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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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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 비행기를 타고 이륙한 적은 없다. / p.10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다는 점에서 동갑이거나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과 공감 형성이 더 잘 되다 보니 친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주변 친구들 중에는 동년배가 많다. 거의 동갑 친구들이 대다수이기도 하다. 서로 힘든 고민이나 신세한탄을 같이 털어놓으면서 연대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때가 많아 그만큼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친한 사람들을 보자면 동년배와 한참 거리가 멀다. 특히,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상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 등 연배가 다른 분들과 어울릴 일이 많다. 회사 이야기를 터놓는 상대만 보더라도 어머니 연세 또래의 상사와 위로 열 살 정도 많은 입사 동기가 그렇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지는 않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회사에서 나름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는 측면에서 가족과 더욱 가깝다. 그것 또한 하나의 친구이지 않을까.
이 책은 매리언 크로닌의 장편 소설이다. 줄거리에 압도되어 고른 책인데 청소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과 노년기를 보내는 한 사람의 우정이 궁금했다. 친구 사이에서는 나이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산이 꽤 오래 변화하는 차이라면 조금은 거리감이 들지 않을까. 두 사람의 진정한 우정이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레니로 시한부 환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시한부와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정보가 없으면 평범한 청소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말과 행동에 거침 없이 솔직하다. 신부에게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말이나 난처한 질문을 던질 줄 알고, 간호사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레니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으며,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마고로 아픈 노년의 인물인데 연세에 비해 당차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생각보다 활동적이기도 하다. 마고 역시도 레니 못지 않게 과거가 있는 인물로 누구보다 레니를 끔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레니와 마고는 병원 미술실에서 만난 인연을 계기로 친구가 된다. 도합 백 살의 친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같이 이루기로 한다.
처음에는 레니의 상황에 몰입하면서 읽었다. 겉으로 보면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간호사의 도움 없이는 성당에 계시는 신부님을 만나러 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아프다는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 특히, 초반에 성당 신부님께 왜 죽어가야 하는지 묻는다거나 하나님은 왜 대답을 해 주시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는 모습은 참 공감이 되었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시한부의 삶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년 환자라고 하지만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져서 더욱 안타깝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마고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단순하게 레니와 마고가 병이 있다는 공통점 외에도 참 많은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니가 느꼈던 그리움 또는 외로움, 마고가 느꼈을 죄책감 등 과거에 있었던 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감정 자체가 하나로 묶인 듯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이 마치 오래 만난 친구처럼 서로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는 모습들은 뭔가 모르게 뭉클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보면서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라는 작품이 많이 떠올랐다. 아마 그 소설의 주인공인 지연이 그 나이 그대로 돌아간다면 새비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곧 레니와 마고의 사이처럼 되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물론, 밝은 밤은 4대로 이어지는 가족 역사의 이야기라는 점이 큰 틀 자체가 다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느끼게 했다.
그밖에도 인물들은 레니의 진심을 알아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는 레니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대답해 주었던 성당 신부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직업 의식이 조금 부족한 듯 보여도 항상 레니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신규 간호사, 나중에는 다른 인연으로 만나 마고와 레니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계약직 직원까지 누군가 보면 철이 없다고 느낄 청소년 레니에게 소중한 인연들이 되어 주었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친구를 만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향한 진심만 있다면, 그리고 마음을 열 수 있다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로 다시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뛰어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그들의 우정만큼은 한겨울을 녹이기에 뜨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로 추운 겨울에 읽게 되어서 더욱 다행이라는 느낌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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