의 여성이었으며, 소설가라고 한다. 그곳에서 알렉은 라디오에서 들리는 이상한 신호로 세계의 위기를 알게 된다. 이를 기회로 에브와 친해지게 되며, 안타키아 섬 거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공과 오래된 친구인 모로를 통해 인간보다 더욱 발전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만나고 이들과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 읽으면서 철학적인 내용에 많이 당황스러웠던 소설이었다. 갑자기 아가멤논을 비롯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으며, 블랙아웃을 일으키거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들을 보면서 그들을 마치 종교처럼 따르는 인간들의 모습이 참 알 수 없는 감정을 들게 했다. 가벼운 내용의 이야기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 어지럽게 했다. 과연 이렇게 위대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의지하게 되었을 때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피해와 결과는 어떻게 된 것일까. 소설의 내용 중간마다 화자인 알렉으로 하여금 독자들에게 이러한 메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문명 발전의 무서움을 인지시켜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 사람들은 병을 낫게 만드는 모습이 곧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과 질병이라는 이름을 지운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한 아이러니가 되는데 이를 지운다면 과연 사람들을 삶을 살아갈 이유가 생기는 것일까. 극중 위대한 능력을 지닌 엠페도클레스의 일원이었던 아가멤논도 이를 우려하면서 빨리 철수할 것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물론, 소설에 등장한 이유는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근본적인 이유는 비슷한 결이라고 보였다.

에브의 모습은 다소 위험하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전형적인 맹목적인 믿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알렉과 모로 등의 인물은 각자의 이유로 이를 철학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거나 우려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섬 사람들 역시 상황에 따라 이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믿음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은 어느 이들이 떠올라서 경계의 필요성이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물론, 정치적인 흐름에 따라 이동했던 섬 사람들 역시도 위험했다.

리뷰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 어려운 책 중 하나였다. 철학적인 물음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의료 발달과 발전으로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상을 보면서 소설의 이야기가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죽음이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직 답은 잘 모르겠다.

철학적인 여운이 남는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거기에 페이지 수도 얇기 때문에 술술 읽혔다. 하루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생각 거리를 만들고 싶거나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만족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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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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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하는 부적이 된다. / p.84

어렸을 때에는 은행 광고를 많이 보았다면 중학교 이후로부터는 생각보다 저축 은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광고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저절로 CM송을 따라서 부를 만큼 노래도 참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때 이러한 친근함을 주는 광고가 개인의 부채를 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들이 나왔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차무진 작가님의 단편집이다. 부제의 라이프 앤 데스 단편집과 다른 제목이어서 눈길이 끌었다.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소설인데 거기에 대부 업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라니 말이다. 단편집 제목 중 하나가 이 제목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내용이 참 궁금해졌다. 

단편집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통해 총 여덟 편의 소설이 등장한다. 구전으로 듣는 듯한 먼 시대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 들어도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죽음을 표현하는데 묘하게 느껴지는 소설이 있고, 너무나 생생하게 공감이 되는 소설도 있었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부 소설은 읽으면서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일부 소설에서는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참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마포대교의 노파와 아폴론 저축은행이라는 작품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마포대교의 노파는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두 경찰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자살을 동요하게 만드는 노파를 감시해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박 경사와 김 순경이 등장하는데 박 경사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만한 인물이다. 경찰 내에서도 왕따인 인물이었는데 마포대교를 감시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의 파트너로 김 순경이 자원한다. 박 경사는 사실 귀신이 보이는 인물이었고, 노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반드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는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이후 박 경사의 능력으로 확인을 해 보니 사실이었고 김 순경은 이를 막을만한 묘책을 세워 사람들의 자살을 막는다.

사실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김 순경의 아이디어로 관부의 상징이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부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김 순경의 모습을 보면서 직업적인 열정이 느껴졌지만 가장 크게 와닿은 포인트는 박 경사의 비밀과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감정이었다. 노파의 모성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코미디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전개가 되었는데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 뭔가 이름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들 또는 딸이라는 생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지키지 않았을까 싶다.

표제작인 아폴론 저축은행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첫째 아들은 아픈 상황이며,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빚을 지고 있다 보니 택시 기사로 겨우 먹고 살고 있는 듯하다. 빚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자살까지 시도했으나 결국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이를 포기한다. 그렇게 절망에 살고 있던 어느 날 남자의 택시에 한 노인이 손님으로 탄다. 그 노인은 이상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아폴론 저축은행으로 남자를 인도했다. 거기에서는 빚을 빌릴 수 있다고 했는데 은행에서 상담을 받고 보니 남자에게 9 억 5 천만 원을 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나중에 남자에게 10 억의 돈이 들어올 예정이며, 미리 돈을 준다는 것이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설 내용이었다. 미래에서 받을 돈을 미리 받을 수 있다는 소재 자체가 참 독특했다. 사람의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에 돈이 어디에서 나올 줄 알고 이를 예상해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일까. 거기다 남자의 경우에는 도저히 돈이 나올 구석이 없었다. 처음부터 뭔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결말을 보고 참 많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남았다. 과연 나에게 미래의 돈 10 억을 미리 끌어서 빌려 준다고 하면 수락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난 이후 나의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동안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었던 소나기가 떠올랐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이의 이야기, 라면과 떡볶이에 빠진 과거 옛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전혀 죽음이 떠오르지 않는 주제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새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부제 그대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단편집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느꼈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무거우면서도 가라앉는 느낌을 주었다. 

책을 덮으면서 삶과 죽음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죽음이라고 하면 조금은 멀게 느껴졌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보다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일까.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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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은 채, 버찌관에서
레이죠 히로코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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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도 역시 나였던 건가. / p.196

버찌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동시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에서 배웠을 이야기이다. 한 아이가 돈의 개념을 모른채 가게에 가서 사탕을 구매하고 주인 아저씨께 버찌씨를 주었는데 몇 개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거스름돈으로 아이에게 쥐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과서로 읽었던 내용인 것 같다. 당시에는 버찌 열매라는 개념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린 아이의 동심을 지키는 것과 함께 돈에 대한 관념도 알려 주었다는 측면에서 참 멋있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시절부터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진짜 어른이 된 지금은 어린이와 비슷한 정신 연령으로 늘 부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레이죠 히로코의 장편 소설이다. 늘상 말하는 것이지만 집이 배경인 표지의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마도 팍팍한 일상에서 소설로나마 위안을 받고 싶은 무의식이 먼저 고르게 되는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리지는 하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대부분 큰 힐링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들을 고르면 비슷한 표지의 소설들이 많이 모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어릴 때 큰 영감을 주었던 버찌라는 단어까지 합쳐지니 더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사츠타는 대학을 휴학한 채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가이기는 하지만 크게 히트를 쳐서 전업 작가의 길로 가기에는 뭔가 부족한 인물이기도 하다. 부모님께서도 이러한 사츠타를 걱정하고 계시는 듯하다. 집에서 소설을 집필한다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먼 친척 할머니 댁의 관리인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 할머니께서는 병원에 입원 중이시기에 혼자 거주하면서 이것저것 집 관리를 하면 되는데 한적하게 소설을 집필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수락한다.

혼자 여유롭게 작가로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갑자기 열 살 정도 된 아이 리리나가 등장한다. 할머니의 손녀로서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할머니께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 관리와 함께 아이의 양육을 도맡게 된 사츠타는 리리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특히, 리리나는 어떻게 보면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로 사츠타를 마치 종 부리듯이 대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이를 보호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리리나의 아버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또 다른 생각에 미친다.

비교적 200 페이지 내외의 짧은 소설임에도 장르가 휙휙 바뀌는 게 조금은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독백으로 시작할 때에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으며, 중반 이후에 사츠타에게 사건이 벌어지면서부터는 스릴러의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리리나를 보면서 없는 부성애를 느끼는 이야기에서는 뭔가 핏줄보다 진한 정으로 연결된 가족 이야기인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소설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조금 묘했다.

읽는 내내 리리나의 행동 자체가 불쾌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다. 소설 속의 사츠타는 대학교 휴학 중이지만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 정도의 인물로 그려진느데 자신보다 열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조금은 무례하게 대한다. 심지어 반말까지 하는데 장유유서와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사람으로서 불편했다. 그러나 리리나의 태도가 사츠타가 할머니 댁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겠다는 고민이나 감정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아마 누가 봐도 예의가 바른 리리나였다면 굳이 사츠타의 손이 필요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후반에 이르러서는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끝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사츠타에게서 리리나의 존재는 단순히 먼 친척의 손녀 또는 자신이 돌봐야 했던 아이가 아니었다. 벌어진 사건 이후 사츠타의 죄책감이 인간의 형태로 온다면 리리나이지 않을까. 사츠타의 행동이 곧 그렇게 반영이 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힐링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읽게 된 책이었지만 장르의 전환과 함께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조금은 깊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혈연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인간애를 가지고 누군가를 지키고 싶고, 본의 아닌 사건에서도 상대를 향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생각보다 인간은 선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 점에서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인간애의 힐링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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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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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우리는 달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던가. / p.384

여우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우의 모습보다는 귀신의 형태로 떠올랐던 것 같다. 직접 보기 전까지 어르신들의 말씀과 매체에 비추어 볼 때 여우는 그저 구미호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우의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위에서 여우라는 동물보다는 구미호라는 귀신을 더욱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정관념이 잡혔다.

그러다 요즈음 아이돌 덕질은 또 멤버들을 하나의 동물 이모티콘으로 정한다고 하던데 마침 당시 좋아하던 아이돌 멤버의 이모티콘이 사막여우였다. 그때 처음으로 여우의 모습을 검색했고, 여우의 실물을 한 달 전 조카들과 갔던 동물원에서 처음 보았다. 생각보다 귀엽고 너무 예뻤다. 내가 여우라면 구미호라는 귀신이 여우의 모습을 띈 것에 대해 억울하거나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은 캐서린 레이븐의 에세이이다.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어 주었다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다. 언어를 모르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속담 중 하나인 소 귀에 경 읽기가 떠올랐다. 그게 또 묘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연구원과 대학 교수 등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의 재력과 명예를 가진 저자는 야생동물이 넘치는 어느 오두막으로 이사를 간다. 물론, 오두막에 거주하면서도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우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돌보는 일에 집중한다.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여우와의 우정과 그 이상을 다루고 있다. 인간과 여우의 관계가 무엇보다 잘 드러나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여우를 의인화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헷갈리는 구석이 있는데 여우를 그 또는 그녀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중간에 생각이 잠시 다른 길로 새게 된다면 흐름을 놓칠 정도이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참 적응이 안 되었고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읽으면서 여우를 하나의 동등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여우를 인간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나오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는 조금 모순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여우에 대한 저자의 태도이다. 저자가 야생동물에 대한 시민 수업 비슷하게 진행하면서 여우에 대한 이야기를 참 조심스러워한다고 느껴졌다. 여우에 대한 언급을 하게 되니 수업 참여자들은 여우가 곧 애완 동물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후반에는 여우와 사귄다는 게 뭔지 되묻는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저자의 행동들이 어떻게 보면 여우를 애완 동물로서 키운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거주하는 오두막에 여우를 들여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더불어, 저자는 여우가 들고양이들의 습격을 당할 때나 다른 동물로부터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았다. 분명 친구라고 표현을 했는데 너무 야생에 던져 두었다. 계란의 노른자나 다른 것들을 이용해 여우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것은 맞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 역시도 의아하면서도 강렬하게 남았다. 아무래도 야생이나 생물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여우가 야생에서 살아갈수록 사이드 측면에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여우를 집으로 들여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자주 등장한다. 어린왕자 모자에 대한 내용과 이슈메일의 가치관 등을 비교하는 글을 보면서 저자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왕자에 비해 전문적이고, 모비 딕에 비해 따뜻했다. 처음에는 이슈메일과 저자의 공통점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고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슈메일과 여우에게 어느 순간을 걸었던 저자의 교차점이 보였다. 어린왕자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모비 딕이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아무 생각 없이 읽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어린왕자와 모비 딕을 감명 깊게 읽었던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권 중 하나만 읽었던 나에게도 분명히 생각할 지점이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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