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 - 1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조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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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귀갓길 버스를 차분하게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 p.17

사실 인생 문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아하지 않았다. 이는 대학교 때까지도 이어진 생각이어서 좌우명을 크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서부터 인생 문장을 고를 기회가 생겼다. 특히, 자기소개서의 한 줄이 중요하다고 해서 인터넷을 내내 검색하면서 최대한 어울리는 문장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생계형 인생 문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와닿는 것보다는 멋있는 것으로 골랐는데 그때는 눈으로 보았던 문장이 지금은 마음에 깊이 남아서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 문장은 중국 명언 중 하나로 "不怕慢, 只怕站.(불파만 지파참)"이다.

이 책은 조희 작가님의 인생 문장에 관한 책이다. 이미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좋은 글을 보면 그만큼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많은 글을 보고 싶어 선택하게 된 책이다. 무엇보다 표지에 있는 일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문구가 가장 와닿아서 읽게 되었다.

총 365 가지의 인생 문장이 있다. 한 면에 문구와 관련 내용이 적혀 있는데 부담 없이 하루에 하나씩 딱 읽기 좋았다. 좌측에는 세 개의 체크 박스가 있는데 읽고, 결심하고, 인생 문장으로 삼기에 대한 표시를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선인들의 이야기도 있으며, 아예 초면인 다양한 사람들의 한 문장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문장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첫 번째 문장은 214 일의 문장으로 "글쓰기에는 우연이 없고, 세상일에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사이토 다카시의 한 문장이다. 사실 작가을 비롯해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재능이 크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삼십 분에 작사를 완성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와 반대로 많은 책을 쓴 작가의 말이어서 마음에 와닿았다. 조급함을 버리고 순서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문장은 "책을 읽는 데에는 소통할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눌 여유가 필요하다."라는 채석용 님의 한 문장이다. 그동안 혼자 책을 읽는 것에만 몰두하다 올해 여름부터 독서 모임을 하면서 시선이 넓게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독서로부터 편견이 깨지는 느낌도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졌던 생각이 더욱 쾌감을 주었는데 이를 딱 표현한 문장이어서 인상 깊었다. 

리뷰를 위해 읽게 된 책이지만 하루하루 필사를 하거나 매일 한 장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습관을 기르거나 루틴으로 삼을 수 있는 구성이었다. 일년은 사람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인 만큼 도전하면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주었던 든든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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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 잘 살려고 애쓸수록 우울해지는 세상에서 사는 법
고태희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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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담사 앞에서 울고 또 울었다. / p.95

주변 사람들에게는 터놓지 못한 이야기 중 하나가 나의 감정과 기분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섣불기 희노애락을 말하기 조금 껄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았을 때 상대방이 우울하거나 슬프다고 했을 때에 어떻게 반응을 해 주어야 할지 난감하기에 섣불리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고태희 작가님의 에세이이다. 힘들 때마다 힘을 내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제목부터가 공감이었다. 요즈음 들어서 하게 되는 생각들 중 하나가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할수록 우울의 늪으로 빠진다거나 자책을 많이 하게 되는 일이었다. 감정의 폭이 그렇게 넓거나 깊은 편이 아닌데 이런저런 어수선한 생각으로 가라앉을 때가 많다 보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읽게 되었다.

총 다섯 편의 큰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떠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계기로 우울증이 찾아온 이야기, 병원에 찾아간 일, 우울의 원인, 우을증과 마주하게 된 것, 우울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달래는 방법이라고 읽혀 졌는데 저자는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던 중 회사 직원의 언행으로 마음의 병을 얻어 퇴사했다고 한다. 정신과에서 2형 양극성 정동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는데 과거 어렸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이야기와 우울을 비롯한 관련 증상에 대해 적은 글이다. 저자가 걸어온 길, 그리고 그동안 받았던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까지도 오롯이 와닿아서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 역시도 겪었던 감정이기에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두 가지 내용이 인상 깊었으며, 한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점 첫 번째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트라우마 에피소드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의 추천으로 반장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이 되었다. 바로 이어진 부반장 선거에도 추천을 받았으나 거절했는데 이후부터 선생님께서 저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친구들이 가장 꺼려하는 자리에 저자를 앉히거나 체벌을 할 때에도 원인 제공자를 저자에게 돌려 친구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점이 어린 저자에게는 큰 상처이자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행동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유를 보고 나니 더욱 답답한 느낌이었다. 어릴 때 상처는 평생을 안고 간다고 하는데 이 책을 본 선생님들이 계시다면 조금은 깊게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인상적인 점은 블리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외할머니 댁에서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댁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 큰 안정을 주었다는 내용인데 회복 탄력성과 함께 블리스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책에서는 정여울 작가님의 말을 인용했는데 읽으면서 나의 블리스는 무엇일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의 마음을 다스리거나 불안을 경감시켜 줄 공간이 없었던 것 같다. 블리스를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의 생각은 깊은 공감이었다. 저자의 가정 환경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나름 비슷하게 지내왔던 것 같다고 느껴졌다. 가족의 첫째로서 부담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이나 어린 나이에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되는 부분이 그랬다. 또한, 아버지와의 불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나 역시도 청소년기를 넘어서부터 아버지와 종종 트러블이 있었다. 아버지와의 거리를 멀리하고자 고군분투했었던, 그로부터 상처를 받았던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 크게 와닿았다. 성인이 된 지금은 아버지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현재 따로 나와 살고 있기에 크게 부딪힐 일이 없지만 말이다. 

우울증에 대해 다룬 책이지만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책 자체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적나라한 기록이기 때문에 조금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 사람들이라면 피부로 와닿을 법한 내용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요즈음 시대에서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한 질병일 테니까 말이다. 

기껏 이 책 한 권으로 저자의 인생을 보았지만, 온전히 저자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울증이라는 긴 터널을 보내고 있는 저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또한, 한편으로 저자의 적나라한 고군분투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 또한 큰 용기일 테니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날것의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에 우울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뜻깊은 독서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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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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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질투는 끝이 없다. / p.140

그저 활자 읽는 것이 좋아 책을 소장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마치 아이돌 음반을 모으는 것처럼 선호하는 작가의 전작을 전부 모은다거나 출판사의 세계 문학 전집을 모은다는 게 그렇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조금씩 모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광적으로 모은 적은 없었는데 책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책 덕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모으고 있는 시리즈가 생기기도 했다.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 소설이다. 책 덕질의 새로운 장을 보게 해 주었던 작가여서 당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돌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두터운 팬덤 층이 있는 작가로 알고 있다. 전에 서평단을 통해 인내 상자라는 작품을 읽었는데 꽤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덕질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고자 주저없이 도전하게 되었다.

크게 3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은 아기를 점지해 준 하나의 그림과 그로부터 벌어지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한 부부가 아이를 생기게 해 준다는 그림을 손에 넣었다. 아이 탄생의 기쁨을 얻었지만 이것도 잠시 곧 아이가 세상을 떠난다.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부부는 그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기타이치와 주변 인물들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후 두 번째 이야기는 기타이치를 비롯한 인물만 그대로 이어가는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 자체가 문화적으로 다른 부분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기에 어색했는데 에도 시대라는 시간적 배경까지 겹치면서 처음에는 소설의 배경 자체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줄거리와 흐름 정도만 인지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25 % 정도 지점에서부터 조금씩 이해의 속도가 붙어서 몰입할 수 있었다. 이는 인내 상자와 읽었을 때도 같은 방향과 느낌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소설에 드러난 문고 장수에 대한 직업이었다. 주인공인 기타이치는 문고 장수를 업으로 삼고 있는데 생소하게 느껴져서 초반에는 설정 자체가 어려웠다. 거기에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과도하게 머리에 입력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사건이 전개된 이후에는 오히려 득이 되었다. 직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타이치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사건에 몰입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아기를 부르는 그림이라는 것도 문고 장수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었기에 주변 관련 인물들과 해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책과 관련된 과거의 직업이라는 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웠다.

두 번째는 2 장에서 등장하는 사건이었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도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음에 와닿았던 소설은 2 장부터 등장한 짱구 머릿속에 든 것이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물론, 게이샤 등의 일본 특유의 배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추리 소설로서의 묘미를 더욱 더 강하게 받았다. 거기에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을 질투라는 감정을 이용해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 있게 와닿았는데 인물 한 명이 유독 추하게 느껴졌다. 사실 질투라고는 하지만 사견을 조금 보태자면 사람을 향한 질투보다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자들을 향한 자격지심에 더욱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편집자 후기이다. 인내 상자에서 편집자 후기의 덕을 톡톡히 본 독자로서 기대가 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편집자 후기 파트였다. 포스트잇에 적힌 편집자님의 친필 편지부터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독자 의견을 반영해 미야베 미유키 월드의 소설들을 정리해 주신 파트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 후기를 보고 나니 미야베 미유키 월드의 일원으로서 더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편집자님의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점지해 주는 그림이라는 소재 자체가 참 흥미로운 상상력이었다. 거기다 아이를 점지해 주는 변재천이라는 신이 변심한다는 설정은 더욱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들게 했다. 마치 변재천이 아이를 도로 데리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이야기에 맞게 삼신 할매가 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는데 초반 지식에 대한 핸디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은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과 이를 전개하는 필력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미야베 미유키에 열광하는지 새삼스럽게 피부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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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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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의 유대는 공기보다 가벼웠다. / p.77

영상 매체 원작 소설이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무래도 영상과 활자를 비교해서 보는 재미를 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모르는 작품이어도 시선이 고정되는데 이미 영상으로 봤던 작품이라면 더욱 몰입한다. 머릿속에 명장면들이 펼쳐지면서 이를 글로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온다.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중에도 그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게 병이라면 병인 듯하다.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을 고른 이유는 가장 눈에 들어온 영화 한 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추천을 많이 받아서 보았던 캐롤이었다. 영상미가 뛰어난 작품을 좋아하는 터라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데 소설로 읽기 위해 당시 구매까지는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방치하다 결국 중고 서점에 팔았던 기억이 있다. 캐롤의 작가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을 읽고 취향에 맞는다면 캐롤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읽게 되었다.

책에는 몇 장 정도의 소설부터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소설까지 다양한 분량의 소설 총 열여섯 편이 실려 있다. 인상에 깊게 남는 작품도 있었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초반에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꽉 막힌 결말을 선호하는 편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마무리 방식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읽으면서 물음표를 내내 달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스타일을 인지한 이후부터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반에 실린 작품보다는 중후반에 실린 작품에 마음이 갔다. 그 중에서도 <시드니 이야기>, <영웅>, <달팽이 연구자> 세 작품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꽤 흥미로웠다. <시드니 이야기>는 시드니라는 이름을 가진 거미 이야기이다. 시드니는 매일 파리만 주는 어머니께 반찬 투정을 하다가 독립을 선언해 다른 곳으로 떠난다. 떠나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시드니에게 파리를 주었는데 젊음의 패기인지 그것조차도 거부하면서 큰 거미줄을 친다.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시드니에게 사건이 펼쳐 진다. 수록된 작품 중에서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 공감은 가장 크게 되었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해피엔딩이 아닌 불완전한 준비로 부모님을 떠나갔던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독립을 그렇게 바라던 어린 시절 생각도 들었다.

<영웅>은 시골로 취업한 한 가정 교사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가진 광적인 병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음에도 광기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불안함을 가지고 시골의 한 부자 저택으로 취업한다. 그곳에서는 두 아이와 친절한 부모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정 교사를 하면서 무엇보다 열심히 아이들을 돌본다. 주인공은 광기를 경계하면서도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가장 섬뜩했던 작품이었는데 처음에는 주인공의 마음이 와닿았다. 가족이 없는 자신에게 일거리와 돈, 거처를 제공하는 고용주에게 충분히 감사함을 느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반에 이르러 주인공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의사의 말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행동이 곧 돌이킬 수 없는 연극 무대을 꾸미는 배우처럼 느껴졌는데 이상하게 현실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 연구자>는 달팽이를 키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달팽이가 교미하는 모습에 반해 서재에서 달팽이를 키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달팽이에게 집중해 교미를 보거나 연구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가족들은 밟게 되거나 냄새가 난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결국에는 이 또한 포기했다. 결국 서재가 곧 달팽이의 방이 되었다. 주인공의 일이 많아지면서 달팽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아내는 서재를 들어가보라는 말을 한다. 아이돌이나 책 등 무언가에 미친듯 몰두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광기로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특히, 결말이 참 충격적이었는데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작품을 읽고 나니 이성까지도 지배가 된다면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교훈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밖에도 신비로우면서도 어두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파멸과 욕망, 광기 등의 어두운 면을 확 이끌거나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어서 여러 의미로 인상적이었다. 원래 어두운 소설 자체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철학적인 물음과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 소설 곳곳에 녹아 있어서 좋았다. 어둡다고 해서 무조건 우울하지 않다는 증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운 상상력이 활자로 표현된다면 이 소설이 떠오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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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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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비행기를 타고 이륙한 적은 없다. / p.10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갑이거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과 공감 형성이 더 잘 되다 보니 친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주변 친구들 중에는 동년배가 많다. 거의 동갑 친구들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서로 힘든 고민이나 신세한탄을 같이 털어놓으면서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때가 많아 그만큼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친한 사람들을 보자면 동년배와 한참 거리가 멀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상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 등 연배가 다른 분들과 어울릴 일이 많다. 회사 이야기를 터놓는 상대만 보더라도 어머니 연세 또래의 상사와 위로 열 살 정도 많은 입사 동기가 그렇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회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는 측면에서 가족과 더욱 가깝다. 그것 또한 하나의 친구이지 않을까.

이 책은 매리언 크로닌의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에 압도되어 고른 책인데 청소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과 노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의 우정이 궁금했다. 친구 사이에서는 나이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산이 꽤 오래 변화하는 차이라면 조금은 거리감이 들지 않을까. 두 사람의 진정한 우정이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레니로 시한부 환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시한부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정보가 없으면 평범한 청소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과 행동에 거침 없이 솔직하다. 신부에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난처한 질문을 던질 줄 알고, 간호사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레니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마고로 아픈 노년의 인물인데 연세에 비해 당차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생각보다 활동적이기도 하다. 마고 역시도 레니 못지 않게 과거가 있는 인물로 누구보다 레니를 끔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레니와 마고는 병원 미술실에서 만난 인연을 계기로 친구가 된다. 도합 백 살의 친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같이 이루기로 한다.

처음에는 레니의 상황에 몰입하면서 읽었다. 겉으로 보면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간호사의 도움 없이는 성당에 계시는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아프다는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 특히, 초반에 성당 신부님께 왜 죽어가야 하는지 묻는다거나 하나님은 왜 대답을 해 주시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는 모습은 참 공감이 되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시한부의 삶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년 환자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져서 더욱 안타깝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마고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단순하게 레니와 마고가 병이 있다는 공통점 외에도 참 많은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니가 느꼈던 그리움 또는 외로움, 마고가 느꼈을 죄책감 등 과거에 있었던 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감정 자체가 하나로 묶인 듯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마치 오래 만난 친구처럼 서로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는 모습들은 뭔가 모르게 뭉클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서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라는 작품이 많이 떠올랐다. 아마 그 소설의 주인공인 지연이 그 나이 그대로 돌아간다면 새비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곧 레니와 마고의 사이처럼 되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물론, 밝은 밤은 4대로 이어지는 가족 역사의 이야기라는 점이 큰 틀 자체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밖에도 인물들은 레니의 진심을 알아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는 레니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대답해 주었던 성당 신부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직업 의식이 조금 부족한 듯 보여도 항상 레니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신규 간호사, 나중에는 다른 인연으로 만나 마고와 레니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계약직 직원까지 누군가 보면 철이 없다고 느낄 청소년 레니에게 소중한 인연들이 되어 주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친구를 만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향한 진심만 있다면, 그리고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로 다시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의 우정만큼은 한겨울을 녹이기에 뜨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로 추운 겨울에 읽게 되어서 더욱 다행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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