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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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위에 선 인간뿐이다. / p.336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한국 작가님들 중에서는 도장 깨기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이 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부족할 정도여서 예전 작품부터 현재 신작까지 하나하나 읽기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세계관을 읽으면서 나름 위안이 되거나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것 또한 하나의 덕질일까 싶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위주로 읽는 편이었는데 올해부터 일본, 영미, 더 나아가 중국과 낯선 나라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부터 선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서양 문학은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큰 편이기에 작품 자체가 와닿을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을 섭렵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읽은 외국 작품은 첫 작품들이어서 다른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해외 작품들 중에서 작가까지 눈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다. 서양 작가 중에서는 앤디 위어가 유일하고, 일본 작가 중에서는 두 명이 있다. 사실 한 명의 작가는 하나씩 섭렵하는 중이어서 조만간 한국에 나온 작품을 거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읽었던 한 권의 장편 소설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그 자체로도 최애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바로 다른 작품을 구입했었고, 내년에는 시리즈로 나온 소설을 구매해 읽을 계획까지 세울 정도이다.

이 책은 몇 안 되는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이케이도 준의 장편 소설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인데 서평단으로 읽었던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너무나 좋았다. 곧 구매한 다른 작품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우연히 출판사 이벤트로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 한자와 나오키, 변두리 로켓 등은 어느 정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물로 받은 작품은 처음 듣는 제목이어서 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세상에 읽을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렸다. 이제 더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시간을 쪼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이다. 총 10 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지점장 후루카와부터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정사,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연작 소설이라고 보여질 정도로 한 편에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와 처지를 말해 준다. 또한, 도쿄제일은행에서 벌어진 고액의 도난 사건과 직원 실종 사건이라는 큰 틀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읽으면서 애정하는 작품인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중소 기업의 고군분투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배경 자체부터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게 비슷하게 와닿았다. 에피소드 중에서 기업이 도쿄제일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은행 직원이 응대하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인상 깊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은행 직원들의 실적에 치이는 모습은 여전히 안쓰러웠고, 기업 간부와 은행원 간의 기싸움 역시도 뭔가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부지점장 후루카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해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다. 지점장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직원들을 아주 쥐어잡는 것도 모자라 현대 사회에서 흔히 꼰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부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상사의 말은 곧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직원에게 폭력을 가해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대졸 직원들과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인 지점장을 보면서 열정을 가지는 모습은 좋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격지심이자 열등감으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좋은 감정으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는 전형적인 회사에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로 각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노출이 되어서 안 좋게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큰 사건이었던 도난과 실종 사건에는 다른 인물에 비해 크게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밖에도 야구 유망주로 살다가 특채로 은행에 들어온 인물은 뭔가 짠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으며,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직원을 보면서 읽는 입장인 내가 더 억울하다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사다난하면서 우당탕탕 흘러가는 은행 직원의 분투기가 마치 대한민국에서는 보통의 직장 생활처럼 보였다. 물론, 돈을 다루는 직종이기에 크게 보면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아마도 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으로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의 개인사들도 공감이 되었는데 가장 크게 인상 깊었던 점은 큰 사건에 대한 전개 방식이었다. 다른 추리 소설이라면 초반부터 큰 사건이 등장했을 텐데 이 소설은 은행원들의 좌충우돌 소소한 이야기들 위주로 전개된다. 공감하다 정신을 놓고 나면 그제서야 100만 엔 도난 사건이 등장한다. 심지어 등장한 이후에도 개인의 이야기들이 우선적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잊을 만하면 관련 사건으로 실종된 직원과 100만 엔의 출처 등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면에서 직장 소설이라고 봐야 맞겠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흘러서 추리 소설의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읽으면서 범인을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은행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는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가끔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현실감이 느껴졌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주류에 속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덕분에 내년에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도장 깨기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견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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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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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활의 여유를 고귀한 인생의 지혜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88

매체에 등장한 장수 노인분들을 볼 때마다 삶의 원천이 궁금해진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시대 자체가 어둡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살아가는 이유를 못 찾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일을 하는 이유도 금전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물론, 가끔 자아 실현이나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절대로 업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떠오른다. 이러한 생각이 나에게만 해당이 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유를 찾아 표류하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라면 공감할 것 같다.

이 책은 김형석 선생님의 에세이이다. 가끔 답이 안 나올 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시 잡는 편인데 딱 이 맥락이다. 103년 동안 세상을 경험하신 분이기에 삶의 지혜를 알려 주시지 않을까. 인생의 바다에서 원천을 찾아 떠도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답을 찾기 위해 선택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을 느꼈다. 저자이신 선생님께서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신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실 택시 기사와의 에피소드나 동료 교수님들과 식사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도 크게 보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큰일은 아니었다. 아마 나라면 그냥 평범한 일상이라는 생각으로 잊었을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생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과거 행복을 모르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서문이었다. 어렸을 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라는 문제를 받았다고 한다. 답변에 대한 시상이 있었는데 저자께서는 "정의"로 대답을 했고, 2등을 하셨다. 그리고 1등은 "사랑"이라는 답변을 적었던 선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정의가 맞다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살아가면서 정의에 대한 가치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기준만 보더라도 사랑보다는 정의에 가까운 입장인데 아직 세월의 풍파를 덜 겪은 청년 시기이기에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서문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독특하게도 지금까지도 큰 인상을 주었다.

두 번째는 취미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참으로 와닿았던 부분이었다.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취미가, 머리를 사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책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글쓰기나 독서는 취미가 아닐 것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뇌리에 꽂혔다. 마치 복지를 업으로 하는 나에게 자원봉사가 취미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어서 되게 흥미로웠다. 그밖에도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내용과 행복에 대한 시각, 다양한 에피소드는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가져야 할 시각과 생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른의 시각으로 뭔가 좋은 말씀을 듣는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완벽하게 고민과 감정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느낀점을 토대로 활용하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적으로 작은 일상 하나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가짐부터 다짐할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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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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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네 것을 써. / p.196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극 관람은 고등학교 3 학년 때이다. 수능이 끝난 이후 단체 관람으로 어느 극장에서 보았던 연극이었다. 제목과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름 친구들과 웃으면서 보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무래도 지방에 살고 있다 보니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그게 막상 쉽지는 않다. 

이 책은 한송희 작가님의 희곡집 에세이이다. 그동안 드라마 대본집은 접했는데 희곡집은 처음 접했다. 거기다 희곡집과 에세이의 조합은 또 색다르다고 느껴졌다. 지금까지 드라마 DVD나 블루레이 특전으로 대본집을 봤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희곡집도 대사가 있고, 괄호를 통해 상황을 설명해 준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연극과 친해지자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이었다. 고전으로 너무 익숙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었다. 이렇게 책까지 나올 정도이니 제목에서 실수를 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생소한 장르이지만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제목이었는데 후면에 실린 내용도 뭔가 수긍이 갔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헤테로 시각에서 쓰여진 문학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희곡에는 몬테규 가문의 줄리엣과 캐플렛 가문의 줄리엣이라는 두명의 줄리엣이 등장한다. 익숙한 이름의 로미오는 줄리엣의 남동생이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베로나 시대에서는 동성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동성을 짝사랑하는 줄리엣 몬테규는 어느 백작의 고백을 받았던 줄리엣 캐플렛에게 첫눈에 반한다. 줄리엣 캐플렛은 그동안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다 백작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잔치에서 줄리엣 몬테규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가족과 시대의 반대에도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사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색다른 설정이어서 흥미로웠다. 사실 알고 있는 줄리엣은 하나인데 또 다른 줄리엣을 만들어 낼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터라 이를 어떻게 구현할까 궁금했었다.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접했던 퀴어 소재의 이야기를 희곡집으로 보고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 읽는 내내 몰입해서 보았던 것 같다. 줄리엣 두 사람의 감정을 나름의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읽었다.

초반에는 줄리엣들의 이야기가 번갯불에 콩을 구워서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게 첫눈에 반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사랑하는 게 조금은 철이 없다고 보여졌다. 만나자마자 사랑한다고 하더니 같이 살 집을 구해 결혼하겠다는 게 몇 페이지에서 바로 점프를 하다 보니 갑작스러웠다. 물론, 희곡으로 본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시간의 제약이 있기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사랑의 감정보다는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따지는 성향의 사람이기에 더욱 두 사람의 사랑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스님의 등장이었다. 서양의 무대를 배경으로 갑자기 나타난 스님의 모습에 뭔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희곡의 내용에서 스님은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고, 캐플렛 가문에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예전에 불교에서 동성애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역시나 로맨틱하다고 느껴졌다. 에세이로 스님 역할의 비하인드를 볼 수 있어서 이 점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배우이자 극작가로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과거 연극 후기를 읽으면서 차별적인 요소에 대해 수용해 다음 집필 때 수정을 한다거나 글을 쓰기 위해 공부를 하는 모습이 그렇다. 특히, 연극에서의 대사가 무성애자들에게는 조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후기에 깊은 공감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 역시도 이성애 문학에서 동성애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내용들만 생각했었던 터라 머리로 맞은 듯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정체성이 존재했을 텐데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줄리엣과 줄리엣이라는 연극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막을 내린 공연이기에 이를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후기를 검색하기도 했었다. 이 책 하나로 희곡집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의 열정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삶, 극작가로서의 삶,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삶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어 묘하게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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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데스의 유산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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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세상의 시선보다 당신의 사람이 소중한 분은 연락 주십시오. / p.62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들의 보도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저마다의 힘든 개인사가 있기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거나 폄하하기보다는 남은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고통이 먼저 눈에 보였다. 당사자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힘든 일이었을 것이며,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도 없이 망설였을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각자의 개인사 역시도 부정할 생각 또한 없다.

그러다 이러한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개인의 권리로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연히 본 안락사 기사가 계기가 되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위스 조력 자살에 대한 기사였는데 큰 충격을 주었다. 보통 안락사는 대한민국에서 강아지를 비롯한 애완 동물에게 많이 사용되고, 해외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댓글에서도 스위스에 가서 이러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내용이 달라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꽤 강하게 남아 있다. 그때부터 살 권리처럼 죽을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장편 소설이다. 개인적인 것에 속하는 가족과 공적인 것에 속하는 법 중 하나를 양자택일하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개인과 법의 싸움이라는 생각에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 해당 출판사의 추리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결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이번 소설 역시도 관심이 갔다.

소설은 한 아이의 신고로부터 시작된다. 이틀 연속 경찰서로 아빠를 죽인 의사가 있다는 말이었는데 형사들은 그저 어린이의 장난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곳에서 독특한 사건임을 인식한다. 고인을 찾았던 의사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는 점과 아이가 말하는 범인은 첫 번째로 아빠를 만난 의사라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닥터 데스의 존재를 뒤쫓으며, 비슷한 류의 사건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두 명의 인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형사인 이누카야라는 인물이다. 소설 내용 중에서도 존엄사나 조력 자살, 안락사 등을 극도로 경멸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는 말들이 등장하는데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단순하게 안락사가 불법이어서 직업 정신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이누카야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가족 구성원을 통해 이러한 신념이 조금 흔들리는데 그 부분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누카야의 가치관에 공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기도 했다.

두 번째는 닥터 데스라는 인물이다. 본인과 가족의 동의 하에 조력 자살을 해 주는데 스토리에 집중해 읽다가 갑자기 툭 던지는 물음에 정신을 차리게 했다. 특히, 소설에서 닥터 데스는 '죽을 권리'를 언급하면서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표현한다. 초반에는 이누카야의 가치관에 더욱 마음이 와닿았는데 닥터 데스의 질문에는 섣불리 반박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살 권리처럼 죽을 권리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그동안 의사는 살리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닥터 데스의 존재는 당황스러웠고, 그의 물음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고통을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애완 동물의 안락사 역시도 그와 비슷한 이유로 진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사람으로 주제를 바꾼다면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물음표가 드는 것은 사실이다. 섣불리 안락사를 행하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이다. 당사자가 되었든, 가족의 일부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그랬기에 소설에 등장한 조력 자살을 요청하는 가족과 당사자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했었다.

인간의 존엄사를 생각하던 중 맞이한 결말은 그것 또한 나름의 충격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어서 뭔가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마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어느 정도 인지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까지 닿지 않았던 나에게는 재미 요소로 느껴졌다. 거기다 닥터 데스의 존재뿐만 아니라 가치관과 생각을 뒤집을 수 있는 이야기까지 등장했기에 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마냥 악인으로 낙인을 찍지 않아서 그 지점도 만족스러웠다.

단순한 재미를 위한 추리 소설이었다면 가볍게 흘렸겠지만 그 이상의 여운을 주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 이슈 중 하나인 존엄사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냈기에 머리와 마음에도 남아서 좋았다. 아마 한동안 추리 소설 중에서는 개인적인 순위 상위권에 속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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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나 아티스트
알카 조시 지음, 정연희 옮김 / 청미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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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상이 높으면 대가가 따랐다. / p.101

부모님 세대의 시절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었을지 몰라도 요즈음 시대에는 안 맞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어로 자리 잡은 흙수저와 금수저를 보아도 그렇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집안의 경제적 능력도 하나의 스펙이라는 말까지 우스갯소리로 할 때가 많은데 들으면 뭔가 모를 씁쓸함이 머리를 맴돈다.

이 책은 알카 조시의 장편 소설이다. 한 여성이 시대의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현대 배경이라고 해도 눈길이 갔을 텐데 1950 년대의 인도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특히, 인도가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알고 있다. 거기에 지금은 폐지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카스트 제도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계급과 성별을 이겨낸 성공의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락슈미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지속적인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탈출해 자이푸르라는 도시에 정착한다. 그곳의 높은 계급의 부인들을 상대하면서 헤나를 그려 주는데 락슈미가 그린 이후에 생명이 잉태하게 되면서 소문이 터져 헤나 아티스트로서 부를 얻는다. 거기에 중매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급 인맥들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면서 명성 또한 떨친다. 집을 구매해 완전히 정착하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금전을 모으던 중 자신이 고향을 떠난 이후 태어난 여동생이 찾아오는 등 계획과 다른 사건들이 펼쳐진다.

궁금해서 선택한 책이지만 설렘과 함께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의 페이지 수가 조금 두꺼운 편인데 거기다 잘 모르는 인도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심이 생겼다. 헤나, 인도, 역사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자신이 없었다. 줄거리 하나만 믿고 보게 되었지만 중간에 덮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읽게 되었던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이유는 차차 설명하겠지만 우선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락슈미의 가치관이었다. 소설에서 락슈미는 집을 지어 살아가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빚을 내서 하나씩 집을 짓는 모습들이 등장하는데 이게 락슈미가 생각하는 성공의 상징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모님 세대의 내 집 장만이라는 목표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했다. 돈을 버는 것도 결국에는 집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고, 헤나 아티스트로 많은 고위 계급의 가족들과 사교 활동을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자신을 억압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부인들처럼 살고 싶어하는 의지가 보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기에 처음에는 락슈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동생인 라다의 등장이었다. 락슈미의 나아가는 길을 응원하다 잠시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다. 그게 바로 라다를 억압하는 모습이었다. 이 또한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님을 보는 듯했다. 고위 인맥으로 라다를 좋은 학교로 보낸다거나 지속적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등 자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모르게 간섭이라고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라다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텐데 무조건적으로 옳지 않다면서 의견을 무시할 때면 마치 라다가 된 것처럼 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락슈미의 의견이 맞을 때도 있어서 감정적으로 고집을 부리는 라다의 행동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세 번째는 고위 계급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충분히 헤나 아티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너무나 잘하고 있는 락슈미이지만 이를 악의 구덩텅이로 이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고위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락슈미에게 무시하는 말과 행동은 별것도 아닌 일로 치부될 정도로 일상이었으며, 심지어 그들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도 벌어진다. 특히, 자신들의 권력과 소문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는 읽는 내내 화를 돋구기도 했다. 약간 사적인 감정을 표현하자면 싱 가문은 소설에서 유일하게 모난 마음을 들게 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밖에도 폭력을 저질렀던 남편 하리의 태도를 보면서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락슈미를 지지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인류애가 차올랐다. 사실 읽으면서 공간적인 배경은 인도이지만 비슷한 동양권 나라인 대한민국의 모습과 겹쳐질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불쑥 튀어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 했던 걱정이 별것이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생각과 교훈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하루도 되지 않아 완독할 정도로 몰입력이 뛰어난 스토리이기도 했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인도 문화에 낯선 독자들을 위해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뿐만 아니라 헤나, 인도 카스트 제도 등 다양한 자료를 많은 페이지로 할애해 수록했기에 인도라는 나라 자체만 알아도 소설 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아마도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대 억압을 이겨내는 한 여성의 성공기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삶의 중요성을 찾아가는 성장기로 보였다. 돈과 명예, 권력을 비롯한 사람들 시선과 비위에 맞춰 살아가던 락슈미가 가족을 만나고 사건을 경험하면서 진정으로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것을 알아냈다는 점이 유독 깊게 느껴졌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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